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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Z건담

1998년 10월 5일

Z건담이 왜 삐딱한가? 먼저 질문을 이렇게 던져보자. 이 질문에서 우리는 한국말의 묘한 어감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내가 이 질문 하나를 통해서 묻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Z건담이 삐딱한가? 하는 것과 Z건담은 왜 삐딱한가? 하는 것이다.

아직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덧붙이겠다. 첫번째는 다른 건담 시리즈에 비해서 왜 하필 Z건담만 삐딱하다고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두번째는, Z건담은 어째서 삐딱한 내용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첫번째부터 얘기해보자. 왜 Z건담이 삐딱하다고 하는가? 건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지구인(어스노이드?)과 우주인(스페이스노이드?)의 싸움이라는 기본적 구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건담 시리즈는 점점 스페이스노이드를 지온과 같은 “독재적” 형태로 그려가고 있다. 즉 지구인=좋은 사람, 우주인=나쁜 사람의 등식을 일반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Z건담은 그렇지 않다. 건담 시리즈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다시피 Z건담에서만 아군이 우주인이다. 그것도 이미 전편이었던 <기동전사 건담>에서 지구인의 편에 섰던 사람들을 대거 우주인의 편으로 끌어들이면서까지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뒤에 얘기하기로 하고, 다른 작품도 우주인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어 먼저 그 얘기부터 하겠다. <기동전사 건담>에서도 연방군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여주고 지온군인 샤아의 이상향을 설명하면서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기동전사 건담ZZ>은 Z건담의 연장선에 있으므로 역시 스페이스노이드 연합체인 에우고가 아군으로 그려지고 있어 역시 스페이스노이드가 아군인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먼저 <기동전사 건담>에서 보여주는 연방군의 부정적인 모습이라는 것은 단지 양념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억지로 전쟁터로 다시 내몰려야하는 화이트 베이스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연방군의 사령관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의 레빌 장군이며, 많은 연방군인의 모습이 멋진 모습,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지온군인들은 내부 와해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주지 않는다. 특히 솔라레이를 위해 싸이드 3의 주민들을 몰아내는 장면에서 더욱.

<기동전사 건담ZZ>은 조금 미묘하다. 원래 지구연방에 반기를 든 스페이스노이드의 단체였던 에우고는 티탄즈가 무너진 뒤에 어째 연방군처럼 행동한다. 지구인과 다른 모든 스페이스노이드들을 위해 사악한 집단(?) 액시즈와 싸우는 것처럼 묘사된 것이다. 이 관점은 후편 <샤아의 역습>의 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샤아가 가장 나쁜 놈처럼 묘사된 작품임)

두번째, 그렇다면 왜 Z건담은 다른 건담 시리즈와 달리 삐딱해졌는가? 나는 이 이유를 다분히 상업적으로 본다. 누누이 말했지만 전편에서 예상 외로 지온의 자쿠나 그프 종류의 캐릭터가 인기를 모았다는 점, 특히 붉은 혜성 샤아에 대한 인기가 주인공인 아무로에 대한 인기를 뛰어넘을 정도였다는 점 때문이다. <기동전사 Z건담>에서 다시 샤아를 적의 편으로 돌려놓는다면, 아직 인기가 검증되지 않은 주인공 카미유에 비해서 인지도가 높은 샤아가 초반에 주목을 끌 여지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주인공에 대한 인기를 반감시켜버릴 가능성이 높은 너무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전편에서 샤아가 너무나 확실한 지온의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를 연방군으로 편입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설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지온 세력을 그대로 샤아와 함께 아군으로 설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건담이 주인공 캐릭터 아닌가. 연방군이 아닌 지온군에서 무엇때문에 건담을 만든단 말인가.

여기에서 딜레마가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이 제작진은 완전한 연방군도 아니고, 완전한 지온군도 아닌 세력들을 여기저기 만들어놓았다. 먼저 아군으로는 샤아의 이상과 연방군의 조직을 갖춘 에우고라는 단체가 설정되었다. 복식이나 장비는 모두 연방의 것이지만 이상은 샤아의 스페이스노이드 해방정신에 기초하고 있는 에우고와 달리, 전작에서 적군이었던 구 지온은 액시즈라는 단체를 결성시켜 아직도 쟈비가에 대한 충성심에 불타는 조직으로 설정해놓았다. 연방군도 연방군 자체를 적으로 삼기보다는 일부 특수부대인 티탄즈를 적으로 설정해 이미 연방군 소속인 아무로나 브라이트를 에우고로 끌어넣는데 리얼리티를 더해주었다. 에우고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샤아가 설정되었고 아무로도 그와 함께 싸우게 되었으므로 새로운 아군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가 폭발적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바로 뒷편인 <기동전사 건담ZZ>에서는 샤아가 등장하지 않는다.(아마 짧은 한컷 정도 나온다) <기동전사 Z건담>의 마지막회에서 큐베레이에게 짓밟힌 뒤, 부서진 백식의 코크핏드에 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그가 살아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긴 했지만 <기동전사 건담ZZ>에서는 샤아가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카미유도 정신이상이 되어 지구에서 헤롱거리고 있을 뿐 아군을 위해서 싸워주지는 않았다. 어째서 샤아를 행방불명으로, 카미유를 정신이상으로 만들어야만 했을까? (어떤 방문객이 내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고 샤아와 카미유를 뒷작품에서 빼버린 것이 상업적인 의도다… 라고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아니라고 해명할라니까 메일 주소도 없고 해서 여기다 부연설명 겸해서 까발린다. 샤아와 카미유가 빠지는 것은 두 캐릭터의 인기를 감안할 때 절대 상업적인 의도가 없다. 나는 왜 장사를 위해서 애매한 단체 에우고까지 만들고 샤아와 아무로를 한편으로 돌려놓았던 제작진이 인기와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두 사람을 빼고 에우고라는 단체까지 흐지부지 없애버리는가, 그것은 상업성을 뛰어넘는 제작진의 다른 의도가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샤아와 카미유가 빠진 것은 어거지로 아군을 우주로 돌려놓았던 전작의 스토리가 원래대로 지구 vs 우주의 구도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포석이었다고 본다. 결국 제작진은 처음부터 지구를 좋은 쪽으로, 우주를 나쁜 쪽으로 그려가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스페이스노이드들에 대한 제작진의 입장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들의 이상인 지온의 에레즘이 현실적으로는 쟈비가나 하만 칸같은 독재군주에게 농락당할 뿐인 사상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를 보는 제작진의 시각에 다름아니다. 결국 이상주의자인 샤아와, 아무리 스토리를 훑어봐도 도저히 연방군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되버린 카미유는 다음 시리즈에서 빠져버리는 것이 제작진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는 더 편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다만 샤아를 행방불명으로 처리한 것은 만만치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샤아를 쉽게 죽여버렸을 경우에 제작자에게 쏟아질 비난을 감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샤아는 <샤아의 역습>에서 다시 지온의 군주로 되돌아와 아무로와 맞서 싸우지만, 이미 샤아는 처음 붉은 혜성으로 나타났을 당시의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기렌 쟈비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 샤아를 아무로는 경멸한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건담 시리즈에서 모습을 감췄다. 사실상 건담의 인기를 이끌어온 두 사람이지만, 괜히 살려두었다가 다음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를 꺼린 탓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