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1일

남들이 결혼식 한번 치르고 나면
뭐 정신없다, 누가 왔다갔는지도 모른다,
이런 거 저런 거 챙길 시간이 없다, 기타 등등,
그러한 종류의 이야기들을 하도 많이 하길래,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왜 그들을 그렇게 만드느냐,
궁금했었는데.

마침.
드디어 하나뿐인 형님이 오늘 4월21일 결혼식을 하면서
신랑도 아니고 단지 신랑의 하나뿐인 동생이라는 이유로
정신 하나도 없는 그런 상황을 아주 제대로 맞이하고 말았다.

원래 계획은 뭐, 사촌 두 명한테 접수 맡겨놓고,
나는 카메라 들고 사진이나 좀 찍고 찾아오시는 친척분들한테 인사나 하고,
여유작작인 것처럼 써놓기는 했지만 사실 저것도 나름 바쁘게 왔다갔다 하고 오고 가는 사람 다 챙겨야 하는 일이긴 한데,
하여튼 그렇게 보낼 생각이었더랬다.

그런데 현실은,
결혼식 시작 한시간 전에 (나름 여유있게 간다고) 도착해놓고도
이미 도착해서 접수시키려고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을 보고 어마 뜨거라 한 번 하고,
손님들 나눠드릴 식권하고 주차권 사무실에서 받아온다고 또 난리난리,
방명록 접수노트 받아서 펼쳐놓고 겨우겨우 한 분씩 이름적어 받다보니
사촌 두명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내가 몸을 빼서 다른 데 돌아다닐 틈이 없는 거라.

일단 카메라는 사촌여동생한테 맡겨서 대신 사진 좀 찍으라고 하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다 흔들려버렸음 -_-)
손님들 축의금 접수 받는 쪽에 좀더 매진하려는데,
이게 결혼식장이 3층이라 왠만한 분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니,
엘리베이터가 한번 도착할 때마다 손님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다시 또 도착하면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사람들은 줄서서 계속 축의금 건네주면서 식권주세요 주차권주세요 혹시 이 근처에 차 마실 곳은 없나요? 등등 묻질 않나,
화환 배달해온 사람들이 받았다는 확인을 해달라고 쫓아오니 싸인도 해줘야되고,
가까운 친척 먼 친척 계속 오시는데 아는 척하는 분도 계시고 미처 아는 척 못한 분도 계시고 (내가 정신없이 바쁘니 아는 척 안하고 그냥 가시는 분도 계시고)
아버지 손님 어머니 손님 물밀듯이 밀려와 작은아들이죠? 한마디 묻고 가시는 분들은 또 왜그리 많은지. (그러면 또 바쁜 와중에도 눈마주치고 인사라도 챙겨드려야되고)

한시간쯤은 금방 가더만.

본격적으로 예식이 시작된 다음에도 손님은 그칠줄을 모르고
(나, 앞으로 남의 결혼식은 빨리빨리 가기로 결심했음)
당연히 하나뿐인 형의 결혼식은 신랑이 입장하는지 신부가 입장하는지 둘이 맞절하다 헤딩을 하는지 쳐다볼 겨를도 없고
(이러니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식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주례선생님 목소리가 높아질 때쯤) 겨우 여유가 생겨서 식장 한번 기웃거려보다가
다시 받은 봉투 정리를 해야될 것 같아서 도로 접수대로 나와봤는데
여전히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정리는커녕 계속 접수만 받다가 다시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신랑신부 퇴장하고 있더군.

여기까지는 뭐, 그래도, 어느정도 각오했다면 각오했다는.

그런데 접수는 여전히 바쁘고, 직계가족이라고 사진은 또 찍어야 되고,
일단 급한대로 달려가서(정말 달려갔음) 친척들 가족들 사진 찍는데 겨우 얼굴 내밀고나서
또 접수받는 곳으로 달려가서 축의금봉투 가방에 챙겨넣고
(그 와중에도 또 사방에서 인사하는 가깝고 먼 친척들!!)
부모님 모시고 식사하러 가려니 이제는 식권이 모자라네!!!!!

추가 식권 알아본다고 또 사무실로 식당으로 방방 뛰어다니고
겨우 식권 얻어서 이제 식사 좀 하려니 신부측 인사(촌수가 복잡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가 찾아와 이따 폐백까지 다 마치고 계산할 때 연락달라고 폰번호 남겨주고
밥 좀 먹으려니 또 신랑측 접수담당자가 어쩌구저쩌구 방송나와서 찾아대고
접시 집어던지고(은유적표현-_-) 찾는데로 가보니 다른 접수담당자가 왔다갔다고 그러고 -_-;;;;
겨우 이제 밥 좀 먹으려고 하니 입맛 싹 달아났더만.
부페였는데 먹는 둥 마는 둥 두 접시 갖다가 뚜적뚜적 먹어버리고 땡.

이제 폐백하러간다고 신랑측 친척 우르르 몰려가는데 역시 끼여서 따라가고
거기서 작은할아버님의 일장연설(역시 교회장로님은 짱입니다요)을 듣고 있는데 또 어떤 놈이 와서 신랑측 접수담당자 찾아대고
얼른 뛰어가서 그놈하고 빈 맥주병 소주병 콜라병 세고
신랑측 신부측 식권 갯수 맞나 한장한장 세고 있으려니
신랑측 형제들 인사해야된다고 또 누가 불러서
부르러 온 사람 대신 세워놓고 또 폐백하는데 줄달음질쳐서 어영부영 절하고
도로 접수하는데 쫓아가서 세던 식권 마저 세고
얼만지 확인하래서 계산기 뚜들겨보고 맞다고 싸인해주고
겨우 예식장 사무실에서 아버지 만나서 최종계산까지 끝내고나니

머리 속이 훵~~~~~~~~~~한 것이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

원래 예상인원 150명에서 많아야 200명, 그랬었는데
방명록에 이름적힌 사람만 320여명,
접수된 식권은 251장.
다른 결혼식 가보면 한두 명만 있어도 접수 잘만 보던데 우린 오늘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들 그렇게 나만 찾으면서 괴롭히는 걸까.
(식권이고 주차권이고 다들 나만… 대체!!!)

식 마치고 집에 와서도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저녁밥만 미친듯이 먹어버리고나서 밤 12시 되가니 이제 정신이 좀 들어서
길게길게 넋두리하고 있는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