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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라마 찍는구나

2010년 7월 30일

그저께 남의 경기 보고 감탄하면서
아 기아 ㅂㅅ들은 드라마도 못찍고 뭐하는 거냐고 투덜거렸더니

어제 아주, 제대로 드라마를 찍어주시더라.

그것도 그저께 SK와 LG의 드라마가 뭐랄까 좀 막장드라마-_-삘이 났었던 거라면
어제는 KBO 기록지에 오래 남을, 진정한 드라마였다는 거.

그 드라마의 중심에 국가대표 1번타자 용큐선생이 있었더랬다.


어제 롯데와의 경기 3회초.
전형적인 똑딱이타자 이용규가 여전히 방망이를 짧게 잡고
약간 높은 실투성 투구를 제대로 잡아당겨
쓰리런홈런을 날린 것만으로도 사실 드라마는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더랬다.

이용규가 누구냐.
작은 체구에 빠른 발을 가진, 누가 봐도 장타력과는 거리가 먼 타자로
2005년 시즌에 5개의 홈런을 날린 적도 있긴 하지만
이후 기아의 홈구장인 무등경기장이 펜스를 넓히고 높인데다
이용규 스스로 방망이를 극단적으로 짧게 잡고 맞히는데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2006년 홈런 한개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두번 다시 홈런을 치지 못하는 타자… 비슷하게 팬들에게 자리매김해버린 선수.

아닌 말로 홈런은 커녕 펜스만 직접 맞혀도 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날
그런 선수였는데
어제 우리나라에서 크다면 큰 사직구장에서
홈런을 날려줬으니 이게 무슨 드라마냐.

근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뒤이어 채종범의 투런 홈런,
최희섭의 솔로 홈런이 이어터지고
다시 계속된 만루찬스에서 다시 이용규 타석.

여기서 이용규가 다시 홈런을 – 그것도 홈런의 꽃인 만루홈런을 – 치는 스토리를 어느 작가가 시나리오로 써서 들고가면
그저께 SK와 LG 경기를 써서간 작가는 욕이나 먹었을지 몰라도
이번 작가는 몰매 맞고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이용규가 이번에도 홈런을 – 만루홈런을 날려버리면서

정말 KBO 기록지에 남을 수많은 기록들이 쏟아졌으니

먼저 7번짼가 8번째로 한 선수가 한 이닝에 2홈런.
한 이닝에 7타점은 KBO 역대 최고 기록.
(이건 예전 박찬호와 타티스가 합작한-_- 한이닝 만루홈런 2방이 재현되지 않는 한 깨지지 않을 기록)
거기다 쓰리런 – 투런 – 솔로 – 만루홈런이 1이닝에 쏟아지면서
역시 KBO 최초로 1이닝 사이클링홈런.
(뭐 이런 건 공식기록이 아니지만 이색적이잖아)

여기에 8타자 연속 안타(역대 타이기록)와
8회에 이용규가 타점 하나를 추가하면서 한경기 최다타점 타이기록까지
온갖 기록이 쏟아져나온
진정한 드라마가 탄생하더라는.

막상 팀은 16연패 이후 6위로 처진데다
롯데와 경기를 마친 후 리그 1위 SK와 맞붙는데 선발투수도 빵꾸나있고
기아 천적인 카도쿠라와 김광현을 죄다 만나는 안좋은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이겨주면 뭐 다 괜찮잖아.
그렇다고 내일부터 다시 16연패해도 된다, 뭐 그런 얘기는 아니고.

작년에도 7월말부터 미쳐서 8월에 광란의 질주를 하더니
올해도 그러려나… 싶은 괜한 기대감이 들기도 하는데
안그러면 또 어떻더냐 야구 올해만 하는 것도 아닌데.
6월달처럼 빙신같이 쳐맞고 지지만 않아도 괜찮음.

어제 롯데가 점수낼 때 아기가 웃길래
웃지말라고 화내다가 마누라한테 도리어 구박당한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