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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이들의 행진

2005년 12월 18일

취직 잘된다고 문헌정보학을 전공한다더니 갑자기 딴 바람이 불어 사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가 결국은 취직을 위해 방송국에서 하는 무슨무슨 아카데미에서 비싼 돈 들여가며 수업받은 사촌여동생이 MBC 주말프로그램의 구성작가가 된 지도 어느새 만 2년을 넘어가고 있다.

덕분에 주말 TV프로그램은 별 무신경하던 우리 집도 예의상 비스무레하게 관련 프로그램을 지켜보고 있는데, (중간에 동생이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별로 안 웃긴 프로그램을 할 때는 차마 보지 못했다) 최근에 이 녀석이 맡고 있는 코너가 신동엽과 노홍철이 진행하는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프로그램이란다.

처음에 새로운 코너를 한다길래 무슨 코너냐?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이게 무슨 일급보안이라고 죽어도 말 못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다가 조금씩 털어놓는데, 듣기에 망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박성 코너는 아니겠다 싶었다. (요즘 그 코너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는지는 솔직히 잘 모른다. 워낙 요즘 MBC 시청률이 바닥을 치고 있어서 말이지)

하여튼 뭐 그렇군, 하며 같은 시간대 주변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KBS에서도 취지는 조금 다르지만 아이들이 떼거리로 등장하는 코너가 하나 있더라. <날아라 슛돌이>던가. 초등학교 들어갈랑말랑한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팀을 만들어서 어쩔시구리하는, 뭐 그런 코너였는데 월드컵 시즌이 다가온다는 점을 십분 감안하면 꽤 잘된 기획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구서 조금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엔 SBS에서도 (일요일은 아니지만) 신동엽을 내세워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뭐 이런 코너를 하고 있더라. 짧은 생각이지만 주말저녁버라이어티프로그램에서 3개 방송사가 동시에 이렇듯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코너를 방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허허, 출산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로부터 은밀히 지원이라도 받는겐가?

하기야 광고계에서는 3B라고 해서, 미인(beauty), 아이(baby), 동물(beast)가 나오면 확실히 주목을 끈다는 뭐 그런 공식도 있다는데, 비단 광고계만의 이야기겠는가. 오히려 방송계는 더하겠지. 저 세 항목 중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서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프로그램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기억하기에 아이가 등장해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코너가 아마 <god의 육아일기>라고, god가 애를 키운 게 아니라 애가 god를 키웠다는 말이 난무했던(사실 이게 더 신빙성있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었으니 주말저녁버라이어티에 주말 3개방송사가 일제히 아이들을 내세웠다고 해서 뭐 그렇게 놀랄만한 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 (그래도 정부의 음모가 없는지는 한번 따져보고 싶다)

다만 어쩌다보니 일하고 있는 곳이 소위 <교육업계>라서, (그것도 영유아 대상) 과연 이 코너들이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방송에 내보내고 있는지를 잠깐 쓸데없이 고민을 해보게 됐다. 일단 ‘아이’라는 대상은,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귀여워야 한다’는 명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건 뭐 섭외과정에서 당연히 남들보다 더 귀여워보이는 아이가 섭외되겠지만) 더불어 ‘엉뚱해야하고’ 때로는 ‘아이답지 않아야’ 이게 시선을 팍팍 잡아댕기는 마력이 생기는 거다. 추가로 아무래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보니까 연예인이 보조 비스무레하게 등장하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며 당황하는, 뭐 그런 시츄에이션을 자주 만들어주면 된다. 써놓고보니 거의 공식이네. 거기에 뭐랄까, 그냥 대책없이 처음부터 저렇게만 나오면 좀 뭐하니까 교육적인 것도 좀 첨가시키고 정보도 제공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그렇게 포장하는 거다.

일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그런 면에서 오락성은 거의 꽝이다. 신동엽을 내세우긴 했는데 별로 자주 나오지도 않고, 일단 섭외된 아이들이 (겉보기에 예쁘고 안예쁘고를 떠나서) 뭔가 문제를 안고 있다보니 걔네들의 행동이 마냥 보기에 즐겁지만은 않다. (최근에 방송된 밥안먹는 새끼 같은 경우, 내 새끼였으면 당장 바깥으로 쫓아내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방송 내내 울화통만 치밀더라) 앞서 방영되는 <연애편지>인가 하는 코너와는 아주 상반되게 너무 공익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오히려 그게 육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주부들에게 먹히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이 워낙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보니, 주말저녁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코너로 과연 어울리나? 라는 의문은 분명 일리가 있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 주방 바꿔주는 건 왜 집어넣은 건지 당췌!)

