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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세번째

2007년 3월 1일

[봉대리의 일기]

11/30 (화) 맑고 따심.

오늘 황 대리와 피 부장이 한판 붙었다.
붙어도 제대로 붙었다.
생긴 모냥이 개구락지 같아서 그렇지 일 하나는 뚝심있게 해치우는
황 대리와 밑에 사람이 일 잘하는 꼴을 못보는 밴댕이 피 부장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 번 붙어야만 한다는 “충돌론”이 진작부터 회사를
떠돌았었지만,
이거는 장난이 아니었다.
발단은 어케 시작된 건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언제나처럼 모가지에서
딱딱 소리를 내던 피 부장이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과 함께 서류를
황 대리 면상에 내팽개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황 대리가 왼손으로 서류를 쳐내면서 오른손으로
책상을 살짝 짚으며 오른발을 번쩍 치켜들어 책상에 내리찍고 말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무실은 순간적으로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말았다.
다만 황 대리가 몸집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날렵하게 몸을 날린 탓에
뒤로 엉덩방아를 내찧기는 했지만,
그 순간동작의 화려함은 우리 팀원 전체의 뇌리에 오래 박혀있을 것이
분명하다.
맨날 개구리 개구리 놀려대기만 했는데… 다시 봐야겠다.
어쨌든 황 대리의 육중한 체중이 실린 오른발 내려찍기에 피 부장 책상
유리가 아작이 나버렸고,
충격을 먹은 피 부장은 뒤로 쓰러지면서 뇌진탕을 일으킨 황 대리한테
화풀이 한 번 못하고 그르륵그르륵 거리더니 일찍 조퇴하고 말았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은 진검승부가 펼쳐지리라…

[황 대리의 일기]

11/30 (화) 맑던가?

지금 뒤통수가 알딸딸해서 날씨고 뭐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후에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분명히 피 부장이 지난 주에 시킨 일이 있어서 (업무적인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성향이 짙은 일이었다) 오늘 완결지어서 체크받으러 갔던 거는
기억나는데.
첨부자료가 부족하다면서 군시렁군시렁 거릴 동안 속으로 “괜찮아 나의
걱정은 하지도 (하이로 올려서~)마!”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던 것도
기억난다.
아 맞다. “마!” 요게 알다시피 가성으로 높게 째지는 음이라 속으로
흥얼거린다고 흥얼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음이 입 밖으로 조금 새나왔었나
보다.
하필 그 순간이 피 부장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라고 말이 떨어지는
순간이라 그게 대답처럼 되버렸던 거 같다.
잠시 벙쪄있던 피 부장이 다짜고짜 나한테 서류를 던졌나 보다.
맞다 맞다 글을 쓰며 생각하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
서류를 피하려고 몸을 뒤로 제끼면서 왼발이 한발 물러섰는데…
피 부장이 아까 막내여직원인 지화자 씨한테 화분에 물주라고 하더니
화자 씨가 물을 책상 앞에 흘렸었나 보다.
왼발이 팍 미끄러지면서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서류를 쳐내고…
균형을 잡으려고 오른 손으로 피 부장 책상을 짚었는데…
이미 오른발은 공중에 떠버린 상태였던 거 같다…
발이 책상에 부딪히면서 몸이 뒤로 나가떨어진 건가?
깨보니 응급실이다.
의사가 일단 낼 아침에 경과를 보고 괜찮으면 모레쯤 퇴원하란다.
덕분에 하루 잘 쉬게 생겼군… 히히히…

SIDH’s Comment :
사실 써놓고도 그렇게 재밌다고 생각한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억지설정에, 전혀 현실감도 없고…
그런데 <봉대리일기>라는 컨텐츠가 사이트 내에서 조금 재밌다,는 소리를 듣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에피소드였다.
이때쯤부터 나와 보통사람들의 웃음코드가 좀 다르구나, 라는 자각을 좀 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