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안경을 썼던 나이가 일곱살,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안경을 쓴 사람은 (특히 어린아이는 매우) “드문” 편이었고, 좀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병자 취급을 받을 정도였었다. 나만 해도, 안경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척분들에게 과도한 관심(수지침을 배우시던 할아버지는 침을 놓아서 손자의 눈병(?)을 고쳐주겠다고 엄숙히 선언하기까지 하셨더랬다)을, 학교에 다니면서는 안경과 관련한 각종 놀림을 고스란히 감수해야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낮은 시력은 아마 좌우 모두 0.2였을 것이다. 국민학교 2학년때였던가 그랬는데, 신기한 점은 그후로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하고 시력을 잴 때마다 시력이 0.1씩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내 또래 아이들과 내 사촌들이 하나둘 안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히려 안경을 벗고 다니는 날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체육시간에 불편해서 벗었다가 하루종일 안쓰고 수업받는 등…)
하지만 안경점에서는 내 눈이 근시가 아닌 난시이므로 시력과 상관없이 안경을 써야한다면서, 시력이 좋아지는 것에 대해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더랬다. 나 스스로도 시력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눈을 조금 찡그려서 촛점을 맞춰야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이었으므로 그 말에 대략 수긍하고 그냥 안경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공부할 때나 시험볼 때만 안경을 쓰고 평상시에는 안경을 쓰지 않기 시작했고,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아예 안경을 쓰지 않았다. (당시 시력은 1.0)
지금도 우리집 어느 구석에는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쓰던 안경(안경알이 엄청나게 크다)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써보면 촛점도 맞지 않고 폼도 안나지만 한창 쓰고다닐 당시에는 불편하지도 않았고 꽤 멋있는 디자인의 안경테였었는데…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상당수 안경을 쓰고, 성인들은 거의 안경 아니면 렌즈를 끼고 다니는 세상에 컴퓨터를 하루종일 들여다보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안경이나 렌즈는 커녕 1.0의 시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 무척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우리 사촌들 중 옛날에는 나 혼자 안경을 썼지만, 지금은 나 혼자 안경을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