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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SIDH의 신혼여행 마지막날 / 몽마르트에서 귀국까지

2009년 4월 4일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신혼여행 여섯째날이자 마지막날이며 귀국하는 날.
원래 오늘 계획은 몽마르트 언덕 구경하고 백화점 돌아보는 거였는데
몸상태가 저질이라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참 걱정되는 아침.

일단 뭉기적거리다가 겨우겨우 일어나 짐 챙기고
9시에야 나가서 아침먹고 다시 들어와 옷 갈아입고
빼먹은 거 없는지 서랍이랑 욕실이랑 박박 뒤져서 다시 가방 싸고
드디어 체크아웃.

다섯밤이나 잔 호텔인데 호텔 전경 사진 한 장 안찍어왔길래
flickr.com에서 사진 한 장 찾아서 그냥 첨부해봄.


Evergreen Laurel Hotel

호텔을 떠난 시간 오전 10시.
파리 북역에 도착한 시간 오전 10시반.

왜 몽마르트를 간다더니 파리 북역이냐, 싶겠지만,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비행기는 무려 저녁 7시55분에 출발한단 말이지)
코인락커가 있을만한 곳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파리 북역이 좋을 것 같더란 말이지.
어차피 샤를드골공항으로 가려면 파리 북역에서 출발해야되기도 하고… 이래저래 겸사겸사.
문제는 파리 북역에서 어디로 가야 코인락커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뿐인데…
이 사소한 줄 알았던 문제가 별로 사소하지 않았던 것이 또 문제.

코인락커를 찾아서 1층과 2층을 누비고 다니다 못해
안내소에도 찾아가서 마누라가 짧은 영어로 물어봤으나
안내원이 친절하긴 한데 영 딴 소리만 하더라는.

이게 어디에 쳐박혀있는 것이냐 투덜거리며 구석구석을 뒤지다보니
지하철 타는 곳과 정반대쪽에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혹시 코인락커가 아닌가? 싶은 안내문구가 있는 것을 발견.

일단 내려가보자,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코인락커는 안보이고 철망으로 보호된 유리문 안에 공항에나 있을법한 수하물탐지설비 같은 것만 보이고.
뭐야 여기 코인락커 맞아? 하며 둘러보고 있노라니
왠 노부부가 그 안에서 가방을 꺼내들고 나오더라는.
맞긴 맞나? 싶어서 문 열고 들어가서
이동벨트에 우리 가방들을 다 올려놓고 금속탐지기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오호, 과연 코인락커가 맞음.

그때서야 생각난 것이서
예전에 뭐 어느 나라에선가 기차역 코인락커 같은 곳에 폭발물을 설치해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던가… 뭐 그런 기사를 읽었던 것 같았음.
그래서 코인락커에 물건도 함부로 못맡기는 건가.서
하여튼 마누라와 내 여행가방(큰 거 2개)을 모두 넣을만한 큰 락커를 찾아보니
한 번 넣는데 무려 9.5유로-_-


대충 이렇게 생긴 코인락커
파리 북역에 있던 그놈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찾은 대충 비슷하게 생긴 코인락커

일단 가방을 넣고나니 이걸 어떻게 잠그는지가 또 숙제-_-
일단 영어로 된 설명대로 하나하나 해보니
이 자식이 돈은 넣어주는대로 잘 먹고 일단 잠김.
그럼 이걸 어떻게 여느냐?
락커에서 돈을 받았다고 나온 영수증이 있는데
이 영수증에 있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다시 열림-_-
꼭 확인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기어이 비밀번호 넣어서 다시 열어보고 다시 잠그고 나왔음.

이제 몽마르트로 출발하려고 코인락커가 있는 곳을 나오는데
역시 우리처럼 짐을 맡긴 것으로 보이는 여자애 둘이
한국말로 뭐라고뭐라고 하면서 우리를 앞질러 갔음.
마누라하고 둘이서 쟤네도 우리랑 같은 비행기 타나보다 뭐 이런 뻘소리하고.

꽤 오래 헤맨 것 같은데 딱 30분만에 파리 북역 출발. 오전 11시.

