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물인가?
며칠 전 대학로에 나갈 일이 생긴 김에 디카를 챙겨들고 나섰다. 학부 시절, 필름값이 아까와서 마구마구 찍어대지는 못했지만 건물사진 찍을 일이 생기면 늘상 대학로로 카메라 짊어지고 나서곤 했었는데, 그때의 추억이 생각난 탓이었을라나. 당시 대학로에서 우리 같은 학부생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건물은, 다름아닌 고전적인 대학로에서 파격적인 현대건축으로 평가받던 JS빌딩이었다.
대학로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좋겠다. 대학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마도 80년대 중반인 것 같은데, 이곳이 원래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있던 자리(지금의 마로니에공원)였고 그때부터 서울대생들이 술먹고 놀던 곳(?)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었던 탓에 붙은 이름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것은 1975년) 그후 마로니에공원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예술단체들이 이 거리를 점령하면서 지금은 흔히들 문화예술공연(주로 연극)의 메카, 본거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 당시 대학로로 건축답사를 오면 주로 카메라에 담기는 건물들은 문예진흥원 극장/미술관(지금은 아르코극장/미술관으로 불린다), 샘터사옥 등 소위 문화/예술시설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흐름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 전형적인 상업시설인 JS빌딩이었던 거다.
비단 상업시설이라는 것 말고도 JS빌딩이 대학로에서 남달랐던 부분이 또 있었다. 마로니에공원을 가본 사람이라면 그 주변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유난히 많다 싶은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거다. 앞서도 말한 아르코미술관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 건물이 바로 대한민국 현대건축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김수근의 작품이다. 그 외에도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이 대학로에만 5개나 되고, 다른 건축가들도 거장이 조성해놓은(?)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다보니 대충 비슷비슷한 컨셉으로 건물을 지어가면서 붉은 벽돌투성이가 되어버렸던 거다. 뭐,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에서 “…투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니다. 어쨌든 온통 붉은벽돌건물 일색이던 대학로에, 난데없이 철골과 유리,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현대건축의 오브제를 가감없이 드러내버린 건축물이 떡 생겨나버린 거다. 당시 대학로 분위기에서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예술로 대표되던 곳에 상륙한 전형적인 상업시설, 붉은벽돌로 대표되는 색채와 재료에 대한 강한 거부. 이것이 대학로의 JS빌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머리에 든 것은 없어도 뭔가 기성세대와 다른 것이라면 일단 환호하고 보는 학부 1,2학년들에게 이렇게 감동하기 좋은 소재는 없다. JS빌딩이 준공된 것이 1990년, 내가 대학에 들어간 것이 1991년이니까 딱 우리 또래가 감동받기 좋은 건물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단지 “파격적”이라는 단어만으로 JS빌딩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다. (그게 큰 이유기는 하다) 디테일을 생략하면서 외관을 기하학적 형태로 경쾌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점, 유리와 콘크리트, 철골의 재료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면서 만들어내는 공간이 학부생들 눈에 기똥차보인 것도 한 몫 했다. 그 극적 효과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 건물의 북쪽에 위치한 콘크리트 매스(mass)로, 당시 학부생들 설계과제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기도 했었다.
어떻게 지어졌나?
뭐 대학로에 상가건물 짓고 싶은 어떤 사람이 의뢰해서 지었겠지. 설계자는 조건영(기산건축 소장) 씨이고 그의 대표작으로는 한겨레신문사 사옥, X 플러스빌딩, 서울국악예술고 등을 꼽는다.
지어진 이야기는 별로 할 게 없으니 훼손된 이야기를 오히려 해볼까. 알다시피 대학로도 요즘은 예전보다 상업시설도 많이 늘어나고, JS빌딩 이후로 현대건축도 제법 늘어나 20년전의 붉은벽돌투성이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JS빌딩은 오히려 초기의 검은 철골을 붉게 칠하거나 노랗게 칠하는 등 이상한 리모델링(?) 과정을 겪고, 우리나라 상가건물이 다 그렇듯 입주상가의 각종 간판과 현수막 등으로 뒤덮이면서 슬그머니 대학로에서 존재감이 묻혀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건물 초기 여러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던 강렬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몇 년 전 엘리베이터 설치를 이유로(원래 엘리베이터가 없었는지, 건물확장과정에서 철거 후 재설치된 것이었는지는 유감스럽게도 알지 못한다) 없어져버린 것이다. 지금 대학로를 찾아가보면 그 뾰족하지만 둔탁하던 콘크리트 매스 대신 그냥 흔한 노출엘리베이터를 볼 수 있다. 기능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시각적으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유감스럽게도 학부 시절 그렇게 찍어댔던 JS빌딩 사진 중에 지금 내 수중에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JS빌딩의 콘크리트매스타워(?)는 정말 한때 대학로에 존재했던 “파격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시대의 한마디
옛날 사진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서러운데, 사진 찍으러 간 날 하늘이 이상야릇해서 카메라 노출이 엉망이었는지 찍은 사진이 전체적으로 환하게 나와버렸다. 언제 일부러 시간 내서라도 다시 대학로에 가 사진 몇 장 교체/추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