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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SIDH의 오사카-교토여행 / 도톤보리-신사이바시

2006년 8월 16일

2006년 3월 18일 오후 4시. 호텔이 있는 지하철 에사카역 도착.


비를 맞고 있는 맨홀 뚜껑 (출처는 flickr.com)

오사카항에서는 우산을 써도 그만 안써도 그만 정도였던 비가
에사카역에 도착하니 주위도 제법 어두침침해지고 빗줄기도 꽤 굵어진 상태.
여행용으로 삼단 접는 작은 우산을 가져왔기 때문에
혹시 이 비바람질에 뒤집어지거나 부러지거나 하면 곤란…하다는 생각 잠시.
곧, 당당하게 호텔을 향해 돌진.
주위를 살피고 약도를 확인하면서 천천히 갔더니 약 10분 정도 걸림.
숙소 이름 에사카 치산 여관.(영어로 Inn이라고 써놨더군)


에사카 치산 여관 (출처는 인터넷 어딘가)

그래도 지난 번 동경에 갔을 때는
어디 연수원 건물이던가 해서 제법 큰 건물에 마당도 넓고 그러더니
이번에 걸린 숙소는 진짜 “여관”.
예전에 파리 갔을 때 묵었던 숙소랑 비슷하더만.

문 앞에 큰 유리창을 통해 안을 보니 여행객들이 우르르 있길래
나와 비슷하게 일본에 들어온 한국사람들인가… 잠시 착각했는데
호텔에 들어가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일본사람들 같았음.
데스크로 가니 얼굴은 멀쩡하게 잘생겼는데 가운데머리가 홀라당 빠진
(나이도 그리 많아보이지 않던데 어쩌다가…)
직원이 다가와서 뭐라고 씨부리기 시작함.

뭐 이제 이런 경험 처음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여권을 꺼내 내밀었음.
이 자식, 여권을 보고 그제서야 영어를 쓰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예약카드 같은 것을 한참을 뒤지다가 “못찾겠는데…”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봄.
어쩌라고.

이 자식이 다시 다가와서 “어떻게 예약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는데
(가끔 나의 히어링, 나도 놀랄 정도로 좋아질 때가 있다)
속편하게 인터넷, 전화, 뭐 이런게 아니고
여행사 통해서 예약했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되는지 도통 안떠오르는 거라.
(영어든 일어든)
잠시 썩은 미소를 날려줬더니 이 자식이 안절부절.
그때 다른 사람을 처리하던 여직원이 와서 이 머리 빠진 자식과 몇마디 하더니
별도의 장부를 들고와서 같이 뒤적뒤적.
머리 빠진 자식이 “찾았네요~”라는 표정으로 다시 나를 쳐다봄.
고맙다 이자식아.


에사카 치산 여관 로비 (출처는 야후!) 이렇게 보니까 제법 뽀대나보이는데, 사실은 엄청 좁다.

방 열쇠…라면서 얇은 카드 한장과 내일 아침 식권, 간단한 안내서를 받은 뒤
(320호)
3층까지 걸어올라가는 계단을 못찾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감.
거 쬐끄만 여관에서 거추장스럽게 구네.
3층에 도착해 320호 문에 카드키를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넣었다가 뺐다가를 아무리 반복해도
문이 안열림.

어째 이번 여행은 사람을 여러가지로 피곤하게 만드는구만.
(후기 한 편 올리는데 한달씩 걸리는 이유 중 하나)
카드키 설명서를 읽어봐도 내가 잘못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뭐가 잘못된거야… 하며 다시 넣었다 뺐다를 수차례 반복했더니
겨우 열림.
이게 그러니까, 카드키를 넣고 문을 돌리는게 아니라
카드키를 넣었다가 잠시 놔두고 다시 뺐다가 잠시 놔두고 돌려야 열리네.
장난하냐?

숙소에 돌아온 목적.
첫째 휴식.
둘째 휴식.
셋째도 휴식.
일단 신발 양말 벗고 침대에 훌러덩 드러누워서 숨 좀 고른 뒤에
지도 펼쳐서 망가진 오늘 내일의 일정을 정리하기 시작함.
참고로 나는 주위가 조용하면 괜히 불안한 늑대과의 동물인 관계로
들어가자마자 일단 TV부터 틀었음.
뉴스나 쇼프로는 들어도 뭔소린지 모르니까 무조건 스포츠채널.
스모는 봐도 모르니까 스모채널 빼고
돌리다보니 배구경기 중.
일본대표팀에서 많이 보던 오카다 군이 보여서 채널 고정.
대충 들으면서 지도를 보면서 하다보니
이 경기가 지금 일본배구리그 결승전이라나.
대충 넘기기에 경기가 점점 박빙으로 빠져들길래(게다가 결승전이라니까)
지도 접고 아무나 이겨라~ 응원모드 돌입.
사카이 블레이저스라는 팀이 이기고 있는 가운데 산토리(맥주아녀?)팀이 추격하는 상황.
사카이팀이 매치포인트인 상황에서 산토리팀의 왼쪽공격수가 멋진 스파이크로 한점차 추격.
이번 공격만 성공시키면 동점-듀스로 이어지는 순간.
스파이크를 성공시킨 공격수가 후위로 가서 서브를 넣었는데
그 서브가 아웃되면서 게임 종료. 사카이 우승.
일본 카메라 잔인하게도 서브 실수한 선수를 계속 비추더군.
(요즘 MBC ESPN이 야구 중계할 때 자주 하는 짓)
근데 계속 보다보니 사카이팀 감독이 잘생긴게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
한때 일본 배구의 에이스였고 우리나라와 인연도 많던 바로 그 나카가이치.
나카가이치도 이제 늙었구나. 옛날처럼 멋있지도 않고…


