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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시청] 템즈강가의 엄지손가락

2007년 1월 26일



어떤 건물인가?

유럽의 이름있는 도시들 – 파리, 로마, 런던, 베를린 등 – 을 여행할 때는, 그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기품있는 건물들에 대한 기대를 아무래도 하게 될 게다. 그런데 가끔 그 도시의 한복판에서 기대를 와장창 무너뜨리는 건물-같지도 않은-을 만나게 될 때가 있으니, 예를 들자면 먼저 소개했던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의 유리피라미드라거나, 지금 소개하려는 런던시청 같은 것들 말이다.

유리 피라미드가 루브르박물관 앞에 버티고 서있다면, 런던시청은 타워브리지(보통 런던브리지라고 잘못 불리는) 옆, 템즈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얼핏 보면 저게 도대체 뭐하는 자식인가 싶을 정도로 괴이하게 생긴 이 건물은, 2002년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설계로 지어졌다. 이미 서두에서 밝혔듯, 이 건물은 분명 <런던시청사>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런던시민”들이 이 건물이 호텔이려니, 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사무용건물로는, 더군다나 관공서용 건물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외모를 갖춘 놈이 되겠다. 그렇다보니 불리는 별칭도 다스베이더의 헬멧이니, 쥐며느리니, 크로와상이니, 유리달걀이니 하는 식이다.

이 건물이 어쩌다 이렇게 독특한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는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이놈을 좀더 후벼보자. 약 45m 높이의 10층 건물인 런던시청은 템즈강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타워브리지, 타워 오브 런던, 사우스뱅크 지역을 연결하는 관광거점 역할도 하고 있는데, 특히 템즈 강변을 따라 산책/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높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전면유리이기 때문에 템즈강을 포함한 주변 경관을 볼 수도 있고,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등장하는 (관광객용) 나선형 통로/계단은 건물의 경사에 따라서 나선의 축이 기우는 등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계단의 맨 아래에는 시의회 의사당이 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반인/관광객들은 창밖으로는 템즈강과 타워브리지를, 안으로는 시청 직원들의 근무하는 모습을, 아래로는 의원들의 회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거다. 일반인의 경우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공개된 일부 시설의 관람이 허용된다.

어떻게 지어졌나?

자, 이제 런던시청이 어쩌다 저 꼴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할 차례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런던시청은 설계자인 노먼 포스터가 막말로 좀 튈라고, 지깐에는 저게 좀 멋져보인다 싶어서 휙휙 그려갈긴 건물이 아니다. 런던시청의 조금은 희안한 형태는, 철저하게 친환경건물을 지향하다가 나온 결과물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건축가가 원했던 것은 시 행정의 투명성에 대한 상징 같은 것이었고, 현실적으로는 템즈강에 대한 조망권 확보와 에너지 사용/비용에 대한 효율을 높이는 것 등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목표 하에서 초기에 강가의 자갈 모양이 제안되었고, 많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쳐 건물이 남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구(球)형의 건물은 육면체형태의 건물보다 표면적을 약 25% 줄일 수 있었고, 건물을 남쪽으로 기울이면서 직접광선이 아닌 자연적으로 그늘을 지게 했다. 또한 모든 창문을 통해 자연적인 통풍/환기가 가능하는 등의 고려를 거듭한 덕분에, 런던시청은 동일 크기의 건물에서 통상 소비하는 에너지의 1/4 수준을 소비하게 되었다.

잠깐 이 건물의 설계자인 노먼 포스터를 짚어보면,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건축가로 현재 런던의 현대건축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런던시청 이후 2004년에 다시 이 사람의 손에 의해 탄생한 <30 St Mary Axe Building> 같은 경우는, 런던시청이 가져온 충격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정도로 독특함을 자랑한다. (기본적인 형태는 런던시청과 사뭇 닮아있다. 에너지 절약효과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원래 건물명 대신 “거킨(오이지)”, “총탄”, “미사일”, “시가”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으니 형태가 어떠할지 대략 상상해보라. (아쉽지만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시대의 한마디

런던시청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한 토막. 대학교 4학년 때 졸업작품전을 했는데, 같은 지도교수님 아래 팀 중에서 서울시청 리노베이션을 테마로 삼은 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서울시청 신축모형을 전시해놓은 걸 왠 외국인 무리가 지나가며 보다가 멈춰서서 지들끼리 막 토론을 벌이는게 아닌가. 그 중에 한국인 같은 사람이 끼어있어서 궁금해 물어봤더니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현직 건축가라더라. 작품에서 힘이 느껴진다면서, 작품을 담당했던 친구들한테 자기 명함을 주고 갔다. “언제든 꼭 연락하라”는 당부와 함께. 명함을 받은 두 놈 중 한 명은 지금 공무원하고 있고 다른 한 놈은 감평사시험인지 뭔지를 준비한다던가.

런던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런 도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시청사를 저렇게 생뚱맞은 이미지로 만들어버리는 건 보통 배짱이 아니다. 여러번 인용한 말이지만, 역시 건축쟁이들은 말빨이 좋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