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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바다의 나디아] Yes, I Will

2002년 8월 8일

https://www.youtube.com/watch?v=m2KioJzXkBo

요즘 들어 일본에서 TV 방영하던 만화영화들이 VCD나 DVD 형태로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본 사람들은 다들 알만한 얘기를 하나 하겠다. 일본 TV 만화영화들은 꼭 오프닝 곡과 엔딩곡이 있다. 이제는 국내 만화영화들까지 벤치마킹(?)하는 이 형식은 일본에선 이미 오래된 관행(?)이 아닌가 보여진다. 최소한, 1986년에 방영되던 <기동전사 제타건담>에서는 분명히 엔딩곡이 있었으니까.

만화영화에 엔딩곡이 있다,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해준 작품이 바로 <신기한 바다의 나디아>였다. 당시로선 참 드물게, 일본에서 화제작이던 작품을 거의 곧바로 수입해와서 MBC에서 방영했었는데,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지만 <나디아>를 보기 위해 일찍일찍 집에 들어갈 정도로 (그러나 아직까지, 전체 시리즈를 다 보지는 못했다. 워낙이 건너뛰어서… 운이 좋은 건지 마지막회는 서너번 봤지만) 이 만화영화에 열중해있었다. <미래소년 코난> 이후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당시 <미래소년 코난>도 KBS에서 재방영을 하고 있었다) 하여튼 그때 <나디아>를 보면, 시작할 때 “지금~ 너의 눈에는 희망찬~ 미래가 보이네~ 우리들의~ 꿈들이~ 가득 차 있네~” 이렇게 시작하는 주제가가 흘러나오고, 한 회가 끝나면, 나디아와 장, 킹(사자), 마리가 장난감 글라이더를 마구 쫓아가는 갈색톤의 장면을 보여주면서 “내 곁에~ 다가온 어려움~ 어떻게 하면 좋아~” 이런 엔딩 테마가 따로 흘러나왔던 것이다. 보통 만화영화 한 회가 끝나면, 주인공 목소리를 내는 성우의 과장된 해설로 다음회 예고가 나오거나, 주인공이 나와서 어린이들에게 교훈 또는 교육이 될만한 멘트 하나씩 날려주는 것(미국 작품들에 특히 그런 것이 많다)에만 익숙해져있던 나에게, “엔딩 테마”란 개념은 참으로 신선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들었던 것은 “국산” 엔딩테마였고, (번안도 아니다) 최근 들어서 바로 “오리지널” 엔딩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작품과 함께 어우러지지 않다보니 별반 땡기는 부분이 없었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나디아> 동영상파일을 다운받아볼 생각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냥 흐지부지 세월이 흘러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올해 초, 회사 관두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NHK 위성TV에서 겨울방학 특집으로 <나디아>를 재방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고, 마침 종영으로 치달아가던 때라 (쌩 일본말로만 나오지만) 옛날에 본 작품 다시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시간 챙겨가며 다시 보게 되었다. 그 결과 (국내판에선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노틸러스호의 침몰 이후 나디아, 장, 그밖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 것까지 쭉 다 보고 나서… (이 장면에서 흐르는 것은 “고향으로”라는 연주곡이다) 마침내 정말, <나디아>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예의 그 갈색톤 장면과 엔딩 테마 “Yes, I Will”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장면과 그 노래를 다시 듣는 순간 거의 10년전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들어가 한 회 한 회 챙겨보던 그 기억과, 그동안 내가 봐왔던 스토리들이 물흐르듯 흘러가면서, 아 이제 정말 끝이구나 라는 묘한 허탈감과 만족감, 그런 것들이 동시에 밀려오는 바람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던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냥 한 회 끝날 때마다 들려오던 그 노래 보여주던 그 장면인데도, 이제 끝났다,라는 의미가 부여되니까 갑자기 심장이 따스해지는 그 느낌… 어쩌면 일본넘들이 “엔딩 테마”를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을 노린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