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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 슬램덩크

2010년 1월 31일

이 글은 얼터너티브 스포츠웹진 후추(http://www.hoochoo.com)의 게시판에 2003년 11월 15일에 올렸던 글입니다. 최근에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추억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몇 편 읽다가, 제가 오래 전에 썼던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 읽어본 김에 홈페이지에도 옮깁니다. 오래 전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저렇게 오래 됐을 줄은 몰랐네요.

어제(음.. 글 올리는 시점으로 보면, 그저께로군요. 목요일이었으니) 저희 팀장님 집들이가 있어서, 팀장님 오피스텔에 꾸역꾸역 모여들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팀장님은 34살 미혼… 시위 관련 전과기록-_- 있으며, 락밴드 마스터 경험 있는 팔방미인인데… 관심있는 분 계시면 다리 놓아드립니다)

자리 배치에 치명적인 실수가 있어서 열심히 고기만 굽다가,
계속 몰려드는 사람들 덕분(?)에 잠시 2층으로 피신했다가
슬램덩크 전권이 있는걸 보고 아무 생각없이 집어들었죠.

(참고로 말씀드리면, 아래 만화책의 대여권 관련하여 열띤 공방이 오갔기에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슬램덩크 전권을 다 봤지만, 돈주고 산 적도 없고, 돈주고 빌려본 적도 없습니다 -_-;
학교 앞 당구장과 분식집에서 모두 봤지요 -_-;;;)

예…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것이, 바로 북산이 풍전을 이기고 산왕과 맞붙기 직전인 장면부터였습니다.

그 바람에 약 2시간에 걸쳐 북산:산왕전을 끝까지 다 보고 말았는데…

개인적으로, 북산:산왕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는 슬램덩크의 매력은, 뭔가 부족해보이는 주인공(강백호)이 주변의 도움을 얻어 성장하는 모습이었는데,
산왕전에서는 너무나 완벽한 바스켓맨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앨리웁덩크도 하고… 팁인덩크에… 결승골까지…) 그게 좀 어색하게 느껴졌었고…
산왕전이 끝나고는 마치… 작가가 이제 더 얘기하기 싫다는 듯이… 좀 무성의하게 끝내버렸다는… 그런 불만도 좀 있었고…
뭐 대충 그랬었습니다. 그랬는데,

대략 2년만에 다시 본 (산왕전만 세번째 보는 거였습니다…) 북산:산왕전은
예전에 보던 느낌, 기분과 또 다른 걸 느끼게 해주더군요…

안감독님이 그런 말을 했던가요. “너의 부상을 알았지만, 점점 성장해가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바꾸지 못했다…”라고요. 세번째 산왕전을 보는 제 심정이 대충 그러했습니다.

예전에는 솔직히 그랬습니다. “에이… 풋내기 강백호가 무슨 아리우프를????? 뻥이야 뻥… 만화네 만화…”
하지만, 후반전 20점차로 벌어진 상황에서 오펜스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투입된 강백호의 느낌, 기분이 전달된 순간… 안선생님이 말했던 “성장해가는 강백호의 모습”이 비로소 전달되더군요…

등부상을 당한 후… 겨우 코트에 서있는 그를 두고…
마침내 신현철을 제치고 골밑슛을 던져서 (골은 실패하지만) 파울을 얻어낸 채치수의 모습에 감동을 먹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나 그 공을 팁인 덩크로 먹여버리는 강백호의 모습…
분명히 예전에도 봤었고, 다른 사람이 슬램덩크 속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았던 그 장면이라 익히 알고 있는 장면인데도…
아아…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나이를 먹고 술을 먹으니… 그렇게 됩디다…

어쩌면 나는 강백호는 원래 안되는 인간이라고 단정지어놓고 슬램덩크 만화를 봐왔던 건지도 모릅니다.
강백호가 실수하고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낄낄대면서 그냥 슬램덩크를 코믹만화로 보아왔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집어든 슬램덩크 속의 강백호는
나의 기대와, 오해와, 단정과는 달리
스스로 성장한 한 명의 멋진 바스켓맨이 되었는데…

새삼, 그의 마지막 명대사가 와닿더군요.
“농구를 좋아합니다. 이번엔 진심이라구요”

정대만의 삼점슛을 위해 스크린을 걸어주는 채치수…
강백호의 오펜스리바운드를 믿고 삼점을 던지는 정대만…
그런 강백호를 믿고 마지막 패스를 던져주는 서태웅…
그들의 마지막 손마주침, 그것이 새삼 감동으로 물결쳐 다가오더군요.

덕분에, 구석에 쳐박혀 옛날에 봤던 만화 다시 보느라
팀장님이 손수 준비하신 국수는 구경도 못해봤지만
(아울러 술도, 고기도 별로 입에 대보지도 못했지만)
당연히 알았어야할 슬램덩크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집들이었습니다.
…다 좋은데 집들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참 안어울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