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속의 독수리 5형제

이번 글은 “삐딱하게 건담보기”라는 타이틀 및 원래 취지에 걸맞는, 그냥 뒤틀어진 심사로 심퉁불퉁 중얼거리는 내용이다. 깊게 생각해보고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오래 보아왔던 자료와 감각에 의해서 그냥 단순비교해보는 글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고 괜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고 시작하는 게다.

앞선 글 로봇들의 성에서 짧게 언급한 바 있었던 주제를 확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뭐냐하면 “변신합체로봇”들을 조종하는 떼거리 조종사들의 구성비에 관한 이야기인데, 세 명일 경우 멋지고 잘생긴 주인공(성격은 대게 열혈파), 날카롭게 생기고 카리스마 넘치고 능력도 있지만 주인공의 라이벌인 남자(대개 성격적인 결함이 있다)와 꽃순이 여자. 네명일 경우 듬직하고 등빨좋은 남자가 추가되며 다섯명일 경우 장난꾸러기처럼 생긴 꼬마가 추가된다는 내용이었다. 로봇물이라는 특성상 남성 위주의 라인업을 짜기 위해 세번째 여성 캐릭터와 네번째 남성캐릭터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여튼 이런 형태의 전형적인 예이면서 선구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비록 슈퍼로봇물의 주인공들은 아니지만) 독수리 5형제이다.

1972년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발표한 <독수리 5형제(과학닌자대 갓차맨)>의 주인공 다섯명은 위 그림과 같이 앞서 열거한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독수리 5형제>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저들의 세세한 신상명세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저런 전형적인 멤버로 구성된 슈퍼로봇물이 어떤 게 있나? (<독수리 5형제>는 분명 슈퍼로봇물은 아니니까) 지금부터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 짐작으로는 거의 독수리 5형제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기 때문에 독수리 5형제의 성공에 힘입어 독수리 5형제의 캐릭터 구성을 참고하거나 빌려온 것들이 대부분 아닐까 싶은데, 구체적으로 보도록 하자.

겟타로보 (1974년작) / 겟타로보 G (1975년)

(참고로 위의 그림은 <겟타로보 G>의 등장인물들이다) <겟타로보>는 지금도 후속편이 나오고 있는 열혈(!)슈퍼로봇물의 걸작 중 하나다. 굳이 열혈(!)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겟타로보>의 주인공이자 겟타1-겟타드래곤의 파일럿인 료마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열혈(!)이기 때문인데, 정의감에 활활 불타오르는 주인공 료마에 비해 겟타2-겟타라이거의 파일럿인 진은 천재적인 두뇌에 냉정하고 반항적인, 한마디로 날이 서있는 성격으로 료마의 정반대에 서있는 캐릭터였다. 당연히 겟타3의 파일럿인 무사시는 의리파에 터프하지만 나름대로 순정파이고 상극인 두 사람 사이에서 어느 정도 조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될 수밖에. 겟타로보가 모두 3대이므로 파일럿도 이상 3명뿐이지만 위 그림에서와 같이 서브머신으로 게타팀을 지원하는 미치루라는 여성캐릭터와 그녀의 꼬마동생 겐키가 굳이 등장하여 기어이 5명을 채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독수리 5형제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의심된다는 이야기다. (덧붙여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하면, 겟타3의 파일럿 무사시가 마지막에 동료들을 위해 자폭하는 장면은 김청기 감독님께서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 1,2,3>의 뚝심이 자폭장면을 통해 오마쥬했다는 비아냥성 풍문이 들려오곤 한다)

블록커군단 머신블래스터 (1976년)

이 작품은 국내에 비디오로 들어오지 않았던지 나도 실제 작품을 보지는 못했고 이 작품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편이다. 다만 프라모델로는 제법 유명했는데 혹시 은색과 검은색이 돋보였던 <철가면>이라는 프라모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당시 돈으로 1500원, 무지하게 비싼 프라모델이었다) 블록커군단은 보스파르다, 로보크레스, 불시저, 썬다이오 이렇게 4대의 로봇으로 구성되는데 (겟타로보보다 1대 더 늘어났다) 앞서 말한 <철가면>이 로보크레스였다. 위 그림에 나오는 4명의 소년(?)이 각각 로봇의 파일럿인데, 솔직히 보지 못한 사람으로 이 4명의 파일럿에 대한 신상명세를 줄줄이 읊을 수는 없지만 그림만 봐도 캐릭터가 대충 와닿을 정도다. 끝에 있는 소녀는 파일럿이 아니라 지원팀 정도일텐데 어떻든, 똑같은 캐릭터 구성으로 5명 채웠다.

초전자머신 콤바트라 V (1976년)

작품 제목에 “콤바트라”라고 할까, “컴배틀러”라고 할까 고민 잠깐 했는데 일본어 원제목에 충실하기로 했다. 앞서 소개했던 두 편의 만화는 파일럿들이 각각 하나씩의 로봇을 조종했지만, 콤바트라 V는 하나의 로봇이 각각 5대의 머신으로 분리/합체되는 형태였다. 다시 말하면 5명의 파일럿이 하나의 로봇을 조종한다는 뜻이다. 이 5명 중 리더격인 1호기 배틀제트의 파일럿 효마는 겟타로보의 료마와 거의 비슷한 캐릭터이고,(명랑한 성격이 조금 더 강조되었다는 정도?) 2호기 배틀크래셔의 파일럿 주조는 겟타로보의 진과 판박이다. 3호기 배틀탱크의 파일럿인 다이사쿠는 덩치큰 유도선수 출신이라는 점까지 겟타로보의 무사시와 흡사한데 성격만 좀더 부드럽다. 여기에 양념처럼 끼어든 4호기 배틀마린의 파일럿인 치즈루(여성), 5호기 배틀크래프트의 파일럿 코스케(꼬마)까지 구색은 확실히 갖춰놓았다.

