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기차 안에서 벌어진 로맨스로는 아마 최고로 꼽히는 영화겠죠. 영화 자체가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남녀의 하룻밤 이야기”니까… 물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는 아닙니다만 <화이트>에서 괜찮게 봤던 줄리 델피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어필하게 된 작품이라서 기억에는 남는 편입니다. (근데 그후로 더이상 어필한 영화가 없군요)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혼자 하는 기차 여행 도중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의 따뜻한 사랑… 확실히 소녀 취향이긴 한데, 잘 만든 건 잘 만든 거라 말이죠.
2. 초록물고기 (1997)
첫번째 영화를 워낙 상투적으로 해놔서 두번째부터 확 틀어버릴랍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기차 안에서의 만남은 나쁘게 말하면 주인공을 파멸로 몰아가게 되는 만남이죠… 한석규와 심혜진이 우연히 기차에서 마주치고, 그녀의 스카프를 우연히 줍게 되고, 다시 그녀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더라면… 생각해보면 기차 안의 우연한 만남에서부터 계속 되는 우연의 연속에도 별로 이 영화를 에이, 상투적이네, 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 진정한 감독의 힘이 아니었을런지.
3.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이 영화를 보고난 감상을 엄밀히 말하면 속았다,고 해야겠죠.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기차를 바꿔탄 짐 캐리가 그 기차에서 우연히 케이트 윈슬렛을 만나고, 연인이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는가 싶더니… 그 뒤에 숨어있는 엄청난(?) 비밀. 전형적인 기차 안 로맨스의 길을 걷는 줄 알았는데 뒤통수 제대로 쳐주더군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라도 이렇게만 만들어주면 내가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마는… 왜들 그리 사랑하면 죽고 못사는지들 말입니다. 에?
4. 생활의 발견 (2002)
영화상으로는 두번째 에피소드가 되는, 김상경과 추상미의 만남이 기차에서 이뤄지죠. 처음엔 (무명)배우인 김상경을 알아본 추상미의 접근으로, 그 뒤엔 김상경의 의도적인 추근거림으로… 전체적으로 홍상수 영화에는 불만이 많습니다만 이런 사소한 만남에서 감독이 고집스럽게 보여주는 감정의 디테일은 정말 눈물빠지게 웃으며 박수쳐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 그 자체입니다. 어쩌면 기차 안 로맨스의 가장 통속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비포 선라이즈>보다 앞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5. 전차남 電車男 (2005)
“누군가를 때려눕히고 여성을 차지하는” 내용도 상당히 고전적인 스타일이죠. 그게 지하철과 만나면 “지하철에서 여성에게 추근대는 치한”이라는 정확한 목표가 설정됩니다. 어찌 보면 언제 갈 수 있을지 기약없는 기차여행 로맨스보단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있는 지하철 치한 격투 로맨스가 백배는 더 현실적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다섯번째, 크트머리로 소개하는 이유는 우선 기차가 아니고 지하철이라는 점에서, 다음으로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는 못하고 드라마만 봤다는 점에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