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파괴로 만든 건축

2010년 9월 14일



어떤 건물인가?

몇 년 전 형님과 베를린 여행을 갔을 때, 동물원 역이라는 곳에 내려서 제일 처음 본 건물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붕 첨탑이 박살이 나버려 뭔가 눈길을 끄는, 나름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로 꼽히는 그 건물의 이름이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이다.

“썩은 이빨”이라는 그다지 좋지 않게 들리는 애칭(?)을 갖고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2차세계대전 당시의 폭격으로 입은 상처를 그대로 드러낸 채 여전히 베를린의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을 보수하거나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이유는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라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철거 중인 건물로 오해할지도.

원래 첨탑의 높이는 113m.(지금 높이는 63m) 그리고 주변에 5개의 작은 탑이 더 있었다고 한다. 2,740㎡의 모자이크벽화가 장관을 이루고 약 2,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꽤 큰 교회건축이었던 듯. 지금 남아있는 부분은 원래 건물의 1/3 수준으로 첨탑과 주출입구 정도라고 하니 과거의 영광(?)을 현재 모습에서 찾기는 많이 어렵지 싶다.

부서진 건물 주위로 독특한 스타일의 현대식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육각형 모양의 건물은 종탑, 팔각형 모양의 낮은 건물은 교회 본당이라고 한다. 부서진 건물을 남겨두는 대신 교회 기능을 하기 위해 1957년~1962년 사이에 건축된 것으로 한때 베를린 시민들에게 “립스틱과 파우더케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그러고보니 꽤 비슷한;;;) 종탑에는 빌헬름 1세의 증손이 만든 종이 설치되어 1시간 간격으로 울린다고 한다.

신교회의 벽에는 21,292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박혀있는데, 건물 내부에서 보면 그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푸른 빛의 예술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누가 써놨더라… 역시 가보지를 않아서 확인 불가.

구 교회(현 기념관) 내부에는 폭격 당시 오른쪽 팔을 잃어버린 예수상이 세워져있고 양쪽에 십자가를 세워뒀단다. 한쪽에 있는 십자가는 러시아 정교회의 십자가이고, 다른 한쪽에 세워진 십자가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코벤트리 성당의 폐허에서 나온 대못으로 만든 십자가라고 한다. 뭔가 의미심장한 십자가라고 할까. (참고로 코벤트리 성당도 카이저빌헬름교회처럼 폐허가 된 부분은 그대로 보존하고 새로 성당을 신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지어졌나?

이름 그대로, 황제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 되겠다.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데 잘 모르는 양식이라 설명은 패스;; 빌헬름 1세의 손자인 빌헬름 2세의 지시로 프란츠 슈베흐텐Franz Schwechten이 설계를 맡아 1891년 3월22일(빌헬름1세의 생일)에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가 완료된 때는 1895년 9월 1일.

한창 2차대전 중이던 1943년 11월 23일, 베를린 대공습 때 건물의 2/3 가량이 부서져버린 후 이 건물의 처리를 두고 꽤 골머리를 앓았던 모양이다. 1950년대에 들어와 건축물을 완전히 복원할지, 부분 보수를 할지,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지 분분하던 의견을 모으기 위해 공모를 시작했고, 1957년 최종적으로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 교수의 안이 채택되었단다. 부서진 건물을 완전히 없애는 안에 대해서 베를린 시민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에, 아이어만 교수는 부서진 탑을 가운데 두고 새로 짓는 건물들이 감싸는 형태의 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시대의 한마디

그냥 지나가면서 봤을 때는 그저 폭격맞은 건물을 기념물처럼 보존하고 있는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었는데, 나중에야 이 건물의 역사적 의미와 베를린 시민들의 애정, 그리고 신축된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더랬다. 우리나라도 역시 전쟁을 겪었고, 수많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과 유적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만큼 시민들이 역사와 유적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한 사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기네 아파트 재건축 문제에는 핏대 깨나 세우시긴 하더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