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몸담고 있는 영화동호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비디오 상영을 하곤 한다. 대개 상영작으로 선정되는 것들은 아직 국내 개봉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할 것 같지도 않은 작품이거나 옛날에 개봉해서 이제는 비디오로나 감상해야되는 그런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이와 같은 조건에 걸려들어서 작년 봄엔가 상영했던 작품이, 오 이런, <기묘한 이야기>였다. 그것도 한글자막도 아닌 영어자막으로 된… -_-;;
내용이야 모자란 영어/일어실력 총동원해서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었지만, 꽤 재미있었다. 상영장소에 다음 시간이 예약되어있어서 총 4편 중 마지막 한 편은 보지 못했지만, <설산> <사무라이와 핸드폰> <체스> 세 에피소드가 모두 색다른 맛이 있는 옴니버스 영화였더랬다. <설산>은 학교 다닐 적에 들었던 그 이야기, 몽유병에 걸린 남자가 밤마다 자신이 죽여서 묻은 시체를 눈덮인 산에서 다시 파와 자신의 옆에 뉘어놓는 이야기의 색다른 각색이었고, <사무라이와 핸드폰>은 가부키극으로 유명한 충신장사건의 고약한 패러디면서 역사의 이면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었다. (충신장사건이 무엇이냐 하면, 내용이야 영화에서도 대충 설명되니까 넘어가고,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사육신 이야기와 비슷할 정도로 충절/의리의 표상처럼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걸 이따위^^;로 패러디해놨으니) <체스>는 처음엔 그저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실제로 죽어나가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주인공에게 체스를 강요하는 대목에서는 호러/스릴러물과 비슷한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였다. 마지막 편인 <결혼 가상체험>은 뭐 로맨스물이라길래 못봤지만 별로 아쉽지 않았었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 영화가 왠일로 국내에 개봉을 했더랬다.-_-; 야 이것도 개봉하는구나 하고 신문기사를 포함한 이런저런 홍보물을 살펴보다보니, 월렐레? 분명히 내 기억으로는 4편짜리 옴니버스 영화였는데, 한결같이 3편짜리 옴니버스 영화로 소개되고 있었다. 내가 본 게 3편밖에 안된다고 극장에서도 3편만 보여주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아항, 3번째 이야기였던 <체스>가 빠져있었다. 뭐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훌륭하신 영화배급업자분들께서 극장에서 한 회 상영 더 해볼라고 30분짜리 에피소드 하나 홀라당 들어내신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나름대로 홍보하기 좋게 공포/코미디/로맨틱을 남기고 스릴러를 제외했으니 지들 딴에는 머리도 좀 썼다 싶더라. 게다가 더욱 당연한 말이지만 이 영화가 원래 4편짜리인데 한 편 들어먹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원래 TV물이고 방영된 편수만 수백 수천 편인데 그 중에 3편만 골랐다고 써놓은 걸 보니, 야 누가 들으면 우리나라 수입업자가 여러 편 중에서 특별히 엄선해서 세 편을 골라 개봉하는 건 줄 알겠더라. (생각해보니, 그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네)
글쎄, 신문이라는 것들이 대충 돈 발라먹고 홍보성 기사나 날려주는게 일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워째 신문에서 “이 영화는 원래 4편인데 1편을 썰어냈다~”라는 명백한 진실을 하나같이 외면했는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몰라서 그랬을 가능성에도 약간 표를 던진다. 우리나라 영화 기자라는 것들이…) 옴니버스 영화라는 특성상 에피소드 하나를 덜어낸다고 해서 전체 내용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네편짜리로 개봉했다고해서 우리나라에서 세편으로 개봉하면 벼락맞을 일도 아니겠지만, 영화와 직접적이지 않은 이상한 변두리 요소들 때문에 상영시간 짤려나가고, 에피소드 하나가 몽창 빠져버리고, 그러고도 서로 입을 맞춘 듯 전혀 그런 사실이 없는 것처럼 신문이건 방송이건 써갈겨대고 말해대는 걸 보면, 뭐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선 너무 쉽게, 당연하게 벌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의문을 넘어서 분노로까지 승화되더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