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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야마다군] 평범하고 일상적인…

2003년 6월 17일

스튜디오 지브리의 양대 산맥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를 서로 비교해본다면, 미야자키는 조금 판타지스럽고, 다카하타는 많이 리얼스럽다…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카하타의 작품 중에 판타지스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인 개념으로 본다면 말이다.

다카하타가 연출한 <이웃의 야마다군>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 상대적인 개념이 더욱 두드러진다. 신문연재 4컷 만화를 바탕으로 한 <이웃의 야마다군>은, 5명의 야마다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아 평범한 일본가정의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 간혹, 한국과는 다르다 싶은 요소들이 보여서 일본가정이라고 굳이 표현했지만, 공감가는 요소도 많다 – 아주 담백하게 그려보이고 있었다.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 보단 고만고만한 에피소드의 나열로 진행되는데,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참으로, 무릎을 칠만큼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더란 말이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아들에게 야구하러 가자고 말했다가 퇴짜맞는 아버지, 눈이 내리니까 가족 사진 찍자고 말했다가 퇴짜 맞는 아버지, 위험을 무릅쓰고 동네 폭주족들에게 다가가는 아버지의 모습들… (써놓고보니 전부 아버지다. 아아… 늙었나보다)

일상적. 본인은 이 일상적이란 말을 너무 좋아하는 편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나 <생활의 발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그 일상적인 말과 대사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애드립들, 엄연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한 방에 허물어버리고 지어낸 이야기에 관객들이 몰입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일상적인 요소들에 자주 열광하기 때문이다. 고로 <이웃의 야마다군>에서 뻔뻔스러운 할머니, 무기력한 아버지, 정말 아줌마다운 어머니의 이야기를 보며 어찌 즐겁지 않을손가. (그러고보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채널권 쟁탈전도 있었다)

허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같지 않은 바, <이웃의 야마다군>이 우리나라 극장에 걸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보며, 기타 이와 유사한 스토리의 실사영화들이 혹여 극장에 걸리더라도 흥행에서는 참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서 현실을 보는 것보다는 영화를 통해서 현실을 잊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현실이 힘들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가 현실과 잘 분간이 안가는 리얼 만빵으로 흐르면 결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극장을 나서며 이렇게 말할테니. “저건 드라마로나 찍지, 뭐하러 비싼 돈 들여서 영화로 찍었을까?”

영화 속에서 평소에 상상할 수 없었던 신비한 세상을 체험하는 것도 좋다. (본인, 판타지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판타지물과 리얼물의 차이가 아니라, 같은 이야기라도 장사가 되려면 좀 센 걸 터뜨려줘야된다는 영화제작자들의 이상한 강박관념이다. 그렇다보니까 여배우 홀라당 벗기면 관객 몇만 명 더 들어오겠지, 잔인하게 사람 죽이면 관객 몇만 명 더 들어오겠지, 사랑 이야기는 불륜 아니면 신데렐라 스토리… 뭐 이런 식으로밖에 줄거리를 짜내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시나리오 공모, 이런 것도 맨날 쌈빡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만 찾고… <이웃의 야마다군>처럼, 단순한 그림에 단순한 스토리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그런 깊이의 작품이 나올 토양이 썩어나가는 거 아니냐, 뭐 이런 걱정이 된다는 거다. 하긴, 그런 쌈빡한 이야기 아니면 극장 갈 생각조차 안하는 관객들부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