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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 2] 전편 아닌 속편

2002년 7월 22일

자고로 영화에 있어서 속편이란, “그후로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다. 거기에 만화나 소설의 속편과는 또다른 영화 속편만의 매력을 첨가하자면,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비슷한 장면, 상황을 관객에게 던져주어 (물론 한층 업그레이드를 해야겠지만) 전편과 후편을 연결시키는 재미를 부가시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뭐 아주 색다른 예외를 제외하고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같은…) 거의 대부분 속편이 이런 공식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돈벌어야되거든…) 그런데 여기 아주 황당한(?) 속편이 하나 나와있다. 분명 속편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전편인 영화. 바로 <스타워즈> 시리즈가 되겠다.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이 개봉될 때는 일반 관객들도 보통영화의 속편을 기다리는 것과 똑같은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루크와 다스베이더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레아 공주와 한솔로는 어떻게 될지, 제국은 멸망할 것인지… 뭐 그런 것들말이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 새로운 스타워즈 삼부작의 제작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스토리는 오히려 과거로 거슬러올라간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 내용을 자세히 보면, 본 스토리 이전에 많은 역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공화국이 어떻게 무력화되고 제국이 성립되었는지, 클론전쟁이란 무엇인지, 루크의 아버지는 왜 악인이 되었는지 등등… 이렇다보니, 앞으로 루크랑 레아는 어떻게 될까?보다, 보지못한 전편(공개되지 않은 스토리니까)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 라는 궁금증을 더 많이 불러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1999년 개봉된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않는 위험>은 속편이 아닌 전편으로서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개봉시간상 속편이라는 헛점때문에, 앞서 말했던 “속편의 속성”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만약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에피소드 1>이 가장 먼저 개봉했다면, 이건 뭐 얘기를 하다가 만듯한 어영부영 이상한 스토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실패작”이 될 요소를 다분히 갖고 있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아… 잡설이 너무 길었다고 판단되는 바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은 본인이 극장에서 처음 본 스타워즈 시리즈가 되겠다. 이전 3부작이야 개봉당시에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어서 (나중에 재개봉했을 때는… 본 영화 극장가서 돈내고 또 보기 싫었다) 못봤다지만, <에피소드 1>이 한창 개봉중일 때 동호회 영화벙개에도 불참했던 이유는 바로 “내용 뻔하잖아?” 이거였다. 게다가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본인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놉시스를 모르는 영화는 보지 않는다) 영화 끝날때까지 아나킨이 어린이로 남아있었다. 오비완의 젊은 시절을 보고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타워즈 에피소드 1~3편에서 다루어야할 내용이 “아나킨이 악인이 되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아직 주인공이 갈등구조에 뛰어들기 전의 스토리라면 ‘오비완과 아나킨이 만났고 서로 스승과 제자가 되었다’는 수준의 시놉시스로도 충분만빵이었다. 나중에 테레비에서 하게 되면 그때나 보지 뭐~ 이게 <에피소드 1> 개봉 당시의 내 심정이었다.

자, 그렇지만 <에피소드 2>는 아예 올초부터 보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일단 아나킨 컸다. 아미달라 성숙했다. 둘이서 숑숑숑한단다.(극중에는 나오지 않는다. 우라질…) 그리고 아나킨이 본격적으로 악당이 되어가는 그 도입부에서 전개과정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요거 봐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던 거다.

