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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교수, PD수첩, 그리고 네티즌

2005년 12월 5일

1. 황우석 교수

새튼 교수라시던가, 그 분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지난 달에 난데없이 새튼인가 뭔가 하는 아자씨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윤리를 문제삼으며 결별 어쩌구를 선언하실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게 아직도 해결이 안됐나?”였었다.

황우석 교수의 실험에 쓰인 난자의 출처에 대한 소위 안좋은 소문들,
뭐 그런 부분이 이야기된 것이 내가 아는 수준에서만 1년이 넘었고
그 이야기가 대충 잠잠해진 것도 1년이 넘었는데
왜 이 이야기가 다시 불거지느냐, 그런 느낌 말이다.

뭐, 문제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않은가.
문제가 있긴 있다는.

아니나 다를까 <PD수첩>에서 뭔가 방송한다는 소리가 나오더니
난자기증자에게 돈을 준 사실도 밝혀졌고,
헬싱키선언인가 뭔가에 위배되는 연구원의 난자 제공 의혹도 밝혀지고 말았다.

왜 이런 문제를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끄집어내서 국제망신을 자초하느냐,
따위의 대가리 없는 티내는 이야기는 뒤에 가서 언급하기로 하고,

중요한 것은 수상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노벨상 후보 어쩌구로 거론되고
(워낙 난자 관련 연구 자체가 윤리적 논란이 있기 때문에
노벨상을 실제로 수상할 가능성에 대해선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고 본다)
국제적인 줄기세포연구의 선구자가 되시려는 황우석 교수께서
아직도 대.한.민.국.의 그 후진 연구습성을 답습하고 계시다는 사실일 뿐.

그게 자본의 투입에 의한 연구설비나 여건의 질적 향상이 아니라
결국은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상명하복의 연구실문화가 개선이 되지 않아서 발생한
마인드, 정신적인 문제라는 사실이 더욱 찜찜하다.
막말로, 황우석 박사가 우리나라에서나 명성 얻고 스타가 되고 대접받으려면
연구원 난자가 아니라 더한 걸 실험도구로 사용한들 무슨 상관이겠나.
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사람이
국제적인 윤리/룰을 어기면서 실험한다는 것,
거기에 덧붙여 그런 룰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잘못됐단 말이다.

이번 일이 잘나가는 황우석 교수에게 딴지를 걸고 싶었던
다른 나라의 치밀한 음모라는 설도 신빙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황우석 교수가 연구과정에서 명백하게 윤리적으로 잘못을 했다는 거다.
유감스럽다.

2. PD 수첩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도 조금 그런 생각이 있었지만
대학교에 들어가 소위 운동권이라는 사람들과 가깝게 접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자신이 하는 일/행동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하다보니
그 일/행동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약간의 무리수는
그냥 감수하거나 별 상관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어떠한 경우에는 과도한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물론 대부분의 폭력시위는 쌍방 공통의 문제다)
어떠한 경우에는 사소한 진실에 대한 가벼운 왜곡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PD수첩>이 윤리논란에 이어 황우석 교수를 물고 들어간 것은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검증은 사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전문과학잡지에서 하는게 맞고, 그걸 <PD수첩>이 딴지 걸 수는 없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서 A+B=C가 맞다는 가설을 확신하고 있을 때
그런 실험결과를 도출한 적이 없거나 극히 드문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실험결과를 얻었다고 논문에 기재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앞서 말했듯 대한민국의 연구환경이라는 것이 대충 그랬으니까.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기도 하다. 외국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사례니까)

그런데 문제는 <PD수첩> 역시 같은 오류를 범했다는 거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누가 심어줬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너무 강하다보니
그것을 입증하겠다는 의욕이 넘쳐서 무리한 취재를 한 것이 드러나
가뜩이나 시청률도 안좋은 판국에 <뉴스데스크>에서 대국민사과방송까지 하고 말았다.
솔직히 <PD수첩>, 그동안 숱한 권력형비리 등 다루기 힘든 주제를 다루면서
일정부분 이번 사건처럼 뻥도 치고, 협박도 하고, 몰카도 쓰고, 그래왔을 거다.
어떻게 보면 그런 방식의 취재가 <PD수첩>의 특권이기라도 한 양 착각했을지도 모르고
감춰진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밝히려는데 이 정도의 무리수는 크게 상관없다는
조금은 나이브한 의식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거대한 숨겨진 진실을 밝혀낼 수 없다는
영웅심리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힘없는 일반인들한테(무슨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도 아닌)
취재를 빙자해 이런저런 협박성 멘트를 날리면서
은근히 자신의 권력(언론도 권력이다, 분명)을 과시한 점은
인터넷에서 한창 거론되는 MBC 문닫을만한 사태는 아닐지 몰라도
모든 걸 제로로 놓고 다시 고민해볼 정도의 문제는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들이 캐고 싶었던 것이 전부 진실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PD수첩이 취재과정에서 해서는 안될 잘못을 저질렀다는 거다.
유감스럽다.

3. 네티즌

솔직히 황우석 교수나 <PD수첩>에는 유감스러운 정도밖에 없다.
나같은 개인주의자는 국익에도 별 관심없고 숨겨진 진실에도 별 관심없다.
그리고 경위야 어찌됐든
1라운드는 황우석 교수의 사과문 발표,
2라운드는 MBC의 사과문 발표로 끝나는 것 같으니
1승1패, 3라운드 무산될 가능성 크고, 대충 잘 끝난 것 같기도 하다.