우승 후 인터뷰하는 나카가이치 감독(출처는 인터넷 어딘가)

대충 쉰 것 같아서 숙소를 나온 시간 오후 5시.
앞으로 일정은 난바로 가서 저녁 해결하고 난바-도톤보리 야경 구경하고
우메다로 가서 우메다 야경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
우메다는 아침에 하도 헤매놔서 이번에 또 가면 잘 찾아다닐 것 같은 쓸데없는 자신감 충만.

미도스지선 타고 단번에 난바역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30분.
아직 어둑어둑하다기는 좀 뭐하지만 비가 계속 내린 탓인지 칙칙한 분위기.
그래도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에히고~

난바역 주변에 있을 (아침에도 본) 가부키좌를 찾는데 실패하고
(좀 뒤졌으면 설마 못찾았겠냐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사람으로 미어터질려고 하는 도톤보리쪽으로 이동.
오사카 최고의 먹자골목이라더니 과연 관광객들까지 포함해 발디디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도톤보리 입구
도톤보리 강 남안을 따라 형성된 번화가. (대충 청계천이 여길 벤치마킹했다 생각하면 비슷) “쿠이다오레(먹고마시다가망한다)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음식점이 많고 번화한 곳.
도톤보리(道頓堀)라고 써놓은 팻말 뒤에 보이는 큼지막한 게모양의 간판은 도톤보리의 명물/상징인 카니도라꾸(게요리집). 저거, 움직인다.

저녁식사 목표는 스시.
그것도 한번 돈내고 무한정(시간제한없이) 쳐먹을 수 있는 곳.
(남자어른 약 1500엔, 여자어른 약 1200엔 정도로 기억)
도톤보리에서 신사이바시쪽으로 올라가면 류구테이라는 곳이 있는데
한국 관광객들에게 특히 유명하다며 사전조사자료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던 곳.
그래서 일부러 자리 없을까봐 6시도 되기 전에 가려고 찜해둔 곳임.

대충 도톤보리에서 신사이바시 가는 쪽 어디 있다고만 알고 왔기에
주위를 왔다리 갔다리하며 찾아보는 수밖에.
다행히 6시가 되기 전에 찾긴 찾았음.
그런데 명성만큼이나 사람이 문 앞에 어찌나 바글바글한지
줄서서 기다려야 될 것 같아서 포기.
아쉽지만 다른 곳에서 대충 때워야되나… 싶어 주위를 빙빙 돌다보니
가게 안이 살짝 들여다보이는데 빈 자리 허벌 많음.
아니 그럼 저 수많은 문 앞의 인파들은?


회전초밥집 류구테이(용궁정?)

알고보니 그 사람들은 이미 먹고 나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오면 꼭 여기서 저녁을 먹다보니
아직 식사 중인 다른 단체일행을 (비도 오고하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

그런 전차로 류구테이에 무혈입성 성공.
입구에서 돈을 치르니 아가씨가 자리로 안내.
현재 시간 6시. 한 시간 정도는 죽치고 앉아서 먹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30분 정도면 충분히 먹겠다 싶음.
돌돌돌 돌아가는 회전초밥레일에서 눈에 띄는대로 아무거나 집어먹기 시작.
내 왼쪽에(오른쪽은 비어있었음)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쌓인 접시를 보니 한 사람당 다섯 접시 정도 먹은 상태로 보였음.









류구테이의 스시들 (출처는 왠 짱께놈 블로그)

대충 계산해보자. 내가 낸 돈이 원화로 13000원 정도 되는데
한국에서 먹어본 회전초밥이 접시당 1500원~3000원 정도 한다고 치면
열 접시까지는 먹어줘야 일단 본전이라고 치자.
나중에 든 생각인데 혼자가 아니고 일행이 있었으면
같이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하면서 먹으니까 조금 더 오래, 많이 먹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음.
결론만 얘기하면 30분동안 열다섯 접시 먹었음.
자리마다 수도꼭지가 달려있어서 굳이 종업원 부르지 않아도 물은 계속 따라먹을 수도 있었는데
배부를까봐-_- 가급적 물도 아껴서 먹고.

