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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백여든번째

2009년 6월 21일

[봉대리의 일기]

10/23 (월) 비온다더니 갬

감기에 걸렸따.
이불을 걷어차고 잔 탓일까? 손을 제때 안씻어준 탓일까?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다닌 탓일까? 바람이 많이 부는데 바깥을 싸돌아다닌
탓일까? 어쨌든,
지독하진 않지만 머리 지끈, 코 맹맹한 코감기에 걸려부렀다.
코감기에 걸리면 가장 짜증나는 일이 회사에서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 머리가 앞으로 쏟아지려는 느낌 때문에 뭐든 집중이 안된다는
점이다.
오늘도 하루종일 방아 찧다가 날 새버렸다.
황대리는 내가 코감기 걸렸다는 말을 듣더니 당장 자기 자리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감기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흥… 니가 그러면 내가 순순히 물러설줄 알고?
그렇다고 내가 황대리를 끌어안고 뽀뽀라도 하려는 건 아니다.
타겟을 변경했다. 피부장.
아침부터 계속 물어볼 게 있다면서 피부장 자리를 들락날락거렸따.
첨엔 피부장 일상적인 귀찮음 정도만 표시하더니 우연찮게 내가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후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인다.
결재를 받겠다고 책상 앞으로 가면 손가락질로 2미터 이상 떨어지라고
신호를 보내더니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싸인만 얼렁 한다.
치사한 인간…
그렇다고 니가 감기 안걸리나 보자.
아까 피부장 자리에 없을 때 책상 위에 접힌 손수건 위에 재채기를
해버렸거덩.

[피부장의 일기]

10/23 (월) 비 안왔음

일기예보하는 그 가슴 큰 아가씨는 오늘도 틀렸다.
(역시 가슴 큰 아가씨는 머리가 비었다는 말인가… 아쉽네)
비가 올거라고, 내일까지 올거라고 큰소리 탕탕 치더니…
아침뉴스에서는 5미리 안팎의 적은 양이라고 수그러들었다가…
결국, 한방울도 구경 못했다.
가슴 큰 년 말만 믿고 우산 들고다니는 나만 바보라니까…
그나저나 오늘은 평소에 내 자리 근처에는 접근도 하지 않던 봉대리가
자꾸 뭐 물어볼 것이 있다는 둥, 결재가 밀렸다는 둥 하면서 30분
간격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지를 않는가.
그래 요상하게 생각하던 중 내일 이사한테 가져갈 보고서를 머리
맞대고 검토하다가 (이것도 수상했어… 이녀석이 나하고 머리를 직접
맞대고 싶어할 놈이 아닌디 말이지) 봉대리가 코를 훌쩍거린다는
사실을 캐취해내고 말았다.
아니 이 쓰발놈이 나한테 감기를 옮기려고!!!!!
당장 정의의 주먹을 휘둘러 봉대리를 10미터 밖으로 쫓아내버리고
결재판을 부채질해서 주위 공기를 환기시킨 다음 공기청정제를 내
자리 주변에 듬뿍듬뿍 뿌려놓았다. (어씨… 향기가 독해서 취할라
그러네)
그래도 이미 공격목표를 정한 봉대리는 계속 결재문서를 가지고
올라오고…(이놈시키 오늘 일많이 하네)
나는 손수건으로 적절한 방어막을 편 다음 (우리 딸년 표현을 빌자면,
AT필드를 썼다고 할 수 있겠지) 봉대리를 2미터 전방에서 격퇴하는
수법으로 봉대리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흥… 니깟놈이 나한테 감기를 옮기겠다고? 그것도 지저분한 코감기를?
상대를 잘못 골랐으 아그야…

SIDH’s Comment :
요즘 신종플루인가 해서 난리가 났던데
중국 출장 다니는 사람한테 들으니 그쪽도 장난이 아닌가보더라.
비행기에서 감염자가 발견됐다고 현지 출장까지 가서 공장(출장 목적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호텔에 격리(?)돼서 이메일로만 일하고 있다던데
그렇다고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어디 무서워서 해외여행이라도 다니겠나.
…라고 말하면 돈없어서 해외여행 못다니는 티가 좀 안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