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하게 촌스러운 영화를 옹기종기 모여서 보고 있는 사람들. 아니나다를까 늙수그레하고 초라해보이는 노인네들이다. TV 화면에 등장하는 촌티 짱짱한 흑백영화 속, “Cheek To Cheek” 이라는 음악에 맞춰 즐거운 표정으로 춤추는 남녀의 모습으로도 모자라, 느닷없이 눈물을 펑펑 쏟는 치매끼있는 할아버지가 등장하기까지 하면 이 신파조 영화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오오 하느님,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그러나, 이 영화가 <그린 마일>의 도입부분이기 때문에 얘기가 달라진다. 난데없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쏟은 남자가 털어놓은 그 눈물의 사연이 바로 <그린 마일>의 메인 스토리니까. 그렇게 영화는 TV화면 속의 촌스러운 영화, <Top Hat>이 개봉되었던 해인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솔직히 내가 느끼기에 <그린 마일>과 <Top Hat>의 연관성은 그다지 없어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외국사람들이 “나 잡아봐아요오~” 가 등장하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보며 눈물짓는 우리나라 중년들의 모습을 못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Top Hat>이 어떤 영화인가. 1930, 40년대 미국 영화의 중흥기 한 켠에서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슈퍼스타, 탭댄스의 귀재, 탁월한 무용수이면서 뮤지컬 영화의 흥행보증수표로 군림했던 바로 그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의 영화 아닌가. (“Cheek To Cheek” 은 그가 직접 부른 노래기도 하다) 여기서 프레드 아스테어란 이름을 첨 들어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장면에서 우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1935년의 추억” 이라는 것 외에 이 노래와 <그린 마일>의 연관성에 관한 것은 좀 억지스럽다. (가사의 첫머리가 “나는 천국에 있어요..”라고 시작되기 때문에 연관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가능성은 있는 것 같지만 확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린 마일>을 통해서 짧게나마 명배우 프레드 아스테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나 자신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흑백으로 나온 영화라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재미없고, 엄청난 지루함을 안겨줄 거라는 두려움을 갖는 신세대 영화 팬들이 프레드 아스테어를 접할 길은 현재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기는 프레드 아스테어의 “현란한” 탭댄싱을 보여줘도 칙칙한 배경그림 때문에 춤조차도 촌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비쥬얼에 매혹당한” 신세대의 경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도 나이로는 신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누룽지의 구수함을 모르고 콜라의 톡 쏘는 맛에만 얽매여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엷은 안타까움이 번지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
많은 관객들이 칙칙하고 촌스럽게 느꼈을 <그린 마일>의 도입부. 그 장면에 숨어있는 “1935년의 추억” 과 “프레드 아스테어”를 찾아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장면에서 질질 짜는 할아버지에 대해 주책 맞다고, 자신과는 굉장히 먼 일이란 생각을 하진 않았으면 한다는 것…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