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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마흔한번째

2007년 7월 26일

[봉대리의 일기]

1/17 (월) 날씨가 뒤숭숭하던걸…

신년부터 왜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내가 놀 틈이 없으니까 바쁘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조또 바쁘다. 딴 소리 필요없다.
가끔 말야, 밥먹으러 갈 때 몰 먹을까 고민할 시간도 있고 그래야
회사 다니는 맛이 나는건데,
이거는 정신없이 부랴부랴 뛰어가서 주는대로 처먹고 나오기 바쁘니
이거 원.
다른 회사는 사내에 식당이 있어서 식권만 들고 쭐레쭐레 가면
밥을 척척 뽑아준다던데. (가래떡 뽑듯이 뽑아준다는 말은 아니다)
뭐 결국은 짬밥 아니겠어?
종류불문하고 짬밥은 시로~
하여튼 오랜만에 일하는 것처럼 일했다. 사방을 이리저리 뛰어댕기며
(피부장은 같은 거리라도 뛰어댕기는 걸 좋아한다. 여기가 군대냐?
3보 이상 구보를 하게?) 서류 나르고 자료 뽑고 팩스 보내고…
그런데 결론은.
피부장 왈.
조까. 다시 해.
피부장 머리… M자로 벗겨지는 상황이 열라 진행중인데…
단칼에 민대머리를 만들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순간 용솟음쳤다…
아니다 참아야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한다… (말은 이렇게
하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그래그래 내가 조금만 더 알아보면 몇천만원, 몇억까지도 아낄 수가
있는데 이러면 안되지.
이렇게 모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졸라 처음부터 다시 했다.
내일 두고 보자고… 내일도 다시 하라고 하기만 했단 봐라.

[피부장의 일기]

1/17 (월) 날씨가 싱숭생숭…

아… 날씨가 이따우로 놀며는 일하기가 싫어진단 말씀야…
그런데 아침부터 부사장이랑 이사는 내가 무슨 봉처럼 보이나 열라
깨기 시작하고…
내일까지 이거이거이거 해! 그리고 모레까지 이거이거이거 마무리
짓고! 그리고 이번 주안에 이거이거이거를 끝장을 보란마랴!!
주뎅이 나불거리지말고 니가 해봐라 씨부뎅아.
…라고 말할 수가 없는 처지 아닌가.
뭐… 괜히 부장인가?
사무실 들어와서 아그들 집합시켰다. 짬밥 순으로…
봉대리 녀석이 또 눈을 요사시럽게 뜨고서 내 벗겨진 머리를 주시하기
시작하는데…
너 잘 걸렸다… 봉대리… 오늘까지 이거이거이거 해치우고…
내일까지 이거이거이거 해치우고…
똥색이 된 봉대리 얼굴을 보며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니가 원하면 뭐든지 했고~ 울라울라래요 울라래요~
그래 내가 이 맛에 회사를 다닌다.
봉대리 짜식 나보란듯이 자리에 앉지도 않고 날라다닌다.
어쭈구리 놀고있네.
미끄러져서 확 자빠져버려라.
짜식이 구두 밑창에 통고무라도 붙여놨는지 미끄러지진 않았다.
담번엔 지화자 씨보고 바닥에 물 좀 뿌려놓으라고 해야지.
퇴근시간이 다 되가는데 봉대리가 결재랍시고 들고왔다.
내용 볼 필요 있나?
조까 다시 해. 짧게 끝냈다.
그런다고 조놈이 야근해서 끝장낼 녀석도 아닐테고…
요즘 심심했는데 갖고 놀 꺼리 하나 생겼구먼~

SIDH’s Comment :
일을 하다보면 감이 올 때가 있다.
아, 이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인데
누구 보여주려고 하는 일이구나.

회사라는 곳이 정말 필요한 일만 효율적으로 딱딱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쥐꼬리만한 월급 주는게 아까와서 직원 엉덩이가 바닥에 붙어있는 꼴을 못보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직원을 돌리게 되고,
결국 아무 이유없이 야근하고 특근하고 이렇게 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직원들은 괜히 눈치보면서
일도 없는데 바쁜 척 하다가 정말 필요한 일을 못하게 되고.
악순환이 따로 없는 거다.
그런 꼴을 하도 많이 봐서 나는 일에 있어서는 결과물만 보자는 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