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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가 바다에 몸 던져 물거품이 됐다고?

2011년 4월 8일

인어공주가 바다에 몸 던져 물거품 됐다고? (중앙일보)

기사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들어 글을 써보는데…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계림문고판, 계몽사판, 금성출판사판(참, 쓸데없이 많이도 읽었다) 모두 인어공주가 “공기의 정령(요정)”이 되었다는 결말을 제대로 밝히고 있었는데

기사에서는 마치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결말로 왜곡되어 번역된 책이 넘쳐나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

물론 요즘 들어 번역된 책들은 모두 결말을 왜곡해서 나왔다…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요즘 책은 본 적 없으니)
문제는 “요즘 책을 본 아이들”이 아니라 “옛날 책을 보고 자란 우리 같은 기성세대”들도 다 물거품이 됐다고 기억하고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아닌가.

내가 보기에 핵심은 두 가지인데

첫번째는 인어공주를 책으로 본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 (봤어도 기억을 잘 못하거나)
인어공주 이야기 자체가 워낙 유명하니까
읽지 않은 사람도 마치 읽은 것처럼 세세하게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인어공주 결말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물거품”이란 결말이 널리 퍼져나가다보니
다들 “인어공주가 결국엔 물거품이 됐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
거기엔 미디어(방송이던 신문이던)의 역할도 지대해서
“인어공주는 인간을 사랑한 인어공주가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고 물거품이 돼버리는 슬픈 이야기”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일이 허다하는 점.

여기서 두번째 핵심이
윗 기사에서 기자가 밝힌 안데르센의 의도와는 달리
일반 대중들이 “인어공주가 사랑에 실패하고 인간이 되지 못했다”라는 결말에 집착해서
그게 물거품이던 공기의 요정이던 그건 중요하지 않고
하여튼 왕자는 뺏기고 인간이 못된 거잖아! 라는 식으로 받아들여버렸다는 거.
결국 이야기의 결말을 “사랑의 완성” 수준으로 기대해온 독자들은
결국 “사랑의 실패”라는 결말을 비극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 담에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든 공기의 요정이 되든 바다속 용왕이 되든
그건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가 됐다는 거.

그렇다보니 바른 결말을 읽어서 알고 있는 나도
누가 물어보면 “어, 인어공주가 결국엔 바다에 빠져 물거품이 되지”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80% 이상.

마치 미운오리새끼가 나중에 백조가 되든지 독수리가 되든지 뭐가 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못생긴 오리새끼에서 더 아름답고 큰 새로 환골탈태했다는 스토리가 중요한 것처럼
인어공주는 사랑에 실패하고 인간이 못됐다…라는 게 더 중요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

다만 위 기사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인어공주가 인간이 못된 것이 결국 비극일까?”라는 이야기라면
제목을 “인어공주의 결말은 정말 비극일까?”라고 쓰는게 더 나았을 거라는 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말을 “물거품”으로 알고 있으니 이야기를 거기서부터 풀어가려다가 제목이 이상해진 듯.

하여 결론은

다 아는 이야기라도 책으로 보는 건 다르다. 책 좀 읽자.

나 같은 경우도 어렸을 때 <삼총사>를 소년생활문고판으로 봤고 영화로도 수 편 봤는데
어느날 서점에 가보니 <삼총사> 완역본이 있길래 호기심에 다시 읽어보다가
밀라디가 아토스의 전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기겁을 한 기억이 있다는 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우리에게 어린이용 책을 사주시면서
나중에 크면 원서나 완역본으로 다시 읽어보라고 하시던 말씀의 의미를 그때서야 알게됐다나 뭐라나.

여전히 인어공주가 공기의 요정이 된 게 무에 그리 중요하냐 싶은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