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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리녀

2007년 3월 19일

(보통은 이런 글 쓰기 전에 잔뜩 화제가 되고 있는 소위 ‘목도리녀’의 사진이라도 같이 첨부해주는게 예의겠으나,
온통 사방에서 이놈의 목도리녀 사진을 찾아보는 건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일이므로 굳이 올리지 않음)

작년 이맘 때 “지하철 결혼식” 관련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거의 1년 만에 비슷한 주제로 글을 하나 더 쓰게 됐다.
(찾아보니 지하철 결혼식은 작년 2월 16일에 썼다. 1년이 넘었네)

귀찮게 옛날글 찾아보지 마시라고 그때 그 글을 요약해보면,

가난해서 지하철에서 결혼식 올리는게 뭐 그리 불쌍하다고 방송/신문에서 난리부르스들이었으며,
그게 진짜 결혼식이 아니고 (말그대로)연극이었다는 이유로 왜 욕을 하고 지랄들이었느냐,
였다.

뭐, 지하철 결혼식이야 최소한 걔네들이 고의적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올린 건 아니니까 욕먹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고,
UCC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기 전부터도 그랬긴 했지만)이 되면서
온갖 무슨 ~녀, ~녀 시리즈들이 나와서 네티즌들 인기를 좀 끌면
슬그머니 무슨 광고였네, 연예인지망생이었네, 뭐 이런 식으로 밝혀지는게 워낙 많았기는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저 “목도리녀” 사진을 두고도 연출이네 아니네 말이 많다. 하도 속고 살아서 이젠 무조건 의심을 하는 거겠지.

(혹여 아직도 “목도리녀”가 무슨 소린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잠깐 설명하자면,
왠 노숙자에게 길가던 처자가 빵과 음료수를 준 뒤 자기 목도리를 벗어서 둘러주는 사진이 어느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단다)

인생 시큰둥하게 사는데다 “구걸하는 사람”에 대해 기본적으로 인식이 안좋은 본인은
솔직히 그런 사진/기사를 봐도 눈꼽만큼의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다.
노숙자마다 다 벗어주려면 서울역 앞이라도 지나갔으면 얼마 못가 스트리킹이라도 했겠군!! 같은 불순한 생각을 하면 했지.
아마도 그 사진/기사를 봤을 때, 몇년 전 강남역 근처 빵집에서 노숙자에게 빵을 주는 사진이 찍혀서 화제가 되었던 아가씨에서 조금 업그레이드됐네, 라는 생각을 했었나보다.

당연히, 그 사진이 연출이건 실제건 관심도 없다.
막말로 따지고보면, 정말 익명으로 몰래 남을 돕고 사는 몇몇을 빼고는 불우이웃돕기 같은 거 솔직히 폼잡을라고 하는 거 맞잖아. 신문에 이름 크게 내줘야되고 TV에 나와서 거들먹거리고 그러려고.
그 여자가 노숙자에게 목도리 둘러주는게 연출이라서 욕먹어야 된다면, 불우이웃 돕기할 때 자기 이름 걸고 성금 내는 사람들도 다 같이 욕먹어야지.
물론 촬영이 끝나고 노숙자한테서 목도리 도로 뺐었다거나, 아예 노숙자조차 같은 연기자였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겠지만.

하여튼 결론은 1년전에 지하철결혼식때랑 똑같은데,
평소에 눈에 잘 안띈다고 (또는 일부러 외면하거나)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한테 무심한 척 살다가,
이번처럼 뭔가 하나 툭 불거지면 오바질하면서 감동먹고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냐 이거다.
오히려 그런 심리를 역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오니까 이제는 저런 사진만 봐도 연출이네 뭐네 의심만 드는 거지.

이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아직도 고작 저런 사진 한두 장에 비추어 보여주려는 의도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저런 빵 하나 목도리 하나보다 나라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이 금액으로도 몇십배는 될텐데. (사는데 부족해서 그렇지)
왜 나라에서 주는 돈 몇십만원은 쥐꼬리만큼이라고 생각하면서
길가던 사람이 건네주는 빵 하나는 감동 만발이라는 건지 난 도대체 이해가…

좀더 까놓고 말하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돈 쪼개서 자기보다 더 못사는 사람 돕는 거 아주 맘에 안든다.
(내가 맘에 안든다고 못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면 증거일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좀더 흥분하면 빨갱이 소리 들을지도 모르는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