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숨겨진 도시



어떤 건물인가?

자금성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있는 자미원(紫微垣)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명나라 시대부터 중국 왕실의 궁궐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자금성은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왕궁이며 가장 완전한 상태의 왕궁이기도 하다. 남북길이 약 1,000m, 동서길이 약 760m, 면적 약 72만 평방미터, 9000여칸의 방이 있다. 왕궁 주위는 높이 3m의 장벽으로 둘러싸여있고 장벽 밖에는 하천을 둘러파놓았다.

남쪽의 오문(午門)이 정문으로 하여 동쪽의 동화문(東華門), 서쪽의 서화문(西華門), 북쪽의 신무문(神武門) 등 4개의 성문을 가지고 있다. 성내는 남쪽과 북쪽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지며 남쪽의 오문에서부터 태화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북쪽으로 늘어선 부분을 외조(外朝)라 부르며 공적인 장소로 사용되었던 부분이다. 이중 태화전(속칭 금란전)이 남북 약 33m, 동서 약 60m의 크기를 가진 자금성의 정전(正殿)으로 황제가 대전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이며, 보화전은 매년 추석에 황제가 연회를 베풀어 귀빈을 접대하던 장소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의 즉위식이 행해지는 곳이 바로 태화전이다) 북쪽은 황제나 후궁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내정(內廷)이라 칭한다. 보화전 북쪽의 건청문부터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늘어서있는데 이 3궁과 주변의 동서 6궁을 일컬어 3궁6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자금성 관광은 천안문에서 시작하여 오문을 통해 내금수교를 건너 태화문을 통과하여 외조3대전(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을 지나 내정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25년 이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일반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에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관광책자도 많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정원사가 된 마지막 황제 푸이가 입장료를 내고 자금성으로 들어가 태화전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숨겨두었던 귀뚜라미통을 찾아내는 장면… 나름대로 뭉클한 장면이었다고 기억된다)

어떻게 지어졌나?

자금성은 1406년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가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건설을 시작하였다. 진녕후 진규가 자금성 개축조영계획의 총지휘를 맡았고, 설계/계획은 기술자 오중(吳中)이 담당했다. 자금성 건축에 관한 일화로 영락제를 보좌하던 한 스님이 천제가 살고있는 천상의 도시를 꿈 속에서 보고 이와 똑같은 수도를 만들 것을 영락제에게 진언하면서 건축이 결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앞서 말했듯 자금성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된 유래이기도 하다.
자금성이 완성된 이듬해 봉천전, 화개전, 근신전의 외조3전이 화재를 당했고 그 다음해에는 황제의 어좌소였던 건청궁이 화재를 당하는 등 크고 작은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 1644년 명을 멸망시켰던 이자성이 북경에서 철군하면서 자금성에 불을 질러 역시 중요한 건물 대부분이 불타버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꾸준히 재건을 한 탓에 지금은 건물 이름만 몇몇 바뀌었을 뿐 창건 때의 모습을 거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시대의 한마디?

대한극장에서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았을 때, (재수없게 스피커 옆에 앉는 바람에 귀청 떨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영화에서 가장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어마어마한 모습의 자금성이었다. 중국 정부가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이탈리아에서 공산당(사회당?)원이었다는 이유로 이례적으로 자금성에서 촬영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일화가 있던데, 하여튼 자금성에서 직접 촬영을 한 것이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에 한층 빛을 더한 것만큼은 틀림없는 일이다… 다만 한가지,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의 대히트로 인해 혹시 자금성 관광을 하며 “영화 촬영지 견학” 수준의 마인드를 갖고 간다면, 자금성에서 500여년간 살아온 24명의 황제들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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