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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결혼식

2006년 2월 16일

지하철 5호선에서 가난한 연인이 지들끼리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걸 핸드폰으로 찍어서 올렸다는 동영상이 며칠 화제가 되었었다.

동영상을 보지는 않았는데
캡처한 사진이랑 설명글을 읽어서 뭔 내용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각종 언론사, 심지어는 방송에서까지
이 동영상을 기사로 다루면서
무료결혼식을 올려준다느니 성금을 전달한다느니
뭐 그런 생쑈를 하는 꼴도 알고 있었다.

왜 생쑈냐 하면,

솔직히 정말 가난해서 결혼식도 못올리고 사는 부부,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만 해도 여럿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한테 평소에 누가 관심이나 가져주나?
어쩌다 저런 튀는 행동 한번으로, 인터넷에 뜨고 소위 매스컴 타고,
그러면 지금껏 모르던 사실 새롭게 알기라도 한 것처럼
우르르 몰려가서 도와주겠다고 설레발치고

그게 생쑈 아니면, 뭐야?

물론 그 사람들 어렵겠지. 도와주면 좋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의 튀는 행동이 그 사람들이 받아야할 엄청난(?) 도움의 원인이라면
정말 묵묵히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뭐가 되냔 말이지.

뭐 그래도 거기까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도움 받아서 나쁠 것 없고
매스컴을 탄 사람에 빗대서 홍보효과나 얻어보려는 몇몇 업체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들 아니겠냐 말이지.

그런데 오늘 아침,
그게 사실 다 연극이었다, 는 기사가 새로 올라왔다.

흐흐, 그럴 수도 있겠지. 뭐 결혼식 못한 게 한이 되서 지하철에서 결혼한다는 거
솔직히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었고, 연극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었으니.

문제는 그 기사를 받아들인 소위 감동먹은 네티즌들의 반응 말인데,

왜 욕을 하는 거지?

욕하는 이유도 처음엔 국민을 속인 사기꾼이다, 연극임을 현장에서 밝히지 않은 것은 생각없는 행동이다 이러더니
지금은 자기들을 고아라고 했다는 이유로 고아들에게 상처를 줬다느니,
정말 돈없어서 결혼못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상처를 줬다느니,
이 지랄을 하고 있다.

어이, 감동먹은 네티즌들.
정말 고아나 가난한 부부들에게 상처를 준 건
고작 핸드폰 동영상 하나 보고 감동 쌔리 먹었다고 설레발치며
도움을 주고 싶네 아직 이 세상이 따뜻하네 지랄 염병을 한
당신들이란 말이지.

까놓고 말해서 난 애초 연극을 한 친구들이
그렇게 잘못했다고도 생각되지 않고, 사기꾼은 커녕 생각없는 행동을 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걔네들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고도 주장하던데,
어쨌든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는
결혼식 자체를 인터넷에 올려서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의도가
애초에 걔네들에게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거니와,
그런 연극을 함으로써 걔네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이익을 취하기는 커녕
오히려 네티즌들 말마따나 “감동”을 주지 않았나 말이다.

걔네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무슨 “성금”을 받아먹기를 했나, “공짜”로 결혼식을 올리기를 했나.
현장에서 있었다던 그 몇번의 박수로 소모된 칼로리가 아까운 건가,
아니면 혼자 감동먹고 인터넷 기사에 댓글 다느라 들어간 전기세가 아까운 건가.
지랄은 자기들이 하고 왜 탓은 남에게 하냔 말이지.

어떤 정신머리없는 자식은
연극이라서 괜찮다면 길가던 누구를 졸라 패고 연극이라면 괜찮냐? 이런 황당한 논리의 비약을 보여주던데
그건 연극을 빙자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아닌가.
이번 건은 아무리 나쁘게 보려고 해도
사람들에게 거짓 감동을 주었다는 정도. 그거 외에 무슨 피해를 줬나.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던 양치기 소년 이야기도 하던데
정확히 비교하면 지금 늑대는 사방 어디에나 나타나고 있지 않나.
걔네들은 나타나지도 않은 늑대가 나타났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늑대가 나타난 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한테
늑대 탈을 쓰고서 자기들이 늑대라고 외친 것밖에 없는 거다.
걔네가 늑대가 아니라고 해서 이 세상에 늑대가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단적으로 비유하면,
사막을 여행하다가 오아시스가 있는 줄 알고 졸라 뛰어갔는데
알고보니 신기루더라… 그런 종류의 배신감 때문에
얘네들이 욕먹고 있는 거다.

배신감 느끼는 건 알겠는데 욕은 하지 마라.
사실 그 욕을 정말 먹어야 할 사람들은
일상 속에 살짝 묻혀있다는 이유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고 모른 척해오다가
이렇게 약간의 튀는 행동으로 도드라진 사람들에게 오바질성 관심을 보여주는
일부 언론이나 당신들 자신일테니까.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