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봉대리일기 네번째

2007년 3월 7일

[봉대리의 일기]

12/01 (수) 눈 올 것처럼 졸라 폼만 잡드만 씨바…

생각외로 황 대리의 날라차기 사건은 간단히 마무리가 되는 분위기다.
일단 황 대리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는지 자신의 발이 미끄러져서 벌어진 불상사라고 우기고 있으며,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어느 누구도 그 예리한 순간 공중 동작은 다년간의
경험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ART의 경지였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조직 장악력이 부족하다며 이사한테 늘상 쿠사리를 먹어온 피 부장이
스스로 “해프닝” 선에서 일을 마무리짓고 말았다.
오늘은 왠지 날씨가 눈도 올듯 눅눅하고 해서
간만에 창가에 서서 커피도 꼬나물고 담배 마시며 (뭔가 좀 바뀐듯…)
분위기를 잡고 있었드랬다.
우씨… 피 부장만 아니면 이 무드에 덜 떨어진 여직원 한 명 후릴 수도
있었을텐데…
어제 깨진 책상 유리 파편이라도 맞았나 미간에 핏발을 세운 피 부장이 또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담배 빨 시간 있으면 업무나 빨래나.
피 부장은 전직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입이 험하다.
저도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 잠시 재충전 시간을 갖는 겁니다 라고 제법
공손하게 대답했는데
뭐가 열받았는지 피 부장이 돌려차기를 시도하다가 스탠드형 재떨이를 걷어차 엎어버리고 말았다.
드러븐 놈… 재떨이는 결국 내가 치워야되잖아…
저 인간 성질 죽여야 우리 모두 편할텐데 말이지…

[피 부장의 일기]

12/01 (수) 흐린 것 같더라.

어제 황 대리가 공중에서 날라차기 하는 걸 목격한 이후로
누가 다리만 떨어도 화들짝 놀라는 묘한 증상이 생겼다 쒸…
조만간 이 증상이 고쳐질 것 같지는 않고
직원들 다리를 몽조리 묶어놓든지 뽀사놓든지 대책을 세워야겠다.
날씨가 흐리니 허리가 뻐근한 듯 하여 기지개 좀 펴고 바람 좀 쐬려고
밖으로 나왔더니
하필 얼굴만 봐도 기분 잡치는 봉대리 녀석이 다리 떨면서 담배를 꼬나
물고 있지 않은가.
순간 떨리는 다리를 보면서 움찔하고 만 내 자신이 쪽팔렸다.
봉 대리가 나를 보더니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눈만 째린다.
아니 이 씨박색히가!!
그러나 어제 황 대리 날라차기 사건도 있고 해서 조용조용 타일렀다.
괜히 담배 피우는데 시간 허비하지 말고 밀린 업무나 하는 게 어떻겠느냐.
저 놈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업무는 분명히 밀려있을테니.
그러자 봉 대리 담배 필터를 한 번 지그시 씹더니
(짜샤 모를 줄 알았지… 나도 다 해봤어 씹새야…)
담배도 못피우게 하니 조또 일하기 힘드네… 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정말 씹새네 이게!
나도 모르게 어제 배운 황 대리의 날라차기를 재연해보려고 했는데
역시 황 대리만큼의 캐리어가 붙지 않은 탓인지 재떨이만 엎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봉 대리 놈 재떨이 치우느라 낑낑대는 꼴을 보니 고소하기는 하다.
캬 어제 그 날라차기… 생각할수록 예술일세.
나도 낼부터 연습을 해서 이사한테 한 번 써먹어봐?

SIDH’s Comment :
(글 다 써놓고 코멘트만 달아서 올리는 것도 게을러서 못하니 원;;)
이 글을 썼을 때만 해도 사무실내에서는 금연이었지만 건물 계단실이나 복도에서는 흡연이 가능했었다.
(사무실 금연이 아닌 곳도 많았고)
나야 원래 담배를 안피웠으니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왠만한 건물 계단실이나 휴게실에 꼭 세워져있던 스탠드형 재떨이가
이제는 완전히 추억의 물건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좋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