파리 북역에서 몽마르트는 사실 가까운 편인데
(뭐, 맘만 독하게 먹으면 걸어갈 수도 있는)
지하철로 가려니 두 번이나 갈아타야되는구나;;
게다가 지난 파리여행 때 안가봤던 곳이라
어떻게 가야되는지 좀 생소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보통은 앙베르(Anvers) 역에서 내리면 몽마르트 언덕으로 편하게 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가면 흑인팔찌단(?)이라는 무시무시한 사람들과 마주칠 확률 100%이고
뒤쪽 언덕으로 오면 테르트르 광장이라는 곳도 볼 수 있다고 해서…
쓸데없이 멀리 돌아서 라마르크 콜랑쿠르(Lamarck Caulaincourt) 역에서 내렸음.
바깥으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이건 뭐 우산 쓰기도 뭐하고 맞기도 뭐한 그런.


Lamarck Caulaincourt 역
영화 <아멜리에>에도 나온 곳이라는데 기억에 없음. (사진 출처는 flickr.com)

하여튼 막상 지하철을 내려서 지도를 보고 찾아가려니 그러기엔 무척 힘든 구조.
(그동안 대로변으로만 다니다가… 산으로 가는 골목길을 헤매려니…)
이리로 가는 게 맞나? 이렇게 가면 되나?
계속 들고간 지도를 좌로 우로 뒤집어보며 찾아가는데
최종목적지라고 할 수 있는 샤크레쾨르 성당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
오케이 저것만 보고 가면 되겠구나 싶어
마누라 끌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언덕길을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갔음.


몽마르트 언덕 올라가는 길

테르트르 광장
광장이라는 이름에 비하면 좀 작긴 하지만;; 레스토랑이나 카페, 화가 등등
몽마르트의 낭만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비가 와서 그런지 저렇게
그림들이 나와있거나 하질 않아서… (사람은 많았음) 따로 사진은 안찍었고 그냥 flickr.com에서 사진 찾아서 붙임.

광장을 돌아나오니 드디어 샤크레쾨르 성당 뒤통수가 보임.



샤크레쾨르 성당
파리에서 보기 드문 비잔틴양식 성당으로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이란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건립된 것이라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편. 성당이 하얗고 예뻐서인지 여행 브로슈어 같은 곳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더라. 날 좋을 때 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파리에서 제일 높다는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파리

샤크레쾨르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고 해서
카메라는 접어넣고 성당 내부로 들어갔음.
노틀담 성당이나 생미셀 성당과는 좀 다른 맛이 있긴 했는데… 사진이 없어서리.

재미있는 건 이 성당 안에서 아침에 코인락커 앞에서 본 한국여자애들을 봤다는 거.
걔네들도 우리 보고 알아봤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성당을 나와서 앙베르 역을 향해 철수.
계단으로 내려가다보니 엄청 높더만.
(뒤로 골목골목 돌아서 올 때는 이렇게 높은지 잘 몰랐었음)




성당을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들

성당 입구격인 공원 문 앞을 지나가려니
바로 악명높은 흑인팔찌단이 과연 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모습 발견.

흑인팔찌단이란
저렇게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서있다가
친절하게(?) 말을 걸며 다가와서는 잠깐 방심한 관광객 손목에 실(그냥 색실)을 감아주면서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둥 뭐라는 둥 썰을 풀면서 실을 묘하게 매듭을 지어 팔찌를 만들어주고
팔찌값-_-으로 폭리를 취한다는 악명높은 사람들.
(100유로까지 뜯겨봤다는 사람도 있던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음)


뭐 대충 이러는 사람들
(출처는 flickr.com)

사실 사기성…이라는 것만 빼면 그렇게 무섭거나 기피할 사람들은 아닌데
젊은여자배낭여행객이 많은 한국에서는 말도 잘 안통하는데다 흑인이고 해서 그런지
좀 무서운 사람들(강도 비슷한)로 이미지가 형성되어있음.
(인터넷으로 파리 여행 정보 찾다보면 숱하게 언급됨)
나도 들은 말이 하도 험하다보니 좀 심하게 경계를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한테 차이니스? 코리안? 하면서 다가오길래 좀 과도하게 다가오지 말라는 몸짓을 했더니
엉뚱하게 마누라가 민망해하더라는;;;

