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이야기] 한메타자교사 / 윈도우 3.0 / 게임들

한메 타자 교사를 익히다

내가 대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리포트는 학교마크 눌러찍힌 리포트 용지에 볼펜으로 정성껏 즈려밟아써서(말이 그렇다는 거지 별로 정성들이지는 않았다. 개발새발…) 올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일부 교수님들은 컴퓨터 워드 작업으로 올리면 F를 준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 컴퓨터를 모셔놨음에도 불구하고 워드프로세서랑은 별로 친해질 일이 없었는데, 한메타자교사, 일명 HTT라는 프로그램이 전산실을 나돌기 시작하면서 타이핑 속도를 뻐기는 인간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잘난 척 빼면 시체인 내가 그런 일에 빠질 리가 없었다. 집에서 한메타자교사를 실행시킨 뒤, 먼저 자판 익힘부터 하나씩 눌러봤다. 손가락이 굳어갖구 삑사리가 날 때마다 컴퓨터는 삑삑거리고… (참고로 당시 내 컴퓨터엔 사운드카드가 없었다. 옥소리 카드가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이었지만) 열이 받혀서 정말 일주일내내 한메타자교사를 붙잡고 늘어졌고, 한메타자교사를 하지 않을 때는 타자 연습을 위해 그동안 공책에 습작으로 써둔 소설을 죄다 컴퓨터로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쓰다보니 유치찬란한 문장이 맘에 안들어 집에 있는 건담 미니백과를 죄다 워드로 다시 치기 시작했다. (그때 쳐놓았던 워드파일들이 나중에 건담 홈페이지 만들 때 정말 도움 되더라…) 나중엔 정말, 잘려고 드러누웠는데 천정에 한글자판이 딱 펼쳐지더니 내가 생각하는 문장이 한글자씩 눌리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당구 초보때 그런 일이 종종 있다더니…)

윈도우 3.0을 만나다

지금은 재미교포와 결혼해서 시애틀로 도망가버린 김 모군이란 친구가 있는데,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연속 같은 반이라 많이 친하게 지냈다. 이 녀석하고 전화하면 여자들도 아닌데 30분 넘게 수다를 떨었으니까… 암튼 그놈은 기계과를 가서 나보다 컴퓨터를 빨리 익혔는지라 가끔씩 이것저것 물어보기 좋은 친구였는데, 하루는 통화하다가 이 녀석이 윈도우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난 그런거 없는데? 그랬더니 깔아준다며 바로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다. (그놈 집과 우리 집은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 당시 그 녀석이 윈도우 3.0에 대해 했던 말은 “별 거 아닌데 갖구 놀기는 재밌어”였다. 하긴, 내가 윈도우 3.0으로 처음 해본 프로그램은 그 유명한 “지뢰찾기”였으니까.

젤리아드, 페르샤의 왕자

앞서 말한 김모군은 용산 컴퓨터 상가에 뭐 아는 선배가 있다고 자주 찾아가는 모양으로, 언젠가 한번 나를 데리고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5.25″ 디스켓으로 널려있었는데 (당근, 죄다 불법복제…) 그 중에서 내가 카피해온 프로그램이 “젤리아드”였다. 해본 사람은 알고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젤리아드… 내가 해본 최초의 롤플레잉 게임인데, 아직 (지금도 내 컴에 깔려있으므로… ^^;) 막판을 깨지 못했다. 나가는 문을 못찾아서…
그리고 그 당시 컴퓨터 게임계를 풍미했던 (돈은 못벌었을 거다…) “페르샤의 왕자”도 아마 이공관 전산실에선가 구해서 깔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 놈을 깨기 위해서 교보문고를 수십번 들락거렸고 (게임 매뉴얼을 사기 싫어서…) 마침내 성공했을 때… 조금… 허탈하더라.

수호지, 그리고… 삼국지

당시 이공관 PC실은 비록 우리 집 컴퓨터보다 사양이 떨어지는 허큘리스모니터에 286 기종이 주류긴 했지만 우리 학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한없이 개방된 전산실이었는데, 불법 복제 프로그램과 바이러스의 온상이었다. (나도 여기를 통해서 유일하게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들어나봤나 DirII 바이러스…) 일단 바이러스는 바이러스고 워낙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깔려있다보니 나의 2학년 2학기 생활은 수업, 족구, 아니면 PC실에서 보내는 게 전부였다. 거기서 아무 생각없이 복사해온 게임이 바로 KOEI의 수호지였다. 영어판이었는데… 수호지를 제대로 못읽은 탓인지 몰라도 그럭저럭 괜찮기는 했지만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어쨌든 김 모군에게 이런 게임 있다고 보여줬더니 자기는 수호지는 잘 모르고, 삼국지는 안다고 그러는게 아닌가. 구해달라고 떼썼더니 깔아줬다. 삼국지 2를… 그래갖구… 그래갖구는 뭐 그래갖구겠는가… 날밤 까면서 열라 통일을 위해 매진했지…

삼국지가 나에게 준 것

많이들 해봤을 것이다. PC Tools로 삼국지 세이브 파일을 에디트 하는 거… 장수 능력치 막 조작하고 금(金)도 올리고 하는 거… 나도 그게 하고 싶어서 김모군(졸라 많이 괴롭혔군…)한테 막 물어봤는데 PC Tools로 하는 거라는 정도밖에는 안 가르쳐줬다. 지가 알아서 해봐야된다며… 그래서 어떻게 헥사코드 모드로 들어가는 것까지 배워갖구 떡 봤는데… 막막 하더군… 막 위아래로 스크롤 해보다보니 Liu Bei(유비), Cao Cao(조조) 같은 눈에 익은 영문이 보이는게 아닌가? 옷, 이걸 고치면 이름이 바뀔라나? 어디서 ASCII 코드 목록 나온 책을 찾아낸 다음 고쳐보니… 됐다. 그 다음은… 뭐 일사천리였지. 두세번 고쳐서 실험해보면 금방 아는 거 아닌가. 삼국지 덕분에 나는 헥사코드 에디트하는 법을 깨우쳤다. (나중엔 젤리아드 세이브 파일도 에디트해서… 내가 직접 깨진 못했지만… 엔딩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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