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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아들

2006년 10월 10일

어제밤의 영웅은
팔꿈치 부상에서 돌아와 놀라운 호투를 보여준 그레이싱어도
포스트시즌 최연소 승리투수가 된 한기주도
선제타점 희생플라이를 친 조경환도 아니고

심지어 결승만루홈런으로 광주구장을 들었다 놓은 이현곤도 아닌

선제득점과 결승득점의 주인공,
괴물 류현진에게 2안타를 뽑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발로 한베이스씩을 꼬박꼬박 더 달려나간
그렇게 류현진의 등 뒤에서 괴물투수를 흔들어댄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었다.

바람의 아들.
이렇게나 그의 별명이 잘 어울리는 선수가 또 있겠나.
이렇게나 그의 별명에 잘 어울리게 플레이하는 선수가 또 있겠나.

올봄 WBC에서 일본을 침몰시키는 결승2루타의 주인공이
시즌에 들어와서 완전히 늙은 티를 내며 겔겔거릴 때
이제는 이종범을 그만 포기하자는 타이거즈팬들이 오죽 많았었나.

그런데 그가 가을바람과 함께
바람의 아들로 돌아왔다.

어제의 활약이 올시즌 마지막으로 태워버린 불꽃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의 발로 얻어낸 포스트시즌 8연패 끝의 승리는
오승환을 어설프게 무너뜨렸던 경기보다 더 올시즌을 기억에 남게 한다.

이 기가 막힌 경기를 광주까지 가서 TV로도 못보고 상경한
시대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