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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내>에 대한 단상

2003년 7월 21일

나이를 먹었다는-_-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별로 오래되지 않은 기억인 것 같았는데 가만히 손가락을 꼽아보니 이게 발가락까지 내려가더라… 하는 경우다. 며칠전 친구녀석의 홈페이지에서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들으며, “야~ 군대 있을 때 많이 듣던 노래네~”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벌써 그게 10년 전 얘기라는 점을 깨닫고 황당해졌던, 그런 일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듀스 얘기를 하려던게 아니고, 지난 봄인가 KBS에서 과거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아내>를 리메이크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야~ 이거 재밌게 봤던 드라마인데”라며 손가락 꼽아보다가 젠장, 벌써 20년전이네, 라고 한탄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하려다보니… 그랬다. 벌써 20년전이다. (정확히는 21년전이다. 1982년도에 방영했으니까) 21년이나 흘렀다는게 문제가 아니고, 내가 21년전에 무려 11살이나 먹은 상태로 그 난해한(?) 드라마를 즐겨보고 여태 기억까지 하고 있다는게 참… 뭐랄까, 기특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황당하다고 하기도 뭐하고, 하여튼 그런 기분이 들었더랬다.

내가 기억하는 당시 드라마 <아내>는, 한진희 김자옥 유지인이 주연했고, 한진희가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남자를 연기했고, 김자옥의 그 남자의 아내 역을 맡았었고, 유지인이 한진희를 구해주고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는 간호사 역을 맡았었다. (그때 유지인 이뻤지~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 트로이카 아니었나) 11살 먹은 꼬맹이 주제에 저렇게 한 남자가 두 여자랑 살면 안된다는 건 알았는지, 과연 저 남자가 어떤 여자를 선택해야되는지 참으로 지대한 관심을 갖고 드라마를 지켜보았더랬다. 기억하는 분들은 다 아시는대로 당시 드라마의 결론은 한진희가 김자옥에게로 돌아가고, 유지인은 아이를 그 부부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당시 신문이나 뭐 그런 곳에서 “조강지처를 놔두고 후처-첩에게 가면 쓰나”라는 식의 여론몰이(?)가 약간 있었던 것 같다. 무려 21년전이다 보니, 뭐 그런 의견 충분히 나왔을 법도 하다.

새로이 리메이크된 작품은 뭐 전 회를 다 챙겨보지도 못했지만, 결말은 스포츠신문에서 발빠르게 다 까발려놓아준 덕분에 굳이 정해진 시간에 TV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줄거리는 다 꿰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20년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바로 결말에 대한 논쟁일텐데, 20년 전에는 “당연히” 본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식이었던 것이 2003년도에는 후처에게 갈 수도 있다는 식의, 그것도 그냥 동정이나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7년간 남편만 기다려왔던 본처가 제 삶을 찾아가는” 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비쳐주었다는 점에서 격세지감 많이 느꼈다. 단순하게 보면 그동안 “이혼한 여자”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바뀌었다는 말일 게다. 20년전만 해도 “이혼한 여자”라는 말은 “소박맞은 여자”와 별반 다른 말이 아니었고, 결국 “7년간 일편단심으로 남편만 기다린 본처를 소박맞히다니”라는 식으로 논지가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유동근이 엄정화를 택한다고 해서 김희애가 소박맞았다, 이렇게 보는 사람도 많이 없어졌고, 오히려 돈이 많은 김희애와 헤어질까봐 시어머니가 기를 쓰고 매달리는 그런 형국으로 바뀌었으니 역시 세상은 빨리빨리 바뀌어가는 모양이다. (20년전의 작가와 지금의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는데 참 세상 변화 빠르게 읽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도의 <아내>에서는, 좀 과감하게 김희애를 자립시키는 것으로 결말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김희애는 7년간 그저 독수공방 남편만 기다리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실종된 남편의 역할을 대신해서 시댁 식구들을 거둬먹였고(?) 나름대로 성공도 했으니, 남편이라는 존재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남편 & 자식이 없으면 눈물바람이나 일으키는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여인네상 엄정화에게 남편 따위 밀어버려도 자신의 삶에 흔들림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유동근을 사랑하니까? 에이 뭐 꼭 데리고 살아야 사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