나오면서 보니 왠 백인 여행객 하나가 붙잡혀서 손목에 열심히 실을 묶이고 있더라.
(뭔지 모르는지 그냥 즐거운 표정;;)

내려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들이 잔뜩 있길래
회사 사람들한테 돌릴 에펠탑 열쇠고리(파리 갔다오면 으레 사가는 기념품) 열몇 개 사고
(많이 사면 할인도 해주더군)
마누라는 집시 목도리처럼 생긴 (그리 이쁘지도 않은-_-) 너덜너덜한 것들을 둘러보더니
(예전에 파리 여행 다녀온 친구가 사온 거라나)
결국엔 안사고-_-;;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앙베르 역을 찾았는데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음-_-;;

지도 상으로 분명히 지하철 입구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이상한 주차장 출입구가 있고
주위를 아무리 싹싹 뒤져봐도 별다른 지하철 입구는 보이지 않았음.
정말 30분 가까이 지하철 입구를 찾다가 찾다가 성질 다 버리겠다 싶을 때쯤
길 건너편에서 지하철 입구를 발견-_-;;;
가뜩이나 파리 지하철 입구 찾기 힘든데
고 근처에 무슨 이상한 노점 같은 게 있어서 더 안보였던 모양.

아 오늘 마지막날인데 왜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마누라와 함께 짜증 한 바가지.
그러나 오늘의 헤매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다음 목적지는 프랭탕-라파예트 백화점 투어.
뭐 딱히 살 물건이 있다기보단 유명하고 오래된 백화점들이라 구경이나 해보자는 차원.
그러다가 살만한 물건이 있으면 사는 거고.
주머니 사정상 살만한 물건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하여 생 라자르 역 도착.
여기는 제법 번화가.


생 라자르 역 주변
(출처는 flickr.com)

백화점 투어에 앞서 어느덧 시간이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으므로
점심부터 해결하자는데 마누라와 합의.
그동안 빵이니 파스타니 피자니 이런 것들로만 배를 채워왔으므로
이번에야말로 스테이크를 한번 썰어보자! 하는 생각에
왠지 스테이크를 팔 것 같은 식당을 찾기 시작.

마침 프랭탕 백화점 가는 길에 좀 크고 괜찮아 보이는 식당 하나 발견.
문 앞에 세워놓은 메뉴를 보니 (메뉴 엄청 많음) 스테이크도 계시고.
드디어 고기를 먹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어익후;;;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좌석은 당연히 꽉 차있고 바에 기대서서 먹는 사람들도 엄청 많음.
어쩔 줄 모르고 잠시 서있었더니 종업원 한 명이 다가와서 스낵? 하고 물어봄.
아마 바에 기대서서 먹는 사람들은 간단한 메뉴 시켜서 그렇게 서서 먹고 가는 손님인 모양.
하지만 우리는 고기 먹으러 왔다고!!
스낵 먹으러 온 거 아니라고 했더니 (노 스낵, 그랬음) 종업원은 그냥 우리 놔두고 가버리고
몇 손님 나가고 나서야 우리 차례가 됐는지 좌석으로 안내해줌.
그런데 그 자리라는게 참으로;;

말로는 아무래도 설명이 안될 거 같아서 그림 첨부.

보시는 바와 같이 마누라와 내가 나란히-_- 앉아야되는 자리인데다
그림은 대충 헐렁하게 그렸지만 들어갈 통로도 거의 없는 비좁은 자리.
(앉으면 그나마 좀 낫긴 하지만)
내가 문 옆에 앉았는데 첨엔 그게 막혀있는 문이려니 생각했다가
왠 종업원이 우리 쪽으로 오길래 주문하려고 했더니 그리루 쑥 들어가버려서 황당했다는;;
창고문은 그나마 좋게 생각한 거고 혹시 화장실 아냐? 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음.

아무튼 저따위 자리에 앉아서라도 고기를 먹어야지!! 싶어
메뉴판에서 일단 고기!! 제목도 기억 안나는 스테이크 뭐 시키고
목도 마르고 해서 맥주 한 병씩 더 시켜서 먹었더니 40유로 가까이 나오더만.-_-;
문제는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먹은 고기인데… 맛이… 좀…
소스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 우리가 잘 몰라서 원래 그런 종류를 시킨 건가
그냥… 고기 구워서 날로 먹는 그런 기분.
뭐 우리가 시킨 대로 나온 걸테니 입닥치고 먹어야지.

