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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백일흔세번째

2009년 4월 3일

[봉대리의 일기]

10/10 (화) 아침엔 비

10월 10일. 쌍십절이네.
욕나오는 날이로다.
아침에 그 찔끔거리는 비도 비라구 버스가 느즈막이 나타낼 때부터
오늘 하루 재수없겠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사무실 들어서다가 피부장한테 커피 타서 들고가던 지화자 씨와
부딪혀서 양복 버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망할 놈의 피부장은 내 옷 버린 것보다 커피 엎지른 것에 열받아서
화를 버럭버럭 냈다. 쫌스러운 놈)
바지에 정통으로 쏟았는데 꼬추 데지 않았나 모르겠다.
감각이 없는 것도 같은데.
화장실에서 대충 휴지로 커피를 닦아내고 있다가 난데없이 부사장하고
마주쳤는데
이 인간이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못했더니 요즘 대리들은 모가지에
철심을 박았냐고 막 씹어댔다.
재수없어서 내가…
그리구 그렇게 쏟아붓고 갔으면 그냥 갈 것이지,
굳이 우리 사무실에 와서 피부장한테 그대로 쏟아붓고 갈 건 또 뭐냐고.
고딩때나 군대같았으면 완전군장하고 뺑뺑이 돌 뻔 했다.
농담아니고 피부장… 정말 길길이 날뛰더군.
뿐인가? 점심 먹으러 가서 순두부찌게 거하게 하나 시켜 먹고 있는데
바퀴벌레 한마리가 다소곳이 순두부를 가르고 떠오르지 않나.
(그것도 반이상 먹은 다음에… 우우엑)
조금더 억울한 거는 오늘 점심은 오과장이 계산한다고 했는데…
꽁짜밥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바퀴벌레와 함께 날려버렸다는 거지.
오과장만 돈 굳었다. (내 밥값은 음식점에서 양심상 안받더라)
퇴근할 무렵에 아무래도 일진이 사나운게 야근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땡~ 하기가 무섭게 퇴근했는데,
회사 정문을 막 나가는데 지화자 씨가 전화했다.
봉대리님 어디 계세요 빨리 들어오시래요~
왜 씨…
부장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요~
연락 못했다구 그래 씨. 퇴근한 사람을 왜 불러.
당장 못올라와?
오우 이런. 피부장이 엿듣고 있었나부다.
된통 깨지고 말같지도 않은 일꺼리 하나 떠맡아서 밤 11시까지 사무실에서
썩다 나왔다.
쌍놈의 쌍십절…

[피부장의 일기]

10/10 (화) 비 조금

오늘 아침 출근하며 달력을 봤더니 10월 10일이 아닌가.
20001010… 음… 숫자가 이쁜게 뭔가 있어 보이누만.
그러나 아침부터 그 기대는 산산이 깨져버렸다.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기분탓인지 차 안에 공기가 건조한 듯 하여 계속 목이 캑캑거렸는데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지화자씨한테 커피 한잔 부탁했다.
설탕 프림 빼고 묽게 타줘~
니에~
그런데 지화자씨가 들고오던 커피를 지각 일보직전에 뛰어들던 봉대리가
엎어버렸다.
아니 저 XXXXX할 XXXXX가!
(평소 일기에 욕은 제대로 썼는데 이때는 정말 심한 욕이었다)
뭐하다가 지금 사무실에 뛰어들어오고 지랄이야~
눈은 뒀다가 뭐에 쓸라고 앞도 제대로 못쳐다봐?
한바탕 퍼부었더니 목이 더 컬컬했다.
지화자씨가 다시 타준 커피로 목을 달래고 있는데,
난데없이 부사장이 우리 사무실에 직접 쳐들어왔다.
부하직원 교육도 똑바로 못시키면서 커피가 목에 넘어가냐?
네?
부사장 말인즉슨 봉대리가 화장실에서 부사장하고 마주쳤는데 인사를
안하더란다.
아니 이 썩을 놈이 나를 엿먹일려고 작정한 거 아녀?
부사장한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봉대리를 불러다가 아주 족을
쳐버렸다. (이놈은 그래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지도 않더군~)
봉대리 놈, 제대로 앙심을 품었는지 점심시간엔 한창 맛있게 밥먹고
있는데 지 밥그릇에서 바퀴벌레를 꺼내지 않나…
(먹던거 다 토해버렸다)
퇴근시간 땡하니까 얄밉게 싹 빠져나가질 않나…
너 오늘 죽어봐라.
지화자 씨를 시켜서 전화를 걸라고 하고 곁에서 엿들었다.
아이씨 나 연락 못했다구 그래….
전화기를 뺐었다.
뭐야 이 썅놈아? 당장 안 뛰어올라와?
금방 뛰어올라오더군.
한바탕 또 난리를 쳐주고 온갖 일감을 다 떠안겨버렸다.
망할 자식이… 어디서 개기고 그래?

SIDH’s Comment :
쌍십절이 원래는 중화민국(정확히는 대만) 건국기념일이란다.
어디선가 그 유래와 명칭을 듣긴 들었는데 묘하게 그 어감만-_- 인상에 깊게 남아
뭔가 재수없는 날, 그래서 쌍욕 나오는 날로 구성해본 거 같다.
지금도 해마다 10월10일이 되면 뭔가 재수없는 날이 될 거 같은 자기최면에 걸려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