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공간 사옥] 보고싶은 건물, 일하고싶은 건물

2003년 12월 24일



어떤 건물인가?

1998년인가, 건축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50년사상 최고의 건물을 뽑아달라는 무슨 설문조사가 있었나보다. 거기서 1위로 꼽혔던 건물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좀 심하게 말하면 직접 건물을 봐도 이게 왜 좋은 건물이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가는, <공간 사옥>이었다. (1위가 아니라 2위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위는 김중업 선생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었겠지)

우리나라의 근현대건축가 중 김중업 선생과 함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김수근 선생(1931~1986)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기도 하는 <공간 사옥>은, 이름 그대로 김수근 선생이 이끌었던 건축사무소 “공간”의 사옥이다. 3호선 안국역에서 내리면 코앞에 있는 현대그룹 본사(지금은 현대그룹이라고 하기가 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 년 전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일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현대그룹 본사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방 찍더니 <공간 사옥>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는 김수근 선생이 지었던 벽돌건물 하나였지만, 그 후 “공간”의 대표 자리를 이어받은 장세양 선생이 통유리로 이뤄진 독특한 외관의 신사옥을 이어붙여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신사옥이 지어진 지는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공간 사옥>을 말할 때는 구사옥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김수근 선생의 구사옥만을 놓고 보면, 우연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정말 “공간”에 대한 고뇌와 배려가 제대로 살아있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밖에서 보면 그냥 네모딱딱한 벽돌건물이겠지만, 안에 들어가서 그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공간들을 직접 체험해보면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질 게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 건물은 일반인에게 쉽게 공개하지 않는다. 나도 여태 한 번 딱 들어가봤을 뿐이고… 그런데 예전에 모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근무하는 설계사무소로 <공간 사옥>이 나온 적은 있었다) <공간 사옥>의 내부가 몇 층으로 이루어져있느냐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건물의 내부는 중첩되고도 다채롭다. (5층 건물 정도의 높이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대략 14층 정도로 분절되어있다고 한다)
<공간 사옥>은 이 건물이 갖는 건축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한국근대건축의 거장인 김수근 선생의 사무실이었다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다가, 종합예술지(나는 건축잡지라고 그냥 생각했는데 만드는 사람들이 이렇게 불러달랜다) 월간 ‘공간’을 출간하고 있고 지하에는 소극장이 있어서 문화예술적 의미도 상당한, 그런 건물이다.

어떻게 지어졌나?

어떻게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_-; 심하게 말하자면 뭐 자기가 일할 공간을 자기가 짓고 싶어서 지었겠지 -_-; 원래 김수근 선생이 29세이던 해에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되면서 귀국했다가 5.16 쿠데타로 설계가 중단되면서 “김수근건축연구소”를 시작한 것이 1960년인가 그렇다는데, (5.16 쿠데타랑 같은 해겠지 뭐, 설마) 1972년도에 회사명을 “공간연구소”로 바꾼 뒤 1977년에 공간사옥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공간”이란 이름은 1966년 앞서도 말했던 월간 공간이라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처음 지었는데 김수근 선생의 마음에 꽤 들었던 작명이었나 보다. (월간 공간은 처음엔 空間 이라는 한자제호를 썼는데 현재는 SPACE라는 영문제호를 쓴다고 한다. 들어서 아는 거지 잡지를 안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_-)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건축가가 자기 사무실을 짓는 거라면 옆에서 클라이언트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을 거고, 돈 대주는 사람들이 거 뭐 비싸게 그렇게 짓냐 그러지도 않았을 거고, 건물에서 살 사람들이 이건 왜 이렇게 불편해 이건 왜 이렇게 이상해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을 거고… 자기 원하는 모양대로 공간대로 지어졌을테니 이렇게 좋은 건축물로 추앙받는게 아닌가 싶다. 다만, 자기가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맘에 안들게 되었을 때 이 건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건 잘 모르겠구먼.

시대의 한마디?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뒤, 아마 설계과제 때문에 <공간 사옥>의 내부 사진을 좀 찍어보려고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동기녀석과 방위 다녀온 후배(그래서 같은 학년이 된)와 나, 이렇게 셋이 갔었는데 <공간 사옥>의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있다며 거절당했다. 그랬다가 우연찮게 “공간”에 근무하고 있던 선배를 만나는 바람에 (선배가 허락해준 것은 아니지만) 안까지 어영부영 들어가서 도둑질하듯 사진을 몇 방 찍기는 찍었었는데…(그 사진,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이렇듯, 건축설계를 배웠다는 넘들치고 <공간 사옥>에 가서 셔터질 몇 번 안해본 넘 없고, “공간”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안꿔본 넘 없을 거다. 그것이 다 한국근대건축의 거장인 김수근 선생이 후배들에게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