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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 신전] 거대한 4개의 석상

2007년 12월 7일



어떤 건물인가?

우리가 이집트라는 곳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거대한 석상 넷이 나란히 앉아있는데 그 중 한 놈이 작살나있는, 건물 같기도 하고 조각 같기도 한 그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는지? 그 녀석이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아부심벨 신전이다.

아부심벨 신전은 1812년 스위스인 부르크할트에 의해 유럽지역에 최초로 알려졌고, 1837년 이탈리아인 베르초니가 신전을 덮고 있던 흙/모래/자갈들을 제거하여 대신전 정면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때 이미 네개의 석상 중 하나는 작살이 나있었고)

솔직히 아부심벨 신전은 엄밀히 말하면 건물이라고 하기가 좀 그렇다. 맨땅에 기초파고 기둥박고 지붕씌워서 만든 구조물이 아니라 사암층의 절벽을 깎고 파서 만든 신전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석굴암을 건물이라고 말하기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뭐 자유의 여신상도 건물로 소개한 마당에 뭐가 문제랴.

아부심벨 신전은 아스완에서 280km 정도 떨어진 낫세르 호수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왕을 위한 대신전과 왕비를 위한 소신전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보통 아부심벨 신전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네 개의 석상은 대신전 입구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상이다. 대신전의 정면 높이는 32m, 너비 38m이고 깊이는 63m 정도이며, 람세스 2세 석상의 높이는 22m에 달한다. 소신전은 대신전에서 북으로 90m 정도 떨어져있으며, 정면 높이는 12m, 너비 26m, 깊이 20m 정도가 된다. 입구에는 람세스 2세의 석상 4개(높이는 대신전의 절반 정도인 10m)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석상 2개가 세워져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제1실에는 오시리스 신의 모습을 차용한 약 10m 높이의 람세스 2세 입상 8개를 시작으로 그의 치세 혹은 그가 승리한 전쟁 등을 다룬 각종 조각/부조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단다. (역시 “그랬단다” 타령이 시작되었다) 제2실과 3실은 종교의식에 관한 벽화, 제4실에는 라호라크티, 아몬 레, 프타하, 람세스의 신상이 있단다.


어떻게 지어졌나?

람세스 2세가 계속 언급될 때 눈치까신 분도 계시겠지만, 이 신전을 건축한 사람이 바로 람세스 2세다. 정확히 말하면 람세스 2세가 시켜서 노예들이 피똥싸가며 건축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람세스 2세(제위 BC 1301~1235)는 이집트 제19왕조시대의 왕으로 무려 67년이나 왕위에 있었다고 하는데, 자신을 오시리스 신과 동일시하여 멀쩡한 사암절벽을 들이파서 자신=오시리스를 위한 신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보통 이런 고대의 대형건설프로젝트는 실행한 왕의 임기(?) 안에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람세스 2세는 워낙 오래 왕위에 계시다보니 살아 생전에 신전의 완공을 보고 죽은 걸로 알고 있다.

또한 소신전 같은 경우는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떼돈 들여서 부인을 위한 신전을 지은 왕이래봐야 타지마할을 지은 샤자한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 걸로 봐서 엄청 부인을 사랑했던지, 돈이 남아돌았던지 뭐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나 싶다.

사실은 “어떻게 지어졌나”하는 문제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부심벨 신전에 있다. 바로 “어떻게 옮겨졌나”라는 것인데, 아부심벨 신전이 원래 위치해있던 곳은 지금보다 약 100m 정도 떨어진 낫세르 호수 안이었다. 어떻게 호수 안에 신전이 있었냐고? 그야 원래는 호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렇지.

1950년대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던 이집트는 나일강에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 계획에 의하면 아부심벨을 비롯한 누비아 지방의 유적들은 죄다 낫세르 호수에 수몰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집트 정부에서는 우리도 유적을 살리고 싶지만 멀쩡한 동굴을 파내서 옮길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댐은 안만들 수도 없고 에효… 뭐 이런 식으로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바람에 똥줄이 탄 유네스코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술모아 돈모아 옮겨버린 모양이다. 이전 공사는 1963년에 시작되어 약 5년 정도 걸렸고, 신전을 총 1036개의 돌블록으로 분리하여 일련번호를 붙인 뒤 하나씩 옮겨서 다시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직접 아부심벨 신전을 방문해보면 이 이전공사 관련 내용과 사진을 전시해둔 곳을 볼 수 있다는데, 참 별 걸 다 관광용으로 활용해먹는다. (참고로 함께 수몰될 뻔 했던 다른 누비아 지방 유적들도 다른 곳으로 이전되거나 아예 박물관으로 옮겨지는 등 많이 살아남았단다)

시대의 한마디

우리가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가서 보면 “애개”하며 실망하게 되는 건물/명소들이 더러 있다. 반대로 직접 보기 전에는 그 규모 등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쾰른대성당이 그런 쪽이었다) 물론 나도 아직 아부심벨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수치와 사진으로 아부심벨의 규모를 상상하는 걸로는 사실 감이 잘 안온다. 역시 이런 놈들은 직접 찾아가서 바로 밑에서 고개가 빠져라 위로 쳐다봐야 제대로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