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 26일에 얼터너티브 스포츠웹진 후추(http://www.hoochoo.com)의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무려 5년전에 쓴 글이지만 우연찮게 오늘 다시 읽어봤는데… 감상이 남달라서 퍼와봤습니다.
1.
며칠전 저희 사무실의 김대리님(여,31세,미혼)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정말 우리나라 빈부격차 심각하더라~”
평소, 그녀를 쁘띠부르조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저였기에
음.. 뭔가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군… 하고 생각했었드랬습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휴가때 김대리님이 필리핀 세부로 3박4일인가 여행을 다녀왔는데, (젠장~ 나한테 그런 돈 있으면~)
거기서 만난 아자씨 한분 얘기였습니다.
(…벌써, 제 예상과는 많이 멀어지죠?)
그 아저씨,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고 초등학교 2~3학년 정도되는 아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원래 이번 월드컵, 관심은 있지만 직접 경기장 가서 볼만큼은 아니었는데,
우리나라가 승승장구하면서 분위기가 열광의 도가니로 되어가자
어… 우리 아들에게 이런 기회를 그냥 넘어가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독일과의 4강전.
아이를 데리고 (암표가 있으려니 하고) 상암으로 갔답니다.
거기서 1등석 암표가 뭐… 4백만원씩 불렀다네요?
그런데 그 아자씨는 기다렸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떨어질 것이다…
진짜로, 경기 시작시간 임박해서 3백만원까지 떨어졌는데
표를 꺼내들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낚아채가는 바람에 결국 표를 사지는 못했답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오늘 이겨서 결승 가면, 요코하마 가서 보자…”고 약속을 했답니다.
이 얘기를 하는 김대리님의 결론은,
아이를 위해서 (별로 관심도 없던 축구에) 3백만원 정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일본도 옆집 드나들듯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 빈부격차 심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뭐 위쪽으로야 새삼스러운 거 아닌데.
2.
아시는 분들은 아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작년에 다니던 회사는 유학원이었습니다.
일본유학원의 주업무가 술집아가씨들 비자 발급해주는 거라면
영어권 유학원의 주업무는 돈많고 머리나쁜 애들 외국학교에 밀어넣는 거겠지요.
뭐 거기서 좋은 꼴(?) 많이 봤습니다.
매달 월급에서 빠지는 세금이 제 월급보다 많은 S그룹 이사님의 돌대가리 딸년도 미국 보내봤고,
아부지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강남에 30평 원룸 오피스텔을 사줘서 떵떵거리고 살던 돌대가리 아들내미도 봤습니다.
당시 직원들끼리 “양가집 규수”라고 부르던 학생들이 몇몇 있는데,
성적표에 주로 양, 아니면 가 밖에 없어서 그렇게 부르는 거였습니다.
아니 뭐… 성적이 전부는 아니죠. 양가집 규수가 인생의 낙오자도 아니고…
게다가 걔네들은 가정형편으로 보나 뒷배경으로 보나
인생에서 낙오할 염려가 전혀 없어보이던데요…
대학 떨어져서 흔히 말하는 도피성 유학을 가다보니 남자애들 나이가 스무살 스물한살 그런 식인데
유학생이랍시고 군대 빠지고 외국대학 졸업장 따오고… 얼마나 좋습니까?
(참고로 저는 스무살이 되던 해, 제일 걱정되던 일이 ‘아, 이제 군대가야되는구나’였습니다)
유학 가는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려는 건 아니고,
(저희 형님도 유학중입니다)
회사에서 보는 인간들이 워낙 그 모양들이다보니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정도로 하겠습니다.
3.
수준을 확 낮춰볼까요.
제가 어려서 살던 동네는 달동네로 유명한 신림동이었습니다.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요즘 ‘신사리’라는 말로 유명한 신림동 4거리에서 말이나 소가 끄는 달구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 가도 찢어지게 가난한 애들 투성이었는데
그 중의 한 놈 얘깁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친하게 지낸 놈인데
그놈하고 국민학교 같이 다닌 친구들하고 얘기하다가 들은 얘깁니다.
그녀석한테는 원래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심한 소아마비로 열살이 넘을 때까지 기어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의사들이 수술하면 나을 수 있다, 적어도 지금같지는 않을 거다 라고 진단했던 모양입니다.
어느날, 그녀석이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인가 됐을 때
집에 오니 동생이 집에 없더랍니다.
