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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10주년 기념

2007년 12월 20일

홈페이지 만든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홈페이지 처음 만들었을 때 제가 스물여섯살이었던 모양이군요.

1997년 12월 20일
아직 취직자리도 구하지 못한 대학 4학년생 신분으로
집에 있는 무려 386컴퓨터(인터넷도 연결 안되는)를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음악 미디파일 30여개를 가지고 영화음악 섹션을 채우고
학교 도서관에서 뒤진 영화기네스정보와
IMDB 사이트에서 찾은 옥의티나 뒷이야기 정보를 가지고 영화섹션을 채우고
컴퓨터 처음 사서 타자연습하던 1992년도에
건담 딱따구리 문고에 나온 건담 줄거리+등장인물들을 HWP로 쳐놓은 자료로 건담섹션을 채우고
인터넷 뒤져서 천녀유혼 사진 열몇장 모으고
옛날 로드쇼에 특집기사로 나온 천녀유혼 관련 이야기들을 기억나는대로 써서 천녀유혼 섹션을 채우고
유명한 건축가 홈페이지 링크로 건축섹션 채우고
네띠앙에서 제공해주는 기본 방명록을 붙여서
총 6개의 메인메뉴로 홈페이지를 만들었었죠.

중간 변천 과정은 생략하고
2007년 12월 20일 현재.

어느덧 10년차-_- 직장인이 된 신분으로
최신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광랜급 인터넷이 빵빵하게 들어오는 펜티엄4급 컴퓨터를 가지고 작업하는 처지가 되었으며
홈페이지는 블로그 형식으로 변화하면서 16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됐고
그 와중에 영화음악/건담/천녀유혼은 별도의 사이트로 분리됐고
10년전 사실상 하나도 없었던 제가 직접 쓴 글은 무려 894개. (요넘 포함 895개)
삑삑거리는 미디음악이라고 욕 바가지로 먹던 영화음악은
모두 2,914곡의 asf/wma 파일로 바뀌었고 거기에 동영상도 729개 추가.
인터넷 뒤져서 겨우겨우 찾았던 해상도 낮은 천녀유혼 이미지 열몇장은
제가 직접 캡쳐받은 이미지 74개로 늘어나고
기타 등등 양적으로 (질적으로는 잘-_-)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영화 옥의 티, 기네스, 건축가 사이트 링크 등등의 컨텐츠는 이제 없어져버렸고요.

지난 10년, 이렇듯 홈페이지는 상당히 많이 변했는데
과연 나는 어떻게 되었는가,
사실 이 문제가 요즘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결혼 못하고 애인도 없고 뭐 이런 문제는 잠깐 덮어두고-_-;;
정말 10년전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 때 가졌던 생각, 철학, 지식 중
지금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안했을 때 얼마나 커지고 성장했는지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만 늘고 내 자신을 잃어온 것은 아닌지
뭐 이런 따위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죠.

굳이 이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혹시 홈페이지를 구실삼아 이렇게 살아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최근들어 자주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홈페이지를 통해 살고 있는 나와
그냥 사회에서 대충 뒤섞여 살고 있는 내가 다르다는 이야기죠.
(이중인격 뭐 이런 뜻은 아닙니다)

솔직히 정답이 있는 고민도 아니고
홈페이지 10주년 기념사로 할만한 이야기도 아니긴 합니다만
위에 쓴 것과 같은 이유로 일부러 써봤습니다.
언젠가 그 고민이 끝나는 날은
홈페이지를 더이상 운영할 필요가 없어지던지
난데없는 포털사이트 규모로 홈페이지를 키워버리던지
그런 결론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어쨌든 홈페이지 10번째 생일입니다.
저랑 비슷한 시기에 홈페이지 운영을 시작하셨던 분들 중
지금까지 운영하고 계신 분이 누가 계신지는 잘 모릅니다만
(홈페이지 운영 초기, 제가 홈페이지를 통해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
지금까지 홈페이지 형태-미니홈피나 네이버블로그 같은 거 말고-로 뭔가 하고 계신 분이 한 두어 분 계시긴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홈페이지/포털사이트들도 10년씩 된 곳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10년씩이나 홈페이지를 끌고 왔다는 것에 자부심 같은 거 조금은 느껴보려고 합니다.

10년을 달려왔으니 이제 15년을 바라봐야 될까요 20년을 봐야 될까요.
사실은 11년을 걱정해야할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