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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띠앙 이야기

2006년 11월 20일



한때(정말 한때) 우리나라 포털사이트 중 최강이라고 불려도 시원치 않았을 포털사이트 네띠앙이 지난 8월말 파산선고를 받고 서비스를 완전히 접어버렸다. 네띠앙을 통해서 내 최초의 홈페이지를 인터넷에 띄웠고, 네띠앙의 아주 초기가입회원인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뒷북도 이만저만한 뒷북이 아니지만, 파산 당시에 (게을러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야 주절주절 해보려고 한다.

아직 인터넷보다는 소위 4대통신(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이 득세하던 시절, 모뎀도 없는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던 본인에게 그런 통신망을 통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놈은 그림의 떡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대학교 졸업반이던 무렵, 학교의 경상대 PC실이 제법 빵빵한 PC와 졸라 빠른(지금 기준으로는 형편없는 속도겠지만) 인터넷 회선으로 무장한 채 일반개방을 해버리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PC통신 = 비싼전화요금, 이런 등식을 갖고 있었던 내게 경상대PC실이 열어준 공짜인터넷의 세상은 무한히 넓고 아름다웠더랬다. 그냥 사이트 검색하고 서핑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이텔이나 천리안 같은 통신사에 가입해서 별도의 돈을 내고(인터넷 이용료를 추가로 더 받았었다. 통신사 후발주자였던 유니텔은 아마 인터넷이용료를 따로 더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인터넷을 써야만 쓸 수 있을 줄 알았던 이메일 계정이나 홈페이지 계정도, 인터넷만 공짜로 접속할 수 있으면 역시 공짜로 얻어서 쓸 수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메일이나 홈페이지 게정을 공짜로 주는 사이트들은, 모두 외국사이트들 뿐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80% 이상이 앓고 있는 영어울렁증 환자였던 관계로, 어찌어찌 핫메일에는 가입해서 무료이메일을 사용하게 됐지만 무료홈페이지 계정까지는 (당장 필요하지 않았으니) 얻을 생각이 나지 않았더랬다. 게다가(어쩌면 이게 더 큰 이유였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정부에서 “북한 관련 정보가 올라와있다”는 이유로 세계 최대의 무료홈페이지계정서비스업체였던 지오시티 접속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관공서에 한해서였지만) 공립대학의 PC실에서만 인터넷을 쓸 수 있었던 나로서는 지오시티에 가입해서 무료홈페이지 계정을 얻을 엄두도 낼 수 없었던 탓도 있었다. (딴 이야기지만 생각난 김에 조금 덧붙이면, 이게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지금 기준으로 얘기하면 셀 수 없이 많은 네이버 블로그 중 하나에 어떤 미친놈이 김정일 만세라고 썼다는 이유로 네이버와 네이버 블로그, 카페를 몽땅 막아버린 것과 똑같은 조치였다. 그리 멀지도 않은 1997년,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국내무료이메일계정인 “한메일”이 생겨나더니, 역시 국내무료홈페이지게정인 “네띠앙”이 생기고 말았다. 앞서 내가 “아주 초기가입회원”임을 강조한 바 있는데, 네띠앙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선착순 100명 회원가입이벤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00명에는 들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얻은 네띠앙 계정이 4M였다. 4M. 당시 내 컴퓨터 RAM 용량의 절반에 불과한 용량.처음 신기해서 이것저것 아무것도 아닌 내용으로 홈페이지를 꾸미려고 했을 땐 충분한 용량이었지만, 자꾸 욕심이 생기면서 영화음악 미디파일도 가져오고, 건담이나 천녀유혼 이미지도 가져오고 할라니 이게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 되고 말았다.

당시 네띠앙의 뒤를 이어 역시 무료홈페이지계정서비스를 했던 업체로 “신비로”가 있었다. (지금도 있긴 있다. 네띠앙에 밀려서 진작부터 가물가물했을 뿐) 여기서도 4메가 정도의 용량을 줬는데, 부모님 신상정보까지 총동원해서 네띠앙과 신비로에 총 20메가 가량의 게정을 만들어서 각종 이미지 & 미디파일을 분산배치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미디파일이 많아지면서 결국 외국계 사이트이면서 이상할 정도로 용량 많이 주는 (그대신 메인페이지에 떡허니 광고를 달아주시는) 포춘시티라는 곳에서 20메가 게정을 얻어 미디파일은 그곳으로 다 옮겨버려야 했다. 그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내 홈페이지의 메인페이지는 항상 내가 최초로 얻었던 네띠앙의 4메가짜리 게정이었었다.

비록 네띠앙에서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촌스러운 방명록(게시판)과 카운터로 무장한 별 것 아닌 홈페이지였지만, 9년이 다 되어가는 내 홈페이지 역사에서 고작 1년 반 남짓한 세월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야후!에서 선정하는 “오늘의 사이트”에 선정되어 동아일보 지면 한 귀퉁이를 차지했던 것도 이 시절이었고,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모 프로그램의 건담특집코너에서 “한국의 건담사이트”라며 소개된 것도 이 네띠앙 홈페이지였으며, 모 회사의 다이어리 말미에 “가볼만한 사이트” 중 하나로 뽑혔던 것도 이 네띠앙 홈페이지였으며, “한국의 인터넷 홈페이지 500선”이라는 당시 수없이 쏟아지던 비슷한 유형의 책들 중 하나에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실려버린 것도 이 네띠앙 홈페이지였었다. 하지만 나는 용량이 작다는 이유로 네띠앙 주소를 버리고 다른 주소로 옮겨버렸고, 그로 인해서 야후! 오늘의 사이트도, 요즘도 방송된다는 소문이 들리는 투니버스의 그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건담 홈페이지도, 다이어리와 책에 실렸던 그 홈페이지도 마치 “한때 잘 나갔었지만 이제는 없어져버린” 홈페이지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전화번호 바꾸면 일정기간 안내메시지 나오는 것처럼, 어차피 무료인 네띠앙 계정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심심해서 서버를 바꿨습니다. 이러이러한 주소로 오세요”라는 멘트를 네띠앙쪽 게정으로 접속하면 볼 수 있도록 조치는 취해두었었다. 그게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았었는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네띠앙 홈페이지를 통해서 제대로 된 내 홈페이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한때는 살다시피 했었지만 이제는 절대 가지 않은 곳이 된 네띠앙이 아직 살아있구나, 라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를 통해 네띠앙의 접속이 불안정하고 파산 위기라는 설이 들려왔다.

하도 오래 잊고 있었던 곳이라 다시 네띠앙을 찾아봤더니 인터페이스도 엉망, 서비스도 엉망인 상태였다. 처음 무료홈페이지 서비스를 하면서 단연 국내 1위였던 곳이, 커뮤니티 서비스를 하며 국내 1위(세계 1위라는 구라도 있다)로 올라선 프리챌에게 밀려버린 이후 끝내 새로운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이렇게 몰락해버렸구나, 싶으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더라. 어쨌거나 간만에 방문한 목적인 데이터백업 및 탈퇴-_- 처리를 하고, 그렇게 마지막 네띠앙 접속을 끊었고, 며칠 뒤 네띠앙은 완전히 문을 닫고 말았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한 지 햇수로 10년. 그 사이에 수많은 사이트들이 문을 열었다 닫았다. 개인홈페이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엄연한 법인 포털사이트들의 흥망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네띠앙이 이렇게 없어지는 건 적어도 나에겐 그런 수많은 경우들과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오래 연락이 끊어졌지만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심정과 비슷하달까. 벌써 석 달 가까이 지난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네띠앙 시절을 회상하다보니 혼자 술잔이라도 기울여보고 싶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