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일

할머니.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모습이기에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려봤습니다.

2월4일, 병원에 계실 때 소영이가 마지막으로 찍어드린 사진이네요.
몸은 오랜 병마에 시달려 메말라버리셨지만
할머니다운 눈빛만큼은 여전하셨던 것 같아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뵙지도 못한
불효막심한 손자는 그래도 마음이 놓입니다.

당신이 아파 누워계시면서도
오히려 일찍 태어나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 증손녀를 걱정하시고
칠삭둥이는 오히려 건강하다니 잘 될 거라며 저희를 위로하셨는데
정작 손녀가 인큐베이터를 나오고, 인공호흡기도 뗐다는 소식은 못듣고 떠나셨어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현준이, 소윤이 모두 지켜보고 계시겠지요.

언젠가 어느 작가가 쓴 글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이제 자기가 뭘 해도 자랑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이 사십 다 되도록 장가도 못갈 뻔 하다가
이제 겨우 사람 구실 조금 하고 있는 작은손자는
앞으로 무슨 대성공을 거둔다 한들
동네방네 우리 손자가 해냈다며 자랑해주실 할머니가 없네요.
오메 내 새끼 장하다며 머리 쓰다듬어주실 할머니가 안계시다는건
과장 아니고, 인생의 목표 한 부분이 없어져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머리는 더 똑똑한디…”하셨던 할머니께
그럼요, 이렇게 작은손자가 똑똑합니다, 라고 살아생전 보여드릴 기회가 이제 없어졌으니까요.

60년을 홀로 사시면서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셨는데도
언제나 당당하고 기운찬 모습이셨기에
어리석은 손자는 할머니가 90살 100살 마냥 사실 줄만 알았습니다.

3일장 내내 눈물이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워 실감도 나지 않았고
빈소를 지키느라 입관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화장장에서 할머니의 유골함을 제가 받아들고 가는데
밖에 비가 내리길래 따뜻하게 꼭 안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아 정말인가보다. 할머니가 이렇게 가시나보다.
그러면서 울컥했습니다.
그래도 울다가 유골함을 놓치는 대형사고를 칠까봐 눈물은 꾹 참았습니다.
차갑고 좁은 납골당에 할머니를 두고 오는게 너무 안타까워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는 문만 괜히 쓰다듬다가 돌아왔네요.

여든여섯.
남들이 보기엔 호상이네 뭐네 할지 몰라도
정말 어이없고 아쉽습니다.
더도 아니고, 딱 한 달만 더 사셨어도,
큰손자 책 나온 것도 보시고,
소윤이 퇴원하는 것도 보시고,
큰손자 작은손자가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릴 수 있었을텐데…

다시는 볼 수 없는 할머니지만 정말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할머니.

작은 손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