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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일흔일곱번째

2007년 12월 16일

[봉대리의 일기]

3/17 (금) 날씨 조코…

내가 언제 당구 끊겠다고 그랬어?
내 목숨을 끊으면 끊었지 당구는 못끊겠다.
당구를 끊겠다고 맹세한 어젯밤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베개가
축축 하더라구.
근데 좀 끈적거리는 느낌이 강하던데…
설마 침은 아니겠지.
하여튼, 당구는 안끊어!
오백다마라는 변대리한테 특강을 받아서라도 내 봄이 가기 전에
황대리를 꼭 잡고 만다.
이런 굳은 신념으로 오늘도 업무시간에 몰래 인터넷에서 당구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는데,
퍼억~
PC가 나가버렸다.
내 것만? 천만에!
회사 전체에 정전이 온 것이다.
뭐 작업 중이던 파일도 없고, 마침 다른 사이트 뭐 없나 검색을
해볼라던 찰나여서 나는 별 피해 본 것이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또 나의 임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는 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막 메일 보내려는 순간에 날라가 버렸다~
피부장은 벌떡 일어나서 당장 전기반 연락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대고…
진짜 열심히 일하던 전유성 씨는 모니터에 계속 어퍼컷을 먹이면서
뜻모를 비명을 질러댔다.
10여분의 아수라장이 겨우 정리되고… 사무실에 불이 들어왔다.
피부장은 일해야되는 전유성 씨를 보고 내려가서 어떻게 된건지
상황보고를 하라는 둥… (기획팀장한테 정전보고를 왜 해야되누?
끼여드는 건 좋아해갖구…) 아주 난리 부르스를 땡기고 있었다.
꼭 저런 식으로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해야되나…?

[피부장의 일기]

3/17 (금) 날씨 괘안네…

우씨… 지금도 열받는다.
오늘따라 인터넷이 느려터져갖구… 낑낑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3월이 되니까 어째 사무실이 조금 한가해서…
주주총회나 한번 해야 이게 난리부르스를 한번 땡길텐데…
하여튼 요즘은 좀 심심하니까… 일도 별반 없고…
내가 일 없는 거 뻔히 아는데 괜히 PC 앞에서 열라 일하는 척 하는
놈들을 보면… 가증스럽다.
여봐라~ 저놈들을 당장 하옥시켜라~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지켜보기는 한다만.
오옷! 근데 무심코 들어간 사이트에서 기가 막히는 걸 발견했다.
흔히 말하는 여자 옷벗기기 게임!!
인터넷에서 이런 걸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일이야!
또 내가 이런 거에는 일가견이 있거든!
뭐 간섭할 사람도 없겠다, 오전내내 이것만 붙잡고 있었다.
야금야금 벗겨가는 그 재미루다가…
어쩌다 실패해서 기껏 벗겨놓은 옷을 도로 입혀줄때는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그러나… 결국 신은 나를 선택했다…
마지막 빵빠레가 울리고… 마지막 한장이 스르르 벗겨지려는 그
역사적인 순간…
퍼억~!
PC가 나가버렸따.
어? 왜 이러지? 라고 당황할 틈도 없이 봉대리의 울부짖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도 일제히…
정전이로구나!
봉대리 짜식 일하는 중은 아니었을텐데 저놈도 나처럼 게임하고
있었나?
어쨌든 우워어어어어~
오전 몽땅과 오후 절반을 투자해서 겨우 벗겨놨더만~
당장 범인을 잡아와! 원인결과 분석해서 보고서 제출하라구 그래!
놀란 전유성이가 이리저리 뛰어댕겼지만 뭐 사무실 탓이 아니고
한전 탓이란다.
안되면 다 한전 탓이지~
아직도 벗기지 못한 그 마지막 한장이 눈 앞에 삼삼해서 글을 쓸 수가
없을 정도다.
사이트 주소도 까먹었단 말야 잉~

SIDH’s Comment :
불과 십년 전만 해도 그렇게 치명적인 일은 아니었을텐데
이제는 회사 근무시간에 정전이 된다면
그날 업무가 마비되는 정도가 아니라
며칠동안 작업한 일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대형사고가 될 거다.
실제로 전에 다니던 회사가 전기를 좀 무리하게 썼는지
비교적 자주 전기가 퍽퍽 나가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여기저기서 차마 인간이 내는 소리라고 믿기 힘든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오던 기억이 난다.
나야 뭐 일을 안하니 그렇게 비명지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놀았는데 어떻게 월급은 받고 살았나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