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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예순번째

2007년 10월 14일

[봉대리의 일기]

2/19 (토) 오늘도 상태가 안좋아…

날씨가 주중에는 계속 쾌청하다가 주말이 되니까 꾸무리해지는 건
뭐야?
오늘은 경영개선방안 어쩌구 하는 시덥잖은 문서 쪼가리를 들고
피부장 면회를 가는 날이었다.
낸들 가고 싶어서 가나. 결재를 맡으러 오래잖아.
내 정신건강에 상당히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냥 오과장님이 가서
받아오시죠… 그랬다가,
오늘 뭐 애들하고 어디 놀러가기로 했다나…
날 다 추워지는데 가긴 어딜 가…
그리고 놀러가는 거랑 결재받으러가는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나도 좋은 기분으로 놀러가고시포…
음… 할말 없었다.
투덜투덜하며 피부장이 자빠져있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어쩔시구리! 제법 중환자처럼 누워있네!
피부장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근육경련을 일으켰다.
간호사~! 간질발작 아냐 이거?
간호사 왈 어제 축구를 보고나서 종종 이런단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 어쩌구저쩌구 해서 병실에서 쫓겨나고
겨우 간호사를 통해서 결재만 받았다.
근데 이 개자식은 침대에 누워서도 빨간펜을 휘두르네?
열받아서 도로 회사에 안들어가고 그냥 집으로 퇴근해버렸다.
경영개선이고 나발이고 피부장부터 짤라줘!

[피부장의 일기]

2/19 (토) 창문을 열어줘야 하늘을 보지…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꿈 속에서 넓게 펼쳐진 천연잔디구장.
사천만 관중이 (잔디구장에 어케 사천만이 들어오냐… 따위의 시비는
걸어주지 않았으면 한다. 꿈아냐 어차피) 나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붉은 상의에 파란 빤쭈를 입은 나는 국가대표 최전방공격수.
경기 시작과 동시에 홍명보와 유상철의 패스를 이어받은 황선홍이
절묘한 드리블로 수비수 둘을 따돌리더니 문전으로 쇄도하는 나에게
그림같은 패스를 연결,
골키퍼는 황선홍 쪽으로 치우쳐있었기 때문에 완벽한 골찬스였다.
오른발에 정통으로 맞으며 슛~! 골인~!
이었어야 되는데,
느닷없이 골키퍼가 팔이 죽 늘어나더니 내가 슛한 공을 턱 잡았다.
두번, 세번, 후반전이 시작되도 그놈의 골키퍼는 나의 바이시클킥,
발리킥, 바나나킥, 심지어 코너킥까지 가제트팔처럼 늘어나는 팔로
휙휙 잡아냈다.
후반 종료 1분전 스코어는 0:0, 안돼! 여기서 비기면 탈락이란말야!
교체되어 들어온 안정환이 질풍처럼 적진을 향해 내달리고,
내가 뒤를 바짝 따랐다.
안정환 우측으로 뛰어오던 박진섭에게 내주고 중앙침투.
나는 안정환을 끼고 돌아서서 왼쪽 골포스트 방향으로.
박진섭의 감아차는 센터링을 향해 안정환이 속임수 점프를 해주고,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나의 이마에 센터링되온 공이 정확히 닿았다.
꿍!
공이 아니라 골포스트였다.
깨진 이마를 싸매고 쓰러진 내 앞에서 공을 감싸안은 골키퍼가 웃고
있었다.
앗! 그 얼굴은… 봉대리였다!
그순간 잠에서 깨어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다가 또다시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오전내내 똥누고 안닦은 사람처럼 찝찝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점심시간 다되갈 무렵 봉대리가 쓱 나타나는게 아닌가.
으아아아아아악~~~~!!!
이제는 5분대기조처럼 노련해진 간호사 아줌마들이 즉시 출동하고,
환자의 안정을 위해 봉대리는 병실에서 쫓겨났다.
결재 받으러 왔다고 봉대리가 간호사 편에 서류를 전해줬는데,
내가 허리 아프고 악몽에 시달렸다고해서 빨간펜 선생 노릇을 그만
둘 줄 알고?
난도질을 해서 넘겨줬다.
지금 솔직한 내 심정은,
밤이 무서워~

SIDH’s Comment :
요즘은 전자결제시스템을 도입해서 이런 경우가 많이 없다고 하는데
여전히 전자결제만으로는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되지 않아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서류는 대면결제를 한다고도 하더라.

근데, 순전히 내 생각인데,
중요한 내용을 보고서에 다 써놨으면 상사가 죽 읽어본 후에 가부를 결정하면 될 것이고,
토론이 필요하면 결제 올리기 전에 회의를 하면 되지,
왜 서류를 갖다놓고 한 사람은 그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설명하라 그러고 다른 한 사람은 서류는 대충 만들고 말빨로 때우려고 하는 걸까.

이런게 비효율이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