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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우] 톱질하구있네

2005년 8월 21일

미리 경고하는데 영화를 안본 사람에게는 심각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센스>가 대박이 난 후부터, 왠지 헐리웃 영화 치고 돈 좀 적게 들이면서 입소문 좋게 나서 흥행 대박 한 번 노려볼만한 작품으로는 “충격적인 반전”을 가진 스릴러 영화가 필수요소인 것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아니 꼭 스릴러만이 아니라 공포영화, 가끔은 로맨틱영화조차 막판에 반전을 노릴 정도로, 요즘은 영화가 흥행하려면 막판에 관객을 최소한 두어 번은 깜딱깜딱 놀래켜야되는 뭔가를 갖고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출발 비디오여행>류의 프로그램이 가져온 폐해일 수도 있다. 워낙 영화 내용을 친절하게 까발려주시니)

문제는 영화배급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그쪽으로 흐르면서 엉뚱한 전쟁이 사이버에서 치러지고 있다는 거다. “스포일러와의 전쟁”. 솔직히 영화 내용을 무책임하게 까발려버리는 생각없는 족속들이 전적으로 문제이긴 하지만, (뭐 나름대로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그 과정에서 내용이 조금 새어나가는 정도는 어쩔 수 없다거나 이해가 간다거나 하는 측면도 있는데,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요 한마디만 던져놓고 도망가는 놈들은 좀 심한 거 아닌가) 그 막판의 반전이 밝혀지면 영화를 볼 이유를 상실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마케팅도 맘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영화가 막판 5분이 궁금해서 1시간55분을 앉아있어야 하는 그런 류의 것들은 아니지 않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만만찮은 반전을 자랑한다는” <쏘우>라는 영화가 인터넷을 일단 한바탕 휩쓸더니 개봉을 하더라. 정해진 시간, 폐쇄된 공간, 제한된 행동… 이런 것들을 주인공들에게 던져주고 해결을 강요하는 내용이라 스릴러로서 기본 플롯은 상당히 잘 짜놓은 셈이 되겠다. 문제는 이런 영화에서 막판에 충격적인 반전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뭔가 대박을 하나 뒤에 숨겨놓아야 한다는 것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쏘우>는 아주 극단적이면서도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반전을 마련해놓았더라. 그 새끼가 거기서 일어날 줄은 난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쏘우>의 반전이 기대보다 강하다 약하다 그런 게 아니다.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궁시렁거릴 때도 그랬지만, 막판에 충격적인 반전을 집어넣기 위해서 고심 많이 하신 것은 좋은데, 거기서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것은 개연성으로나 뭘로 보나 지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는 거다. 내 입장에서는 굳이 그 자리에 당사자가 그런 꼬라지로 누워있다가 일어나야할 당위성은 하나도 없다. 뭐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갈 경우 예정보다 미리 벌떡 일어나서 상황 정리하려고 그랬나? 왜 그 사람들을 묶어놓고 죽이라고 명령했나, 에 대한 설득력도 대단히 부족한 상황에서, 범인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이유조차 없다고 하면 도대체 이 영화는 뭐가 되냔 말이다.

반전 빼자. (사실 이 대목이 더 애틋하다) 극한의 상황에 던져진 두 사람이, 처음에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 줄 알았다가 알고보니 묘한 관계로 엮인 사이임을 알게되면서 경계를 해야할지 서로 도와야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지는 부분이라거나, 계획된 시나리오에 의해 범인이 숨겨놓은 물품이 차곡차곡 제 자리를 찾아서 제 역할을 수행하도록 진행되는 시나리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반전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즐기는데 큰 무리가 없는 영화다. 극한의 상황에 던져진 나머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쇠톱”을 번쩍 치켜들어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라거나 그런 부분에 대한 묘사도 상당히 매끄러운 편이고, 중간에 잠깐 관객들이 범인으로 착각했던 넘, 그 놈이 범인이라는 식으로 끝나버려도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무리없다. (더 좋은 것은 영화의 대부분이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므로 제작비도 상당히 절약했을 것이라는 점. 이런 영화 추천한다) 그런데 반전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개입되면서 굳이 그곳에 그놈을 자빠뜨려놓았다가 벌떡 일으켜세우더란 말이다.

아니면 말야, 그 인간이 벌떡 일어난 다음에 왜 그러구 있었는지 말이 되건 말건 설명이나 해주던지… 일어나고 바로 끝나버리니 뭐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 반전에는 충격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공감할만한 요소도 중요하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