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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SIDH의 신혼여행 넷째날 / 오르세~루브르

2009년 2월 7일

2008년 10월 29일 수요일.

어제 저녁에 한숨 자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잠을 잔 탓인지
이번엔 상당히 일찍… 아침 6시경에 눈을 떴음.
뭐 사방이 다 컴컴하더만.

오늘도 비가 오려나 싶어 창밖을 내다봤는데 비는 오지 않는 것 같지만
당장 비가 쏟아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날씨.
내가 파리에 온 건가 런던에 온 건가.

오늘은 달랑 두군데만 갈 계획인데다 모두 실내라서
추위나 비에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쓰이긴 마찬가지.
어쨌거나 오늘 일정은 오전에 오르세박물관을 섭렵하고
오후에 루브르에 들렀다가 저녁에 어제 못탄 유람선을 잠깐 타주고
밤에 다시 루브르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는 것.
(수요일은 루브르가 야간개장을 하는 날이므로 일부러 이렇게 일정을 잡았음)

이제 조금씩 물리기 시작하는 아침을 꾸역꾸역 먹어치우고
여유작작하게 숙소를 나온 시간이 대충 아침 9시 직전.

오르세박물관에 가기 전에 먼저 루브르박물관 근처를 구경할 생각으로 콩코드광장으로 향했음.
5년전에 파리 왔을 때 콩코드광장이나 루브르궁전 내의 공원이 꽤 볼만했던 거 같아서 그랬는데
아침 일찍이라 그런 건지, 날이 추워서 그런 건지, 음산하기 짝이 없었음.
오늘도 뭔가 시작부터 불길한데.



음산한 콩코드광장


루브르궁전 안에 있는 공원도 스산하긴 마찬가지.


음산한 루브르 공원 내 연못


카루젤개선문

그래도 꿋꿋하게 카루셀 개선문과 루브르 궁전의 유리피라미드까지 구경 다하고
오르세박물관 쪽으로 넘어간 시간이 오전 9시 45분.


강건너에서 바라본 오르세박물관

가던 길에 사진을 찍다가 배터리가 떨어져서
충전지를 꺼내 끼웠는데 충전지에 충전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음.
아 씨 뭔가 이거-_-
오르세박물관에 가면 건전지 정도는 팔지 않을까? 싶었는데 팔지 않음.
하는 수 없이 내 카메라는 접어두고 마누라 카메라로만 사진 찍으며 구경.

그전에 참, 오르세박물관 입장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있었는데
전에는 그냥 들어가는 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유리문으로 된 게이트를 따로 만들어서
(베르사이유도 그러더니 다들 현대화되고 있는 모양)
한참 줄을 섰다가 (15분에서 20분은 줄선 것 같음) 안으로 들어가서 표를 산 뒤 박물관으로 입장하게 되어있음.
여기서 우리는 일반입장권이 아닌 박물관패스를 구입하기로 했음.



오르세박물관 입장 & 매표소
따로 찍은 사진이 없어서 flickr.com에서 퍼왔음. 여긴 별로 줄이 길지 않네.

박물관패스라 하면 파리의 왠만한 관광지는 거의 다 들어가 볼 수 있는 패스인데
기간이 정해져있어서 2일권(30유로), 4일권(45유로), 6일권(60유로) 이렇게 판다고 함.
물론 4일, 6일씩이나 돌아다니면서 구경할 시간도 없고 장소도 없어서
2일권으로 구입.
사실 미술관 투어를 할 것도 아니고 (오르세~루브르가 끝) 굳이 박물관패스를 살 필요는 없었는데
일일이 표 사느라 줄 서기도 귀찮고 (특히 루브르에서)
박물관패스로 개선문 옥상(?)이나 노틀담성당 종탑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하길래
수요일 오르세~루브르, 목요일 개선문~노틀담, 이렇게 4군데만 다녀도 30유로는 살짝 넘는 금액이라
(오르세 입장료 8유로, 루브르 입장료 9유로, 개선문 입장료 8유로, 노틀담성당 종탑 입장료 7.5유로… 합이 32.5유로)
과감하게 박물관패스를 구입하기로 했던 것임.
기분좋게도 다른 입장권 사는 곳은 줄이 길다면 긴데
박물관패스 파는 곳은 대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

짧은 영어로 “뮤지엄패스” “투데이” “투” (박물관패스 2일권 두장이요~)를 남발했더니 용케도 박물관패스 구입에 성공.
요렇게 생겼음.