UFO전사 다이아포론 (1976년)

이 작품을 집어넣으면 괜히 혼란만 줄까 싶어 빼려고도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넣는 쪽이 나을 것 같아 포함시켰다. 그림을 보면 주인공의 라이벌 역할을 해줘야할 “냉철한 성격의 카리스마 사나이”가 없는데, 더 자세히 보면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세명의 남성 캐릭터들이 모두 주인공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개성 및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눈치챌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주인공인 타케시에게 상당히 집중이 된 작품이지 5명의 캐릭터가 굳이 필요한 작품은 아니라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5명의 파일럿…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힘들어 굳이 집어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로봇은 3단변신을 하는데 왜 파일럿은 5명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있으면서.

초인전대 바라타크 (1976년)

이 작품 같은 경우도 전형적인 <독수리 5형제>는 아니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결정적인 이유는 주인공이 팀의 리더가 아니라는 점, 그렇다보니 첫번째 캐릭터와 두번째 캐릭터의 구분만 모호해진 게 아니라 세번째 캐릭터까지 모호해졌다는 점 등등…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면 전형적인 <독수리 5형제>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에서 보듯 일단 와꾸는 제대로 갖춰놓은데다가 열혈주인공, 냉정라이벌, 듬직덩치맨의 삼박자는 크게 봐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을 적극 고려하여 같이 소개하게 되었다. 그림 왼쪽부터 열혈주인공인 유지(엄마랑 형을 찾는게 싸움의 주목적), 팀의 리더이자 냉정캐릭터 맥, 듬직덩치맨 디키, 이쁜 여자 유리, 꼬마 프랑코.

초전자머신 볼테스 파이브 (1976년)

전형적인 <독수리 5형제>물의 대표격. (일부러 뒤에 소개했다). <볼트 파이브>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역시 일본원제에 충실했다. 주인공-듬직남-꼬마의 3형제에 냉정반항아와 꽃미녀가 추가된 구성을 갖고 있는데,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냥 <독수리 5형제>다. 캐릭터에 대해서는 더 할 말 없고 작품에 대해서 쓸데없는 말 몇마디 덧붙이면, 작중배경이나 결말 등이 생각해볼 여지를 상당히 많이 남겨두는, 그래서 꽤 좋아하는 만화 중 하나다.

자아, 이제 건담의 차례다. 설마 건담이 언급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다른 작품들의 예를 죽 읽어오면서 건담에서 내가 집어내려는 캐릭터들을 미리 눈치챈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거나 혹 알았지만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자세히 썰을 풀도록 하겠다.

<기동전사 건담>, 우리가 흔히 퍼스트건담이라고 말하는 작품 속에서 화이트베이스의 파일럿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몇 명일까…? 정답은 5명이다. 좁 존이라는 엑스트라성 캐릭터를 예로 들며 6명 또는 그 이상이라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고 가장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숫자가 5명이다. 5명이 누구누구인지 막 헷갈리는 사람들을 위해 한명한명 이름을 부르겠다. 아무로 레이, 류 호세이(죽은 후에는 스렛가 가로우로 대체), 하야토 고바야시, 가이 시덴, 세일러 마스.

있을 거 다 있다. 열혈주인공=아무로, 냉정-반항캐릭터=가이, 듬직덩치남=류, 꽃미녀=세일러, 꼬마=하야토까지. 물론 구성이 앞선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복잡해진 탓에 냉정-반항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들고 이 캐릭터가 갖고 있어야할 주인공과의 라이벌 의식이 꼬마캐릭터인 하야토에게 일부 옮겨갔는데, 다른 작품들에서도 냉정-반항캐릭터가 항상 주인공의 라이벌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이처럼 비관적 허무주의자들도 충분히 있었다. 덩치만 작다는 이유로 하야토에게 꼬마캐릭터 이미지를 씌우는건 심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아무로와 동갑으로 설정된 하야토의 덩치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서 그렇게까지나 작아야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필 5명, 그것도 구색 다 맞춰놓은 5명이다. 우연의 일치일리는 없다. 그 당시 슈퍼로봇물의 흐름에서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하면서 전형적인 캐릭터 배치이기 때문이다. 캐릭터 구성이 중요한게 아니지 않냐고 물어보면 다른 슈퍼로봇물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대답하겠다. 요지는 퍼스트 건담에서도 그때까지의 전형적인 슈퍼로봇물 냄새를 이런 방식으로도 피우고 있다는 점이니까. 다만 상대적으로 아무로의 비중이 높았고 나머지 캐릭터들의 비중에서 세일러나 하야토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반적인 <독수리 5형제>의 구성과는 좀 다른 느낌을 주었다는 것뿐.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없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나, 그냥 뒤틀어진 심사로 심퉁불퉁 중얼거리는 내용이라고.

2 Responses

  1. 길손 말해보세요:

    옛글에 답달기는 좀 그렇지만, 퍼스트 건담의 합체씬은 슈퍼로봇물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장면이지요^^;

  2. 1 말해보세요:

    ㅋㅋㅋㅋㅋ
    항상 낯설지 않던 캐릭터 구성을 보며 느낀점을 이렇게 잘 정리해 놓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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