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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시합

1987년 12월 1일


이 소설은 중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의 강압(?)으로 교지에 싣기 위해 쓴 소설입니다.
유치한 글이지만 중3짜리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 사건은 신의 장난이 아니었던가 싶다. 정말이라면 신은 야속하기도 하지…

내 동생 녀석은 현재 전교 등수 1위, 체중 62kg,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양준오이다. 반에서 1등은 물론, 전교에서도 1등을 고수하고 있는 공부파…
나는 현재 전교 등수 X등, (알려고 하지 마라) 체중 75kg, ○○중학교 3학년 양문오이다. 성적을 굳이 공개하자면 반에서 중위권과 상위권을 오르내리는 정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지.
내 나이 이제 이팔청춘이고 보니 엄마품이 그리운 나이야 물론 지났다. 그런데 준오 녀석도 엄마 품에서 벗어날 때가 됐는데도, 아직 엄마의 편애 속에서 반아기생활을 하고 있다. 뭐 내가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내가 성적표와 함께 귀가했을 경우,
“으이구, 이 등신아! 사회에서 조금만 더 잘 봤어도 됐을텐데. 너 IQ가 몇이야? 엉? 장손이란게 참…”
이것이 어머니의 반응이다. 그러나 준오가 성적표를 가지고 귀가했을 경우엔,
“아이구 우리 준오 만세다. 사회에서 88점인데도 평균점수가 이렇게 좋아. 오늘은 공부하지 말고 푹 쉬어라, 응…”
그러면서 쥬스 한 잔이 등장한다. 내가 그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머니도 눈치를 채셨는지 하여간 쥬스 한 잔이 내게도 오긴 온다. 그러나 쥬스를 주는 어머니의 표정은,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그런 표정이시다. 게다가 잔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완전히 코끼리와 모기다. 뭐 내가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생 녀석이 콧대 높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형 알기를 변소차 뒷바퀴쯤으로 알다니 될 말인가. 저번엔 학교 다녀와서 한다는 소리가,
“친구들이 형은 전교 몇 등이나 하냐고 묻는데 대답하느라고 혼났어요. 애들이 전교학생회장 양종수가 너희 형이 아니냐잖아요, 글쎄.”
하고 심각하게 말하는 거다. 뭐가 대답하기 어려워? 중상위권이면 수준급이지. 그런데 그 다음에 어머니 말씀이,
“동생한테 부끄럽지도 않냐? 성적 좀 올려봐!!”
한땐 나도 굉장히 노력했었다. 중학교 2학년때, 취침시간을 5시간으로 줄여가며 참고서 더미에 파묻혀 살았다. 그 덕분에 꽤 상위권의 영광도 차지했다. 그날 나는 방방 뛰어서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
하고 외치면서 안방에 뛰어든 순간 나는 문턱에 발가락이 걸려 자빠졌다. 그러자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 큰 녀석이 촐싹맞게 뭐냐! 장손이란게, 참.”
그리하여 당당하던 내 기세는 태풍에 고목 쓰러지듯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일말의 기대를 걸고 어머니께 성적표를 두손 모아 공손히 바쳤다.
어머니께서 성적표를 살피시는 1분간의 긴장, 흥분, 서스펜스. 나는 잠시 후면 활짝 열릴 천국의 문을 기대하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순간,
“공업을 이따위로 했으니까 평균이 이거밖에 안돼지!! 동생은 1등 하는데 겨우 이거 가지고 좋다고 웃냐? 적어도 형이 동생보단 나아야지!”
어떻게 전교 1등보다 더 잘하라는 거야. 좌우지간 그 후, 성적을 향상시키겠다는 마음은 싹 가셨다. 어떻게 해도 어머니께 듣는 꾸중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동생놈과 내 방을 좀 살펴보자. 준오 녀석의 방에는 천지가 다 상이다. 학업우수상, 미술대회, 웅변대회, 바둑대회, 피아노, 심지어는 무용대회까지…
반면, 내 방에는 개근상 몇 개 빼면 미술대회 최우수상 하나가 남는다. 그나마 동생이 받은 상장을 동생 방에 더 걸 벽이 없어서 내 방에 걸어놓은 것 뿐이다. 아마도 오늘 내 방에 또 하나의 동생 상장이 더 걸릴 것이다. 오늘이 방학식 날이니까 준오는 또 우등상을 탈 게 아닌가. 성적표는 보나마나 전교 1등. 안봐도 눈에 훤하다.
학교에 오니 딴 녀석들은 내일부터 방학이라고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허나 나는 전같지 않게 얌전히 앉아있었다. 이젠 거의 이골이 날 어머니의 꾸중소리가 귓가에서 징징 울렸기 때문이었다. 괜히 우울했다.
담임 선생님이신 주용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휴가계획표와 문제의 성적표, 그리고 수많은 학생들을 울린 공포의 몽둥이 ‘야마모도’를 들고.
“성적표부터 줄까?”