박물관패스 (앞면 & 뒷면)


박물관 패스 펼쳐서 본 것

박물관 패스로 입장할 수 있는 관광지를 소개하고 간략한 설명까지 해놓았다.

입구에 의자 놓고 앉아있는 흑인에게 그걸 보여줬더니 그냥 들어가라고 손짓.
들어와보니 뭐 5년전에 비해서 별로 달라진 것도 없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은근 여기가 볼 것이 많다는.



오르세박물관 내부

활 쏘는 헤라클레스 (부르델 작)


지옥문 (로댕 작)
로댕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이 포함된 작품. 오르세에 있는 것은 석고모형이고 로댕미술관에는 청동으로 주조된 작품이 있다. 청동으로 만든 작품이 총 7개인데 우리나라에도 하나 있단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니 한쪽 코너에 왠 피카소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줄이 한참임.
아유 뭐 저런 걸 줄서서 보냐…하고 지나쳤다가
다시 한바퀴 돌고 와보니 줄이 좀 줄어들었길래
낼름 줄섰음.
줄 서있는데 우리 뒤쪽에 왠 한국인 무리들이 웅성웅성 떠들고 있음.
가만히 옅들어보니 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애가 계속 뭐라고 설명을 하고 있고
아줌마와 그 딸들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그 설명을 열심히 주워듣는 중.
아마 현지 유학생을 가이드로 데려온게 아닌가? 싶은.
(현지 미대 재학생은 박물관 입장이 공짜일테니…)
드문드문 많이 옅들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그림은 값으로 환산하는 게 아니다”라는 지극히 미술학도다운 멘트 하나.
아마 피카소의 초기 스케치들을 보면서 했던 이야기 같은데
그러면서 뒤에 “그래도 굳이 값을 매기면 500만원이 넘는 금액” 이랬던 거 같기도 하고…-_-;;


만종 (밀레 작)


이삭줍기 (밀레 작)


풀밭 위의 점심식사 (마네 작)


피리부는 소년 (마네 작)


물랭 드 라 갈레트 (르누아르 작)


피아노 앞의 소녀 (르누아르 작)


자화상 (고흐 작)


정오 – 낮잠 (고흐 작)


아를의 반 고흐의 방 (고흐 작)


타히티의 여인들 (고갱 작)


샘 (앵그르 작)

밀레도 보고 고흐도 보고 고갱도 보고 르느와르도 보고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도 많이 지나고 바깥도 좀 따뜻해진 것 같고
하여 오르세박물관을 그만 나선 시간이 오후 1시경.
신혼여행의 피로가 여전히 안풀렸는지 이제 마누라뿐만이 아니라 나도 허리가 아프고 삭신이 쑤시기 시작.
그래도 오늘 루브르는 꼭 봐야된다는 일념으로 전진.