뭐 황우석 교수를 비롯한 한국과학계가 타격을 받았네 어쩌네 하는데
어차피 시작은 우리가 잘못한 것, 계속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1년 전에 처음 문제되었을 때 순순히 인정을 하던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앞으로 철저히 검증받아가며 연구하면 될 일이지
이제 철저히 검증받아야 되니 연구 못하겠다, 는 식으로 말한다면
무슨 애들 투정도 아니고… 치워라.

갑자기 뜬금없지만 약 8년전, IMF 시절로 돌아가보자.
난데없는 국가적 위기에 봉착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특유의 근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 “금모으기운동”이었더랬다.
뭐, 금모으기 운동 자체를 뭐라고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우리집도 동참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가 내가 인터넷을 처음 배우고 있을 때쯤 되는데
PC통신 및 인터넷을 통해 대대적으로 퍼졌던 소문 중 하나가
영화 <타이타닉>이 관객 몇십만 몇백만을 넘어가면
우리나라에서 애써 금모으기 운동한 거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만큼의 외화가 도로 미국으로 빠져나간다, 뭐 그런 거였다.

자, 이거 말이지, 어려울 거 하나도 없다.
극장 1인 관람료 얼마인지 다 알고, 금값 얼마인지 다 안다.
단순한 계산기(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되는)만 있으면 답은 금방 나온다.
개구라다.

그런데 그 계산기 몇 번 두드리기 귀찮았던 수많은 네티즌들에 의해서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이니까 네티즌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편의상)
<타이타닉 불매운동>이 엄청나게 퍼졌더랬다.
물론, 워낙 말도 안되는 거라 금방 사그라들고 타이타닉 흥행 잘되긴 했지만
당시 인터넷문화를 잘 모르던 나는 이런 헛소문이 금방 퍼져나가는 것에
뭐랄까, 공포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더랬다.
계산기 한두 번 두들겨보시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 통하지 않는
좀 심하게 말해서 광기어린 익명의 다수를, 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보자.
최근 몇 달간, 인터넷을 보면
몇 가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여론이 아주 단순하게 한쪽으로 휙 몰려가는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답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이게 죽 열거해보면 서로 상충되기도 하는데
상충되는 주제가 동시에 터지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이슈 이슈마다 사람들, 너무나 당연한 답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발광이 이만저만 아니더라.

솔직히 황우석 교수 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 모든 네티즌 여론이 황우석 교수에게 확 몰려버렸던 거였다.
물론 지금까지 황우석 교수가 일종의 신화처럼,
척박한 한국의 과학환경에서 찬란하게 피어난 한송이 꽃이었음을 부정하는 거 아니다.
그가 세계적인 성과를 이뤘고 앞으로도 세계적인 성과를 내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스타라는 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모든 것들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100% 옳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황우석 교수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그 발광하던 네티즌들 중에 난자기증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아는 사람 몇이 나 됐나.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생명윤리의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사람 몇이나 됐나.
헬싱키 선언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됐으며
<사이언스>와 <네이처>가 얼마나 권위있는 곳인지 아는 사람 몇이나 됐냐 말이다.

그래, 생각난 김에 막 가볼까.
얼마전에 MBC 토론 프로그램에 홍 모 기자가 나와서 황우석 교수 옹호했다던데
그 사람,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네이처에 기재될 때 엠바고 깨고 먼저 보도했었다.
그때 네티즌들이 홍 모 기자 반은 잡아죽이려고 하면서 뭐라고 했었는지 아나?
세계적인 유력지에 기재될 때는 걔네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야된다고,
그런데 이렇게 먼저 보도해버리면 국익에 얼마나 저해되는지 아냐고,
그랬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뭐?
세계적인 유력지에서 제시하는 기준(헬싱키선언)은 상관없고,
우리나라 일반국민이 생각하기에 연구원의 난자기증은 문제가 없으니
그냥 덮어둬도 되는 걸 괜히 캐내서 국익에 얼마나 저해되는지 아냐고 한다.

정답 나오지?
판단의 기준이 없다. 상황에 따라서 왔다갔다 한다.
있다면 오직 국익. 실체도 없고 형체도 없는 국익. 그것뿐이다.
잔인하게 말해서 국익에서 ‘국’을 빼고 ‘사’를 넣어보자.
자기 이익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뭐라고 부르나?
그런 평가가 개인이 아닌 국익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나?
미안하지만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두리뭉실한 판단기준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십대도 모르고 40대도 모른다는 소위 넷심을 형성하는 사람들인가보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러니까 외국에서 왜 황우석 교수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그냥 외국에서 높게 평가하니까 우우 하면서 황우석 황우석 숭배하는 거 아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황우석 교수가 무엇을 연구하고 있고
왜 외국학계에서 그 연구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 A4용지에 차분히 정리해보면 된다.
정리가 다 됐으면 당신은 내가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다. 빠져라.

그놈의 생각없는 네티즌들, 계산기 몇 번 두드리기도 귀찮은 네티즌들,
세계적인 학계의 인정을 받기 위해 엄격하게 제시된 기준보다
우리나라 평범한(사실은 무지한) 시민의 상식이 더 우선한다고 우기는 네티즌들,
당신들이 대책없이 흥분하는 바람에 사태가 오히려 더 커졌다는 생각은 안하나.
그냥 황우석 교수가 사과했을 때 조용히 끝났으면 됐을텐데,
황우석 교수 다시 연구 재개하고 그렇게 죽죽 진행됐을텐데,
MBC를 문닫게 한다느니 사장 물러가라느니 광고 빼라느니 하는 바람에
<PD수첩>이 악에 받쳐서 여기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은 안하나.
황우석-MBC 모두에게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힌 것
내가 보기엔 당신들, 네티즌들이다.

다 끝나버린 일, 이제 와서 이런 소리 하는 것도 좀 웃길지 모르지만,

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