인사를 받고 나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애들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네’하고 일제히 외쳤다. 번호 순서대로 나가서 성적표를 받았다. 예상보다 등수가 높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의 꾸중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선생님의 목소리보다 어머니의 꾸중소리가 더 커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사이에 방학식은 끝나버렸다. 나는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문어야 어디 아프냐?”
칠성이 녀석이 다가오며 물었다. 이 짜식이 또 형님 별명을 불러.
“아니”
“근데 왜 그리 기운이 없어보여. 내가 형님으로서 걱정이 되잖아.”
“네가 내 형이면 내가 전교 1등을 하겠다.”
“네가 전교 1등? 웃기지마라, 배꼽 땅긴다. 그거보다 북한에 침투해서 김일성 혹을 떼오는 게 더 쉽겠다.”
“……”
“너, 성적표 때문에 그러지? 동생은 또 1등 했을 테니까.”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걱정마라. 나중에 고입선발고사에서 200점 맞아버려. 그럼 되잖아.”
“차라리 김일성 혹을 떼올란다.”
“진짜 떼올래? 왕복 차비는 내가 대줄께.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그만두자.”
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시장에 가셨는지 안계셨다. 준오는 이미 와있었다.
“성적표 받았니?”
“응.”
“1등?”
“당연하지.”
저 녀석의 콧대를 눌러놓고 싶다. 그러나, 난 아직 저 녀석에게 역부족이다.
방에 들어가니 장농문이 열려있었다. 그 속엔 나와 준오의 어린 시절 애용품들이 가득 차있었다.
“심심해서 이걸 보고 있었지.”
준오가 말했다. 대충 보니 권투 글러브 두 쌍이 보였다. 내가 6살때 쓰던 것이었다. 조금 헐렁한 글러브를 끼고 준오 녀석을 신나게 두들겨 댔었지.
아! 그 순간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그렇지. 예전의 실력은 아직도 건재할 것이다. 힘으로라면 준오와 못해볼 것도 없지. 10년 전처럼 흠씬 두들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짐짓 미소를 띠고 준오를 쳐다보았다.
“우리 권투 한 번 할래?”
“권투?”
“그래, 조금만.”
“형, 난 자신없어.”
“남자가 뭐 그리 용기가 없어? 한 번 해봐, 임마.”
마지막 말은 거의 협박이었다. 준오는 눈에 띄게 기가 죽고 있었다. 나는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 눈에는 살기를 띠고 – 권투글러브를 꺼내 손에 끼웠다. 손에 조금 꽉 끼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오를 힐끗 보니 이미 준오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이번만은 너도 끝이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나는 천천히 끈을 매며 생각했다. 오락기 펀치 179의 힘으로 까부숴주지. 준오도 글러브를 끼고는 있었지만 맥이 풀려서 마치 독수리 앞에 앉은 참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났다. 이 녀석을 부숴놓으면 분명히 어머니의 후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없는 어머니가 얼마나 패시겠어. 기껏해야 저녁 한 끼 굶겠지. 이제 나는 드러내놓고 살기를 띤 채 준오를 노려보았다. 준오는 점점 오그라들고 있었다.
“3분 1라운드만 하지, 형?”
녀석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물론이지. 자, 땡!”
나는 탐색전삼아 링대신 쓰이는 방을 한바퀴 돌았다. 준오도 더이상 몰릴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눈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비웃음으로 받아주면서 내 첫 공격목표로 녀석의 턱을 골랐다.
한바퀴를 다 돌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나는 노도처럼 돌진했다. 작은 방인데도 준오와의 거리가 1KM는 되는 듯 멀게 느껴졌다. 거리가 제대로 들어맞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는 녀석의 턱을 향해 강력한 라이트훅을 날렸다.
와장창!
하고 녀석의 턱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야할 순간, 내 양말이 미끄러지며 강력한 라이트 훅은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나는 별을 보았다. 비틀거리는 순간 복부에 다시 펀치를 허용했고 안면에 좌우연타까지.
이거 뭔가 이상한데?
기회를 포착한 준오는 어벙하게 서있는 내게 계속 펀치를 날렸다. 준오의 라이트 어퍼컷이 턱에 명중했다. 나는 ‘으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다음날,
나는 텅 빈 학교 벤치에 앉아서 눈물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