그 전에 물론 점심을 먹어야겠지.
아울러 카메라에 넣을 건전지도 사야되고.
어디 적당한 곳이 없나 루브르박물관 뒤편을 헤매는데
여전히 마누라는 빵은 질린다 그러고
이상하게 눈에 띄는 건 한국식당(어제 한국식당 안갔으면 들렀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일본라멘집.
마누라가 가져온 정보에 의거해 찾은 식당은 콧배기도 안보이고
아 뭔가 좀 프랑스스러운 그런 음식점 없나요? 하고 찾아다녀봐도 도대체 있어야 말이지.
마누라는 내가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지 까다롭게 고른다고 생각했는지 말은 안해도 잔뜩 짜증난 표정.
(피곤하기도 했을테고)
돌아다니던 와중에 건전지를 팔법한 구멍가게가 보여서 건전지는 일단 샀는데
그 와중에 얼마나 돌아다녔던지 루브르에서 꽤 멀리 떨어져있는 오페라하우스가 저멀리 보이기 시작할 정도.
아무래도 안되겠다. 정말 아무거나 먹자.
하여 닥치고 들어간 곳이 왠 이탈리안레스토랑.
…이라기보단 그냥 시끌벅적한 피자&파스타집.
싸구려집이라 그런지 파스타 하나에 12유로에서 15유로 정도.
그냥 싸게 12유로짜리 시켜서 먹었음.
사람이 북적북적해서 그런지 음식도 빨리 안나오고
우리도 피곤하던 차에 앉은 김에 북북 개기다 나왔음.

밥만 먹었지 계속 피곤하고 짜증난 상태인 마누라를 끌고 루브르박물관 도착한 시간이 2시 30분 정도.
박물관패스가 있으니까 입장권 사려고 줄설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하더라.



루브르박물관

그런데 아무래도 마누라 상태가 그냥 피곤하거나 짜증내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도 모처럼 온 곳인데 다른 건 몰라도 모나리자하고 밀로의 비너스는 보고가야 될 거 같아서
일단 내가 아는 최단코스로 끌고 다녔음.
(그래도 멀더라)
다행히 루브르나 오르세나 한국어 안내도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음.


승리의 여신 니케


모나리자 (다빈치 작)


나폴레옹 1세 대관식 (다비드 작)


밀로의 비너스


함무라비 법전




기타 등등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가 아무래도 안되겠길래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했더니 마누라가 극구반대.
다시 못올 곳인데 볼 건 다 보고 가야된다고.
그러면 대충 핵심적인 건 다 봤으니까 나폴레옹3세 아파트 쪽에 가보기로 하고 이동.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

다시 로비로 나와서 이제 그만 갈까? 했더니
여전히 마누라는 나머지도 다 보고 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김.
얼굴은 이미 맛이 간 표정인데 뭐랄까 본전생각이 난 거 같다고 할까.
일단은 좀 쉬었다가 움직이자고 어디 앉을만한 데를 찾는데
로비에 의자는 전혀 없는데 구석탱이에 왠 큼지막한 돌무데기가 드문드문 있고
거기에 나이드신-_- 분들이 우르르 앉아계시길래
일단 노약자석이라도 환자는 앉혀야겠다는 마음으로 마누라를 끌고가서 앉혔음.
우리를 본 서양할머니들이 조금씩 자리를 내준 덕분에 덤으로 나까지 옆에 앉고.
마누라는 앉자마자 고개를 떨구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예외없다. 낮 3시~4시만 되면 정신못차리는 시차부적응)
어찌나 심각하게 졸아대는지 주변에 있는 서양할머니들이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볼 정도.
그러구 한 십여 분 있다가 마침내 마누라가 GG 선언.
어제처럼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고.

다 못보고 간다고 맘아파할까봐 왠만한 건 다 봤으니 걱정말라고 위로해주면서
어떻게저떻게 마누라 끌고 숙소로 귀환 성공.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5시 40분이던가.




나오는 길에 아쉬워서 몇 장 찍음

역시 마누라는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쓰러졌는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단순피로는 아니고 몸살증세도 좀 있는 것 같아서
혼자 밖으로 나와서 약국을 찾긴 찾았는데
뭐가 감기약이고 뭐가 몸살약인가 -_-;;;
결국 빈손으로 나와서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가
나도 잠깐 눈이나 붙이자고 옷입은 그대로 옆에 누웠음.

문제는 그 상태에서 아무도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