<날아라 슛돌이> 같은 경우는 내 관점에서는 성공적이다. 일단 함께 나오는 연예인이 메이저급이 아니라서 연예인을 많이 비춰줘야한다는 강박관념 별로 없어보인다. (그만큼 아이들 많이 등장한다. 보기 좋다) 앞서 말했듯 축구라는 시의적절한 소재도 눈길을 끌고, 아이와 축구라는 어찌 보면 상반된 주제가 연결되어 있기에 아이들이 해프닝도 많이 만들지만 동시에 어른들처럼 멋지게 공을 차는 모습도 연출이 가능하며, 회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장면이 눈에 확확 들어오는 재미도 있다. 아이에 별 관심이 없어도 “승부!”를 즐기는 사람을 위해 매주 경기장면도 서비스되고. 다만 아이들은 많이 뽑아놨는데 솔직히 축구 좀 잘하는 애는 두세 명이고, 나머지는 축구를 하는 건지 그냥 나와서 노는 건지 (쉽게 말해서 엄마가 방송출연이라니까 덜렁 손잡고 데리고 나온 건지) 구분이 안가는 경우도 많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카메라도 축구 잘하는 애들한테 모여지고, 나머지 애들 점점 소외되고, 이런 식으로 전개될 우려 상당하다. (소외되는 아이에게 기회를!)

이제 내 동생이 몸담고있는 <천사들의 합창>을 볼까. 일단, 이 프로그램은 이슈가 없다. 처음에 동생이 코너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하길래 내가 물어봤다. “뭐 하자는 거냐?” “그냥 애 키우는 거지” 그거 아니거덩. <god의 육아일기> 같은 경우도 그냥 애만 키우는 것 같았지만, 일단 애가 하나고 애아빠가 다섯이었다.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분업화가 되고 그러면서 다섯 명의 캐릭터가 살아났다. (그러니까 애가 god를 키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다시 말하면 애만 자라는 게 아니라 god 멤버들도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익히면서 같이 자라는 과정을 보여준 셈이라는 거다. <천사…> 뭐시기로 가볼까. 애들은 많다. (10명이라고 하는데 학교 다니는 큰 아이 몇 빼면 방송을 주로 타는 건 댓명 정도?) 근데 MC는 달랑 두 명. 것두 한 사람은 아이 중 하나와 신경전 벌이기 바쁘다. (코너 초반에는 그것 말고 볼 게 없을 정도로) 방송 내내 수많은 아이들을 어찌 할 바 몰라서 쩔쩔매는 두 연예인의 모습이 메인테마다. (그나마 한 명은 메이저급 연예인이라 많이 쩔쩔매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한 사람만 불쌍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없고, 그렇다고 연예인이 뭘 배워가는 것도 없다. 동생 말마따나 “애들은 귀여울지” 몰라도, 지난주도 지지난주도 계속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니고 연예인들은 걔네 쫓아다니기 바쁘다면 이거 식상하는 거다. (물론, 동생의 말에 따르면 처음 섭외할 때는 막내애기가 살아있었다고 하니 막내가 갑자기 죽으면서 코너의 취지 자체가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만) 계속 이렇게 다른 이슈 없이 방송이 반복되면, 좀 미안한 말이지만 <TV동물농장>에서 개 많이 키우는 집 하나 섭외해서 몇 주 방송하는 거 보는 기분이랑 별 차이 없다. 처음엔 신기한데, 자꾸 보면 걔네들 하던 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거란 말이다.

방송이 뭐, 늘 맘같이 되겠냐마는, 최근 <일요일 일요일밤에>로 대표되는 MBC 연예프로그램의 몰락을 보면, 또 그 몰락을 이겨내보겠다고 나오는 코너들이 저 모양인 걸 보면, 모 신문기사처럼 정말 무슨 마가 씌인 건지 잘 모르겠다. MBC에 동생이 다닌다는 것 빼면 다른 방송에 비해서 특별한 애정 없으니까 MBC가 이러면 안된다 이래야 잘된다 뭐 그런 취지의 이야기는 안할란다. 다만 그냥, 보기에 한심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