그렇게 벼르고 별러서 고기를 먹고도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옴.
(나올 때까지도 얼마나 바쁜지 종업원들이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길래 그냥 테이블에 돈 놔두고 나왔음)
자 그럼 이제 백화점 구경을 가볼까요.

백화점이야 마누라가 혼자 신나서 돌아다녔지 나는 뭘 봤는지 잘 기억도 안나므로 생략.
사진도 찍은 게 없구나.


라파예트 백화점
마누라가 유일하게 찍은 사진

거의 2시간을 돌아다니다보니 더 볼 것도 없고해서
생 라자르 역 앞에 있는 퀵버거에 들렀음.
파리에서는 그렇게 유명하다니 한번 맛이나 보자, 하는 생각도 있었고
어차피 공항 들어가서 비행기 탈 때까지 딱히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대충 지금 때워두자, 뭐 이런 생각도 있었고.

점심 먹은 지도 얼마 안된 상태라 버거세트 하나만 사서 둘이 나눠먹고
(짧은 영어로 주문하느라 죽는 줄 알았음;;)
지하철 타고 코 앞에 있는 파리 북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30분.

여기서 파리 지하철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큰 실수를 하게 되는데
(하지만 지금도 내가 대충 어떤 실수를 한 건지는 감이 잘 오지 않음)
아마 내가 개찰구를 나갔다가, 다시 다른 개찰구를 통과해서 지하철 타는 곳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음.
(당연히 마누라도 따라왔고)
가다보니 어, 여기 아니다 싶어 돌아나가려는데 개찰구가 가로막는게 아닌가.
들고 있는 표를 집어넣으니 에러가 나고 열리지 않음.
헉, 갇힌 거 아냐.

마누라 끌고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구석을 다 돌아다니면서 개찰구마다 표를 넣어봤지만
계속 에러메시지와 삑삑거림만 반복.
말도 제대로 안통하는데 이 복잡한 사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여길 빠져나가나?
싶은 암담함이 가슴을 치고 있는데
(파리 개찰구는 이상하게 생겨서 우리나라처럼 위로 건너뛸 수도 없음)
왠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다가
아마 내가 나가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았는지
여기로 표를 넣고 나가는 거라고 손짓으로만 알려줌.

그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표가 에러나는 거라고 설명을 해줄려고 했는데 영어고 불어고 다 안되잖아.
그냥 표를 집어넣고 에러나는 걸 보여주면서 이런 거다, 라고 몸짓을 해보였더니
그 할아버지가 겁나게 인자한 미소를 짓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하는게 아닌가.

쉽게 말해서 자기가 나갈 때 뒤에 바짝 붙어서 같이 나가자 이거지.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절이라도 넙죽넙죽 하고싶은 마음은 마음이고
일단 말이 짧아서-_- 냉큼 뒤에 붙는 걸로 대신하고
마누라 보고도 빨리 따라오라고 손짓했더니 마누라도 얼른 내 뒤에 붙었음.
그렇게 결코 날씬하지 않은 세 사람이 한 번에 개찰구 통과 성공.

메르시, 메르시 하면서 허리를 두세 번 굽혀 인사했더니 그 할아버지 그냥 웃으면서 가버림.
아 신혼여행 마지막날이 왠지 파란만장하네.

하여튼 이제 제대로 나왔으니, 코인라커에 가서 가방부터 찾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열차표를 사서 그리루 가면 됨.
여기서도 가방은 쉽게 찾았는데 비행기 타러 가는 기차 타는 데를 찾느라 또 헤매고
(그나마 여태까지 헤맨 것에 비하면 이건 그냥 넘어가도 될 수준)
겨우 기차 타는 곳에 갔더니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 와중에 아침에 코인락커에서 보고, 샤크레쾨르 성당에서 본 여자애들을 또 봄.
같은 비행기 타는 거 맞나 보다.