왼쪽에 있던 모녀는 무려 인당 열두접시-_-를 쳐먹더니 자리에서 이탈.
나중에 내 오른쪽을 채워주신 덩치 괜찮은 아저씨는
나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먹으면서 열다섯접시까지 같이 달려주시다가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관계로 얼마나 더 달렸는지는 알 수 없음.

지나치게 든든해진 배를 끌어안고 초밥집을 나와서
도톤보리의 명물들인 식당가를 (밖에서만) 구경하기 시작.


카니도라꾸
건물 한 층 정도의 크기로 집게발을 마구 움직여대는 바람에 오사카/도톤보리의 명물이자 상징이 된 카니도라꾸. 게요리집인데 비쌀 것 같아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도톤보리 거리 안에 분점이 또 있을 정도.


긴류라멘(금룡라면)
이놈 역시 어마어마한 크기의 용모양 간판으로 눈길을 끄는 도톤보리의 명물. 오사카에서 꼭 먹어봐야할 음식 중 하나로 꼽히던데, 글쎄 일본라면 별루라서-_- 간판이 어찌나 크던지 간판찍다가 정작 가게는(밑에 있음) 하나도 안 찍혔음.


쿠이다오레 인형
고깔모자와 안경을 쓰고 북을 치는 인형으로 역시 도톤보리의 상징과도 같은 넘. 이넘하고 같이 사진 찍으려고 줄서는 사람이 식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마침 아무도 옆에 없는 순간을 포착해서.


아카오니
붉은 도깨비라는 이름의 타코야키집. 도톤보리에서 제일 유명한 타코야키집이라고.


창경원
도톤보리를 헤메다가 발견한 한국음식점. 근데 왜 하필 이름을 “창경원”이라고 지었는지. 가슴이 아파서 사진을 찍다가 좀 흔들렸음. (믿으면 골룸)


다요시
딱 보면 아시겠지만, 복어요리 전문점.


문어요리 전문점…으로 추정되는 가게 간판. (얘는 안움직임)



도톤보리강


골목골목 걷다가 그냥 그림이 괜찮을 것 같아서


글리코맨
도톤보리에서 신사이바시로 연결되는 다리 위에서 잘 보이는 글리코 아저씨. 오사카의 명물로 이 사진 한 장 찍어오지 않으면 오사카 갔다왔다는 증명이 안될 정도로 유명한데… 공사중이라서 뭐가 많이 가렸음.




신사이바시
오사카의 대표적인 쇼핑가. 여기 위에는 뚜껑(?)을 덮어놔서 잠시 우산을 접어놓을 수 있었음.

대충 도톤보리-신사이바시 구경을 끝내고 우메다로 이동한 시간이 저녁 8시.
우메다 야경은 생각보다 볼 것 없더군.
우메다 스카이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볼까 다시 생각해보다가
문닫을 시간도 다 되고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포기.
우메다 스카이 빌딩만 조금 더 구경하다가 숙소로 다시 이동.

참, 우메다 스카이 빌딩 안에 있던 극장에서
문근영 박건형이 주연한 <댄서의 순정> 일본개봉찌라시가 있길래 하나 쌔벼옴.
사무실 파티션에 붙여놔야지~

숙소에 오니 아까 보던 종업원들(머리 빠진 자식이나 여직원)은 없고
스포츠머리에 안경을 쓴 왕따처럼 생긴 녀석이 혼자 있다가
320호 키 달라니까 하이! 320호키입니다 라면서 키를 찾아주는데
목소리가 이상한 소프라노톤이라 잠시 질겁.
이 여관은 종업원들이 다 왜 이 모양이야?

방에 들어와 (이번엔 문 가볍게 열어주고)
동경에서는 방에 있는 주전자에 물도 채워놓더니 여기는 그런 것도 없네, 라고 잠시 한탄하다가
디카 밧데리나 충전해야지, 라고 콘센트를 찾아보니
아뿔싸.
일본은 110V니까 돼지코를 가져가야된다고 확인까지 다 해놓고 그걸 안들고왔네.
충전기 무용지물.
이놈의 디카는 일반 밧데리 집어넣으면 순식간에 닳아버리는 웬수같은 놈이라
현재 쓰고있는 밧데리가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버텨주기만 바랄 수밖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붙이고.
아 이번 여행 진짜 꼬일대로 꼬이네.

샤워 시원하게 하고 테이블 위에 있던 유료TV채널안내서(성인용)를 잠시 희희덕거리며 보다가
스포츠 채널 틀어놓고 취침.
원래는 내일이 WBC 4강전 한국vs일본경기이기 때문에
스포츠 뉴스 시간에 뭐 한마디 언급이라도 할까 싶어서 틀어놓은 거였는데
피겨스타인 아사다 마오(당시 우리나라 김연아에게 주니어대회에서 뒤져 2위에 그쳤던) 밀착취재기만 한참 방영하다가
(마오짱 마오짱 하는 거보니 인기 꽤 좋은가 보더군)
NBA 소식 이런 거 나오길래 그냥 TV 켜놓고 잠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