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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두번째

2007년 3월 1일

[봉대리의 일기]

11/29 (월) 졸라 추움.

어젠 술먹고 뻗어버려서 일기를 쓰지 몬했다.
원래 첨에는 다 그런법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오늘부터 잘 쓰면 되지 뭐.
그래도 타격이 아침까지 왔다. 6시반에 겨우 일어났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얼굴 벌개져서 비틀거렸더니 사방 2미터 안에 사람이 접근하질 않았다.
좋은 방법 같다. 앞으로 연기력을 배양해서 자주 써머그리라.
출근하고도 화장실에 신문깔고 1시간 드러누워있었다. 변기 끌어안고…
요즘은 아지메들이 청소를 깨까시 해놔서 별로 드러운 줄도 모른다.
솔직히 드러워도 할 수 엄따. 여기라도 없으면 술먹고 쉴 곳이 엄따.
퇴근 무렵 업무일지를 써서 피 부장에게 꼬나밀었다. 아나 보그라~
빤쭈에 똥싸놓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피 부장이 당근 호통을 쳤다.
성의있게 쓰라나… 쒸바색히…
볼펜으루 종이가 찢어지게 꾹꾹 눌러써야 성의있는 걸로 착각하는 주제에…
술이 덜깬 관계로 화장실에서 1시간 뻗어있었다고 쓸 수는 없잖아…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서 업무일지를 창작해냈다.
올 연말에는 신춘문예에 도전해보리라.
하지도 않은 일을 막 적어놨는데 피 부장은 알지도 몬한다.
뭐 알아내면 오히려 놀랄 생각이긴 하지만.
에구~ 친구놈들 만나서 저녁에 해장술을 했더니 한결 낫다~

[피부장의 일기]

11/29 (월) 맑고 좋음.

날씨만 맑고 좋다 씨바.
어제 친척 조카뻘 되는 년이 결혼식을 한다구 그래서
잠 좀 푹 자고 싶었는데 쭐레쭐레 끌려갔다.
시집가는게 좋아죽겄는지 그 년 결혼식 내내 싱글벙글이다.
싸가지없게 신부가 웃고 지랄이야…
지금 고등학생인 큰딸년도 시집갈 때 저렇게 웃으면 다리몽뎅이를 뽀사뿐다.
아가리를 찢어버릴까?
봉 대리땜에 받은 열을 딸한테 풀지말자.
어제 술을 한 바께쓰나 처먹었는지 (봉 대리 주량으로는 그 정도 먹어야 취할테니)
아침부터 화장실에 쳐박혀서 꼬락서니를 보이질 않았다.
니가 거기 숨어있음 모를 줄 알지… 다 알아 쓉새야…
내가 너그러워서 참고 산다 미스타 봉…
퇴근 전에 업무일지랍시고 들고왔는데 일한 게 없으니 업무일지도 쓴 게 없다.
어제 결혼식에서 갈비탕 먹은게 잘못 됐는지 가뜩이나 설사가 쏟아질 거 같아서 죽겠는데…
똥꼬에 힘주느라고 소리도 크게 못지르고
성의있게 다시 써오라고 한마디 겨우 했다.
한 차례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도 계속 똥꼬가 초긴장상태였다.
다시 써왔을 땐 다시 설사가 삐질삐질 흘러나오려는 중이라 자세히 읽어볼 겨를이 없었다.
대충 사인해주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튀어나갔다.
운 좋았다 봉 대리… 내일도 그렇게 써오기만 해라.
아주 갈아마셔버릴테니…

SIDH’s Comment :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중 하나가, 전날 대책없이 술퍼먹고 난 후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는 일이었다. 경험이 없으니 담날 출근할 생각하고 술을 살살 먹는, 그런 요령이라곤 도통 없을 때였다.
그나마 젊어놔서 오전에 30분~1시간 정도만 어디서 눈좀 붙이면 훨 가뿐하곤 했는데, (요즘 같으면 택도 없는 소리)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곳이 화장실이었다. 변기에 앉으면 엉덩이가 아파서 곤란하고, 좀 차갑더라도 바닥에 신문지깔고 앉아서 변기 끌어안는게 편안했더랬다.
다분히 경험에서 우러난 소재였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