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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리일기 예순일곱번째

2007년 11월 11일

[봉대리의 일기]

3/2 (목) 날씬 좋았서리…

계획대로라면 말이지, 오늘 나는 하루죙일 방구석에서 구들장하고 찐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어야 했다구.
망할놈의 피부장 땜에 말이지, 그런데도 나는 오늘 출근을 했다구.
그뿐이랴, 병원에서 보약만 먹었는지 훨씬 쌩쌩해진 피부장과 정면으로
부닥치고 말았다구.
짜식이 말야, 자기가 없는 사이에 진행된 서류를 몽땅 챙겨서 가져
와보라고 말하더라구.
내가 미쳤냐구. 그걸 어떻게 다 챙기냐구.
물론 물정모르는 모주라 씨는 자기가 끄적거린 초안지까지 몽조리 챙겨서
보여주는 열성을 보여주기도 했다구.
하지만 내가 바보냐구. 내가 신입사원이냐구.
개겼다구.
맞았다구.
사무실에서 서류뭉치로 맞아봤냐구.
그거 되게 아프다구.
피부장이 그랬다구.
너 이새끼는 도대체 회사에 도움이 안돼! 두주일동안 일한 것도 그래
정리를 제대로 몬하냐만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 내 행실에 빗대어봤을 때 이거는 이렇게 화를 낼
수준의 일은 아니었다구.
그럼 뭐냐구.
뻔하지 않겠냐구. 신입사원 보는 앞에서 나를 죽이겠다는 속셈이
아니겠냐구.
이젠 봄이 왔다구. 사무실도 좀 변해야되지 않겠냐구.
같이 벤처하자던 노자지는 연락도 없구…

[피부장의 일기]

3/2 (목) 날씨 조쿠만!

오늘은 뭔가 벼르는 게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따.
이사람 저사람 알아보고 인사를 많이 해준다.
어이구, 피부장님. 허리를 다치셨다면서요?
그래 마나님이 옆구리 뜯지 않으십디까?
마나님이 무슨 상관이야. 단란주점 미쓰 김만 좋아하면 그만이지.
부장님 오셨습니까.
입원한 이후로 이상하게 충성스러워진 조과장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나를 보고 90도로 인사를 한다.
미쳤나?
아냐… 짜식이 나없는 사이에 팀장 대행을 하면서 나의 고충을 십분
이해한 것이 틀림없어.
괴야운 자식… 빨아줄까부다.
(…음… 떡대좋은 아줌마들과 2주일을 부대꼈더니 변태가 됐나…)
어쨌거나, 신입사원 신고는 날도 좋은 3월3일 저녁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신입사원에게 사무실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날로 하자.
집합!
득달같이 달려오는 사원들과 맨뒤에 따라붙는 아~ 이쁜 모주라 씨.
아직은 물정 모르고 눈만 멀뚱멀뚱거리는데… 흐흐흐…
내가 없는 동안 사무실에서 진행한 일을 파악해야되니까… 서류를 몽땅
모아서 가져올 것…
황대리가 또 볼따귀에 바람을 집어넣는구먼…
꺄불지마 임마…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봉대리는 A4지 두세장에 불과한 종이를
나풀나풀 들고 왔다.
음 마침 오과장이 제법 두꺼운 서류를 가져왔군.
퍼억!
봉대리의 안면을 정통으로 맞췄다.
이따위로 일할 거면 당장 회사 때려치워!!!
박살이 나서 얼굴만 벌개진 봉대리.
얼른 볼에서 바람을 빼는 황대리.
책상 밑으로 조용히 찌그러지는 전유성 씨.
급히 전화기를 드는 지화자 씨.
그리고… 놀란 토끼처럼 눈이 휘둥그레진 모주라 씨.
이것이 바로 사무실이란 말야!

SIDH’s Comment :
상사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래 자리를 비웠다가
드디어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날.
그동안 정말 열심히 묵묵히 일만 해왔어도
이상하게 그 날은 깨지게 되어있다.

상사들이란, 자기가 없으면 회사가 잘 안돌아갈 거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평소에 늘 하던 모습도 새삼스레 달라보이고 한마디 해주고 싶어하는 것.
힘있냐 당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