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배삼례이야기] 뺀질거리는 배삼례

1998년 2월 1일

군대에서는 10시가 취침시간이므로 10시 이후에 TV를 보는 것은 원칙적으로 안된다. (물론 몰래 다본다. 불침번 짱 세워놓고) 내가 입대하기 전 이야긴데 우리 1내무반이 밤에 TV를 보다가 들켰단다. 뭐 좀 꼽창한테 걸렸는지 아니면 타대대 사관한테 걸렸는지,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문제를 죄다 바깥으로 끄집어내서 한밤중에 대가리를 박았단다. 그런데, 10초도 안되서 억지로 쥐어짜내서 불쌍하게 보이려는 티가 역력한 신음소리가 어디선가 낑낑낑 들려오더란다. 누구냐고? 그걸 꼭 말해줘야 아나? 하여튼 그 바람에 사관이 더 열받아서 1시간 더 박았다나 어쨌대나.

시설대대가 주로 하는 훈련이 활주로 피해복구 훈련이라고, 전시에 빵꾸난 활주로를 신속하게 복구하는 훈련이 있다. (삽 들고 출동함) 내가 근무했던 계획계가 이 훈련 일정을 주관하고 훈련도 지휘하기 때문에 계획계 사병은 이 훈련에 빠지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삼례는 그걸 참지 못했다. 쫄병때는 그냥 시키는대로 했지만 고참이 되니까 (겨우 병장 1호봉 주제에…) 하기가 싫어졌는지 빼달라고 개중사(원래 이중사. 보통 개중사라고 그랬다)한테 개김성 짙은 항의를 하다가 뒤지게 맞고 (참, 쫄병 앞에서 맞는 것도 무지하게 불쌍하더라) 분노를 삭이지 못하던 삼례는 입대 후 발전실에서 훈련 한번 안받고 니나노 놀던 자기 동기를 불쑥 훈련명단에 집어넣어버렸다. 혼자서는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이 투철한 동기사랑. 본받자.

개중사 말이 나오니까 또 생각나는 게 있는데… 개중사가 욕은 좀 먹었지만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그렇다고 깐깐한 스타일은 아니고 그냥 자기 주장이 좀 강했다) 뺀질뺀질한 삼례를 이상하게 미워했다. 특히 삼례 말년엔 (나도 그랬지만) 사무실에 붙어있질 않고 계속 다른 사무실로 싸돌아다녔는데, 개중사는 일하다가 잠시 틈만 나면 솔직히 사무실에 있어봤자 방해되는 삼례를 찾았고, (나는 있어봐야 귀찮으므로 솔직히 개중사가 미웠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서 마침내 삼례를 찾아 계획계로 끄집어들이는 놀라운 정보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리고는 너는 아직까지 군인이고 계획계 요원이라는 충고와 함께 가슴시원한 구타가 이어졌다. (야 참 그 당시 나는 너무 행복했다) 그래도 개중사가 뒤끝은 없는 사람이라 제대한다고 선물이랑 해주는 것 같던데, 그 밴댕이 소갈머리가 그 선물 어디 내다버렸는지 비싼거라 좋다고 헤헤거리며 갖구 나갔는지 그건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