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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백서른번째

2008년 6월 22일

[봉대리의 일기]

7/13 (목) 흐림

음… 안그래도 분위기에서 꼴통 냄새를 많이 피우던 이휘재 씨가
오늘 기어이 사고를 치고 왔다.
머리에 금빛 부릿지를 넣어갖구 오다니…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고 몰라도 한참을 더 모를 전유성 씨도
아직 염색은 해본 적이 없건만…
이 인간은 그 경계를 허물고 말았다…
일단 여직원(특히 지화자…)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사무실에
들어선 것까지는 좋았다.
나잇빨에 비해 보수적인 황대리가 먼저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피부장이 출근하기 전에 수습하기 위해 이휘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더라…
그렇다고 수습이 될 것인가 과연…
노란 머리를 뽑아버리기 전엔…
아니나달라… 결국 노란머리를 보고만 피부장…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
내일까지 당장 머리색깔을 원상복구해놓으라는 (그래도 당장 미장원
가라는 소리는 안해서 다행이다) 엄명이 떨어졌는데…
어허… 이 이휘재라는 친구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이다…
염색하지 말라는 사규는 본 적이 없다며…
사원의 인권침해까지 들먹거리기 시작…
머리 부릿지에 인권까지… 대단하다 저 놈…
거품 물기 일보 직전인 피부장은 당장 인사팀에 찔러서 저 놈을 짤라
버리겠다고 발발거렸는데…
엇… 새로 오신 유도지 차장님이 염색한 거 갖구 왜 그러냐고 그러는
바람에… 피부장의 기세가 팍 꺾이기 시작…
저 인간… 왜 유차장한테 약하게 굴지?
하여튼 일단은 넘어갔는데…
울 회사 분위기상 높은 사람들이 머리염색한 걸 그냥저냥 봐줄 사람들이
아니거덩…
기대되는데…

[피부장의 일기]

7/13 (목) 흐림

오늘 아침… 출근하며 보니 새로 전입온 이휘재란 놈의 머리가
조금 이상했다.
어? 비듬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아니 이 오살할 놈이…
머리에 금빛 부릿지를 넣어 온 것이다.
이놈시키가 회사가 무슨 장난인 줄 아나.
당장 책상 앞으로 불러서 결재판으로 좌우 연타를 날리며 일장 훈계를
퍼부었다.
골자는… 야 이눔시키야 회사가 무슨 장난치는 곳인줄 알어…
니가 부장이고 사장이고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지…
백령도에서도 연락받았어 시키야 너 꼴통이라고…
…이런 것이었는데…
천하의 봉대리도 움찔하게 만드는 결재판 좌우연타를 당하고도
이눔 시키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염색을 하면 안된다는 법적 근거가 있습니까?
뭐 임마?
회사 내규에 사원의 복장은 단정해야된다고 되있어 안되있어 임마!!!
염색을 하면 단정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걸 말이라고 씨부리냐 이 썅누무시키.
이 말과 동시에 결재판 좌우중앙 삼타를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아…
이 필생의 비기는 아무에게도 써먹지 않으려했건만…)
이휘재 이놈은 여전히 까딱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아 부장님 뭘 그러십니까. 사무실 분위기도 색다르고 좋은데요.
이 말을 뻔뻔스럽게 뱉은 놈은…
아직도 정체불명인 유/도/지 차장.
그 순간 나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것은…
혹시 저 놈들이 짜고 나를 물멕이려는 게 아니었을까?
동시에 전입온 것부터가 수상해… 아직 저놈이 어떤 빽으로 기획실에
낙하산 탔는지도 파악이 안된 형국에…
이런 사건까지 터뜨리는 건 우연이 아닐 꺼야…
…부장으로서 체면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어데가고… 나는 그만
유차장의 한마디에 찌그러지고 말았다…
약점 잡혔다 썅…

SIDH’s Comment :
129번째 봉대리일기가 어디로 갔는지 안보인다. 쩝쩝.
(원래 없었을지도)
하여튼 이때만 해도 대기업 정도 되면 직장인이 염색을 하고 출근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었더랬다.
세상 많이 좋아진 거지 뭐.
(요즘은 학생들도 머리 염색하고 다닌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