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젤리스

2000년 12월 20일

내가 반젤리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유감스럽게도 영화음악이 아니라 ‘존과 반젤리스’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노래 “Hymn”를 듣고부터였다. 음악이 뭔가 묘한 것이 말이지, 에코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절묘하게 살려내는 그런 곡이었다. 나중에 반젤리스와 데미스 루소스(이 인간은 목소리가 환상적이다)가 결성했던 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음악을 듣고 (아실랑가 모르겠다. “Rain And Tears”나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같은 올드팝들을) 이 사람들 원래가 이런 족속이구나 무릎을 치기도 했지만.
나중에 <불의 전차>와 유명한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음악을 반젤리스가 담당했다는 것을 알고 반젤리스의 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를 깨달았다. (그때서야 알았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그것은 바로 신디사이저였다. 내가 알기로 당시로선 신기술에 가까웠던 신디사이저를 세상에서 제일 잘 연주하는 사람으로 반젤리스는 나에게 기억되었다.
그런 의식 탓인지 지금도 반젤리스는 나에게 있어서 뭔가 시대를 앞서간 인물처럼 인식되곤 한다. 그가 음악을 맡았던 <블레이드 러너>의 이미지가 겹치면서부터 더욱 그 정도가 심해졌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가 강한 그리스 태생이라는 점에서 한점 더 먹고 들어갔다. 기계로 만드는 음악에 숨결을 불어넣는 사람으로, 우리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선구자며 은둔자의 이미지로. (솔직히 나는 반젤리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나에게 이미지가 그렇게 남았다는 뜻이다)
훌륭한 영화음악을 많이 남겼지만 전문적인 영화음악가라기엔 하나의 뮤지션이라고 봐야 할 반젤리스는, 자신의 영화음악을 확실한 명반으로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가 맡은 영화를 흥행작으로 이끄는데는 별반 재미를 보지 못한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음악가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져서일까? 그 이유보다 나에게는 반젤리스의 “선구자적” 이미지가 정답으로 더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것을 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