그래서 봤다. 봤더니, 앞서 말했던 “전편의 기대감”과 “속편의 속성”을 매우 훌륭하게(여기서 ‘훌륭하게’는 칭찬의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 뒤섞어놓았더라. 일단 아나킨, 등장하자마자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미달라 찐하게 한번 쳐다봐준다. 아미달라도 아나킨을 보며 질질싸는 표정 한번 잡아준다. (…표현이 왜 이따위다냐?) 알렉 기네스처럼 수염을 기른(붙인?) 이완 맥그리거는 <에피소드 1>에서 트레인스포팅 찍다말고 온 것 같은 오비완 케노비보다 훨씬 오비완 케노비답게 보였다. 클래식에서 루크의 삼촌과 숙모로 등장하는 오웬과 베루가 (사실은 배다른, 아니 영다른? 삼촌이다) 아직 서로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이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그들이 등장하는 장소는 바로 스타워즈 1편의 무대였던 타투인의 모스 아이즐리기도 하다. 게다가 많은 관객들이 상상도 하지 않았을, (기대는 했을지도 모르는),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의 스타 “보바 팻”이 어린이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아나킨 말고) 나는 어떻게 악당이 되었나”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즉,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아항, 쟤네가 저땐 저랬구나아~ 이렇게 무릎치라고 화면에 쫙 깔아놨다는 말이다. 요것이 “전편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럼 “속편의 속성”은 무엇이다냐. 에피소드 4,5,6에서는 이미 제다이들이 몰락한 상태기 때문에 제다이가 떼거리로 나와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광선검 대결은 오비완-다스 베이더, 다스베이더-루크 딱 요렇게밖에 없다. 제다이마스터라고 무지 띄워대는 통에 영화보는 내내 나로 하여금 엄청난 기대감과 환상을 품게 만들어놓고는 정작 나타난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하게 했던 요다옹께서는, 명색이 제다이마스터라면서 칼쌈하는 포즈 한번 안취해줬었다. 이런 스타워즈 매니아들의 아쉬움을 “시대상 전편”이며 “시간상 속편”인 <에피소드 2>에서 화끈하게 풀어준다는 말이다. 이미 <에피소드 1>에서 다스몰이 콰이곤 진-오비완 케노비를 상대하는 모습에서 1:2의 전투와 양날광선검의 비기를 보여준 바 있었지만, <에피소드 2>에서는 아싸리 작정하고 제다이 기사들이 떼거리로 나와 원형경기장에서 드로이드들과 개싸움을 벌인다. 게다가 드디어, 제다이마스터인 요다옹께서 친히 광선검을 뽑아들고 최강의 적이라는 두쿠 백작과 일전까지 벌여주시는데야 스타워즈 매니아들이 어찌 깜빡 넘어가지 않겠는가.

그래, 여기까진 됐다. 그럼 다 된건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사실상 관객에게 공개된 스토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야하는 루카스 감독은, 더군다나 그 스토리가 한 소년이 성인으로 자라면서 선한 인간에서 악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복잡하게 그리면서 동시에 한 공화국의 흥망성쇄를 보여줘야한다는 엄청난 스케일임을 감안할 때, <에피소드 1>과 <에피소드 2>의 시나리오를 근본적으로 잘못 써내리고 말았다. 간단하고 알기 쉽게 표현하면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경빈을 죽이지 못해 질질 늘어진 드라마 <여인천하>처럼 되갈 소지가 다분해졌다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본인은 근본적으로 <에피소드 1>이 왜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나야했는지 이해를 못하는 입장이다. 아나킨이 콰이곤과 오비완을 만나는 과정 – 사실 이 부분은 좀 빠르게 지나가긴 했지만 – 과 그 후 아나킨이 오비완의 파다완이 되는 과정을 좀더 신속히 진행하고, 클론전쟁의 조짐을 좀더 빨리 보여줬어야 했다. 가능하다면 이미 <에피소드 1>에서 아나킨과 아미달라의 사랑에 대한 씨앗을 충분히 뿌려두고, <에피소드 2>에서 어설픈 잔디밭 뒹굴기 따위 보여줄 시간에 거두절미하고 연인으로 딱 설정해버리고 시작했어야 했다. 남은 이야기는 달랑 <에피소드 3> 한 편인데, 아직 아나킨은 엄마 죽었을때 인상 좀 쓴 것을 제외하면 희대의 악당이 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단 말이다. 게다가 아직도 스타워즈 전반기 삼부작의 하이라이트가 될 클론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미달라는 언제 애 낳아서 (그것도 아나킨 몰래) 자식들을 오비완에게 맡긴 뒤 죽을 것이며, 아나킨이 다스베이더가 된 후 제다이들을 몰살시키는 건 또 언제 늘어놓을 작정인지… 잘못하다간, <스타워즈 에피소드 3>가 <타이타닉>만큼의 러닝타임을 갖게될지도 모를 일이다. (<에피소드 2>에서만 봐도, 아나킨이 아미달라와 사랑에 빠지고 엄마의 죽음에 분노하고 오비완은 클론군대의 존재를 깨닫고 두쿠 백작과 대결하다가 아나킨의 오른팔을 잃는다는 줄거리만 늘어놓는데 2시간20분을 써버린바 있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의 팬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기대했던 <에피소드 1>과 <에피소드 2>가 전부 변죽만 울리고 말았기 때문에 (사실 이럴까봐 1편 개봉시에 보지 않았던 건데… 2편도 조금은 실패다) 이젠 <에피소드 3>을 안볼 수가 없게 되었다. 뭐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해보고 싶은 심리와 같다고나 할까. 어떻게 될지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보고싶은 그런 느낌? 그래도 흥행을 위해 루카스 감독이 <에피소드 3>의 마지막에 멋진 반전을 하나 준비해두었다는데, 두쿠 백작이 아나킨에게 “내가 니 애비다!”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놀라줄 용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