엄마한테 어디 갔냐고 물으니까
병도 낫고 좋은데서 살 수 있는 곳에 갔다고 하더랍니다.
아직 정확한 줄거리는 모르지만
미국으로 해외입양 보낸 것이 아닐까…라고 녀석은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비슷한 얘기를 그무렵에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더라구요.
그리고 그 해…(그러니까 고1때)
걔네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아버지는 지방에 계시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하고 사시고
그녀석이 갈 곳이 애매해지니까 작은 아버지가 맡았답니다.
그런데 작은 어머니가 막말로 남의 자식 고등학교 뒷바라지를 뭐 해주겠습니까.
한달 정도 그녀석은 지가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에 밥만 싸갖구 나오는 행각(?)을 계속 했습니다.
반찬은 뭐… 숟가락 들고 다니면서 애들 반찬 뺏어먹고…
결국엔 못버티고 미혼인 고모네 집에서 야리꾸리한 동거도 하고…
(고모가 새벽밥은 못해줘도… 눈칫밥은 안먹인다면서)
나중엔 뭐.. 결국 어머니네 집으로 들어가더만요.
이런 종류의 스토리… 제 친구들 아무나 푹 쑤시면 가마니로 쏟아집니다.
4.
저는 어떤 쪽이냐 하면, 상당히 고리타분해서,
돈없어서 밥굶어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맛없어서 음식 못먹겠다는 사람 역시 이해못합니다.
유행 지났다고 옷가지들 휙휙 버려대는 것 역시 이해못합니다.
가끔 저한테 사람들이 묻습니다.
영화 보는거 좋아하세요? 연극 보는 거 좋아하세요? 공연 가는 거 좋아하세요? 담배 피우세요? 어디어디 맛있는 집 있는데 가서 한번 안드셔보실래요? 주말에 심심한데 놀이공원이라도 가실래요?
제 대답은 거의 똑같습니다. “글쎄요… 별룬데…”
그 바람에 사람들은 저를 되게 시큰둥하고 재미없는 사람 취급하는데
뭐 맞는 말이지만… 솔직히 그런 이유보다는
내 돈 들여서 하는 모든 일에 저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뭐 부촌에서 떵떵거리며 산 것도 아니니 환경탓일지도 모르고
집안 대대로 돈쓰는데 인색하니 집안 내력일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저는 제 자식놈이 뭐 사달라고 떼를 쓰거나 하면
나도 모르게 대가리를 부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가끔 하곤 합니다.
…이건 정신병 초기증상일지도 모르지요.
저는 이제 27살 밖엔 안되는 데요.
그래도 주변에 친구들이 취업하고 되어가는 모양을 보면
학교 다닐 때 어지간히 공부 잘 하는 애들 보담
집에 돈 좀 있는 애들이 훨씬 잘 되더라고요..
학교에서 공부좀 했다쳐도, 의사나 변호사가 될 수 있을 만큼 잘 하지 못한 이상, 다 거기서 거기더군요..
머리는 별로 안 좋은데 노력은 하던 반 5등은 취업이 안되서 쩔쩔 매는데, 선생 때리고 정학 먹은 놈은 집에 돈이 많아서 벌써 잘나가는 호프의 사장님이 되어 있고 ㅎㅎ
글구 빈부에 대한 관점은 주관적인 거 같습니다.
제 주변에 아버지가 없고,어머니가 월70만원의 알바를 해서 생계를 잇는 집애는 저희 집이 아파트에 산다고
그 정도면 부자 아니냐 합디다..
ㅎㅎㅎㅎ
오래전 쓰신 글인듯 한데 평탄치 못한 삶을 살면서 여러 계층을 살아 본 사람으로서
남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군요.
사람마다 취향과 성격이 다른만큼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숙명과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타고난 환경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세상을 우선 잘 보고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특별한 타고난 재능도 없이 결손가정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혼자 객지 생활을 사회 최하층에서부터 시작하여 안정된 노년이 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 본 사람으로
가난을 한탄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도었음 하는 맘으로 살아 보았지만
신의 정해준 길을 가는지는 몰라도 스스로 운명을 개선하지 못하고 불만과 울분 속에서 세월을 허비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지나 연민의 정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뛰는 재주가 있으면 뛰면 되지만 평범하다면 기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고통이 따르지만 그만한 고통도 견디지 못한다면 꿈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 하는대로 주말마다 외식하고 바캉스철 되면 바캉스 가고 남 하는대로 해서는 꿈을 이루기 어렵다 생각합니다.
좋은 내용의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