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1일

사실 어제 밤 9시 좀 넘어서인가… 인터넷에 속보로 남대문에 불났다는 소식을 보긴 봤는데

아 남대문에 불났으면 알아서 금방 끄겠지… 소방차들도 다 출동했다는구먼… 하면서 관심 일찍 껐다.

TV도 관련 속보 같은 게 나올 리가 없는 KBS스포츠케이블로 이형택 데이비스컵 테니스 경기 보고 있었으니 뭐 소식 깜깜.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정말로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아 뭐 불탔다고 해도 좀 타고 말았겠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조간신문 1면을 보니 이건 뭐 남아난 것이 없네.
소방차가 다섯 시간을 물을 뿌렸다던데… 기름 뿌렸나?

뭐 워낙 이런 사건이 자주-_- 발생하는 나라이다보니
이번 화재사건을 놓고도 또 책임공방에 노무현이 잘못했네 이명박이 잘못했네 개싸움까지 벌어졌던데
나는 뭐든지 일 터지고 나서 책임 따지는 게 제일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회사에서도 무슨 일 하나 잘못 되면 부서별 개인별로 변명거리부터 찾고… 아 나 그 꼴 보기 싫어서 그냥 내가 잘못 했으니까 됐다고 넘어가고 그러는 편임)

물론, 뭐, 1차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방화범(방화가 맞다면)이야 당연히 잡아서 족쳐야겠지만,

줄줄이 뒤를 이어서 외주경비업체부터 시작해서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 관할 구청 공무원, 문화재청(장), 거기다 예전 서울시장까지… 그걸 일일이 끄집어내서 누가 책임이 가장 크네 작네… 이러는 거 참 영양가 없어보인다 이거지.

나는 그냥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만반의 대비나 잘했으면 좋겠다.
별로 그래 오지 못했던 나라라서 별로 기대는 안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보면 600년 역사의 한 축이 없어진 이 마당에
서로 지가 잘났네 니나 못났네 쌈박질이나 하고 그걸 옆에선 부추기고 뜯어말리고
그냥 그런 꼬라지 보는게 귀찮고 지겨워서 그런다.
어떻게 매번 똑같냐, 이놈의 나라는.

아침에는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야 내가 오래 산 모양이다 남대문이 무너지는 것도 다 보고”
이랬었다니까.
뭔가 긴 역사의 마지막을 내 눈으로 목격한 기분이랄까. 하여튼 그런.

옛날 대학교 다닐 때 버스 타고 동대문 옆은 뻔질나게 지나다녔지만
남대문하고는 이상하게 별로 인연이 없어서
내 눈으로 남대문을 본 것이 다섯번은 되려나? 하여튼 별로 없다.
개방했다고 했을 때도 별로 호기심도 안생기고…

그런데 막상 이제 “없어졌다”고 생각이 드니
명색이 서울시민 토박이인데, 남대문에 얽힌 추억 하나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하더라.
(그래서 오늘 어떤 아주머니가 기왓장 훔쳐가다가 걸렸는지도 모르겠다만)

듣자하니 3년 정도면 복원은 할 수 있다고 하더라.
뭐 지금 남대문도 한국전쟁 이후에 상당히 많이 복원한 것이긴 하지만
원형 자체가 날라가버린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복원해버린 남대문이 진짜 남대문이냐, 국보의 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남을 거 같다.
글쎄, 당장은 좀 어색하고 그럴지 몰라도, 이것도 다시 100년 200년 역사를 거듭해 흘러간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불국사나 경복궁이나 다 불타버린 거 다시 지은 거잖아. 다시 짓고 나서 다시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렇지.

그렇다고 해도 국보로서의 가치는 없어진다고 봐야 맞을 거 같다.
그게 꼭 국보1호 이런 상징성 때문이 아니라,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600년이라는 역사를 태워 없애버린 거니까.

원래는 9.11 테러 터졌을 때 세계무역센터 글을 건축이야기 섹션에 썼던 것처럼
남대문 이야기도 자료 다시 모아서 건축이야기에 좀 구체적으로 써볼까 했는데
뭐 여기저기서 워낙 남대문 관련 글이 쏟아지길래, 그냥 이렇게 간단한 소회나 쓰고 만다.

아, 다들 숭례문이라고 높여들 부르시는데 굳이 남대문 남대문 쓰고 있는 건
일제시대에 숭례문을 깎아내리려고 남대문이라고 불렀다는 헛소문을 믿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반발심 조금,
옛날부터(당연히 조선시대부터) 서민들이 편하게 부르던 이름인 남대문이 그냥 나도 편하고 입에 붙어서…
라는 이유가 되겠다.

주말에나 현장에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인
(가봤자 펜스 쳐놔서 볼 것도 없겠지만)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