기차도 자주 오는 게 아니라서 한참 기다리다 탄 시간이 오후 5시 35분.
사람도 많은데 다들 큼지막한 가방들을 가지고 타니 기차 내부가 더욱 비좁음.
그래도 사람들 조금씩 내릴 때마다 안으로 조금조금 들어가다보니
빈 자리가 생겨서 일단 마누라부터 앉혔다가 나중엔 나까지 앉아서 갔음.
아침에 만났던 여자애들은 우리랑 같은 비행기는 아니었는지 우리보다 한 정거장 앞에서 내리고
우리는 종점에서 내려서 비행기 타러 또 한참을 걸어감.


지하철 내려서 이런 곳을 한참 지나야 탑승수속하는 곳이 나옴
(출처는 flickr.com)

여기서 마지막 헤매기.
지쳐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카운터에 들러서 탑승수속부터 해야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탑승수속하고 출국수속하고 헷갈려서
짐도 부치지 않고 출국하는 게이트로 가서 줄 서려고 했음.
그러나 인도사람처럼 생긴 공항 직원이 우리 상태를 보더니 (정확히는 짐을 보고)
여기로 오지 마시고 9번으로 가서 티켓팅을 하라고 알려줌.
9번이면 한참 지나왔는데 도로 빠꾸해야되네… 하고 가려는데
왠 한국 아저씨들이 일부러 다가와서 대한항공 타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해줬더니 그럼 3번으로가서 티켓팅 하면 된다고
무척 친절한 말투로 알려줌.

3번이면 더 먼데… 투덜투덜하며 3번까지 갔더니
3번은 개뿔… 9번이더라.
외국 나가면 한국사람들을 더 조심하라더니 정말 그 꼴.
덕분에 가방 끌고 지친 몸으로 샤를 드골 공항 두바퀴 돌았네.

가뜩이나 시차적응 실패한 마누라는 이미 넉다운 직전.
나도 이제 돌아간다 싶으니 피곤이 좍좍 몰려오고.
사람이 몰린 탓인지 출국심사 통과하는데만도 한참 걸려서
정말 심신이 다 황폐해질 지경인데
아, 이거, 또 선물은 사야되잖아.
면세점 돌아다니면서 부모님과 친구들 줄 선물 몇 개 고르고
(기념품은 그냥 파리 시내에서 샀어야 되는데… 여기가 더 비쌈)
이제 비행기 뜨겠네…하고 탑승구 앞으로 갔더니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이번엔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늦게 뜬다고.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출처는 flickr.com)

그래 마지막까지 순탄한 게 없구나.
탑승구 주변 자리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서 앉을 자리가 없길래
멀리 떨어진 빈 자리에 가서 일단 앉아서 쉬다가
마누라는 잠깐 화장실 가고, 혹시 비행기 언제 뜨려나 싶어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Baek, Song 뭐 이런 메시지가 지나가면서 이분들은 탑승구로 오라는 게 아닌가.
(우리 말고도 십여 명 있었음)
아니 뭐야 또~~~!!!

마누라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탑승구 앞에 있는 직원에게 갔더니
아마 좌석 배치가 잘못 돼서 그랬는지 좌석만 바뀐 새 티켓을 줌.
그래서 출발이 지연된 건가?
하여튼 그러고나서 조금 있다가 탑승 시작.

비행기에 탄 다음부턴 기억 별로 없음.
기내식은 다 먹은 거 같은데 그때 말고는 거의 자고 있었으니.
(음료수도 제대로 못받아먹은 거 같은…)
그래도 그 덕분에 뭔가 개운해진 상태로 깨보니 곧 한국 도착한다네.

인천공항 내린 시간 토요일 오후 2시.
가방 찾아서 (갈 때는 가방이 금방 나왔는데 이번엔 좀 늦게 나왔음) 밖으로 나오니 뭐, 세상 별다른 거 없더구만.
양가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고 전화드리고
공항 로비에서 여유있게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처가집으로 가는 공항버스 탔음.
거기서도 또 한참 잔 거 같은데.

그렇게 신혼여행 끝.
이건 무슨 오지탐험도 아니고 왜이렇게 고생한 이야기 투성이냐.

마누라가 그 좋다는 파리에서 고생만 한 것 같아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파리 오자고 했더니
죽어도 다시는 안온다던가.
돈 굳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