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건담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를 꼽으라고 말한다면… 지금은 워낙 시리즈도 많이 나오고 팬층도 다양해져서 아마 상당히 많은 이견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과거의 인기를 충분히 반영해준다면 <샤아 아즈나블>이 첫손에 꼽힌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일본의 “캐라 인기투표”에서 샤아 아즈나블은 높은 순위에 꼬박꼬박 오르고 있으며, 주인공이 아닌 적 캐릭터로서는 아마 최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팬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자 여성팬들의 집단 자살 소동이 불거졌고, 메카닉의 전투씬에서 역대 건담 최고로 꼽히는 <샤아의 역습>이 단지 샤아가 불한당처럼 나온다는 이유로 찬반으로 나뉘어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1세대 건담과 손을 끊기 위해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샤아와 아무로를 죽여버리고 나서도 후작 <빅토리 건담>의 파일럿 웃소가 샤아의 손자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바람에 차후 건담 시리즈는 아예 우주세기를 버리고 다른 연도표기를 사용한다) 샤아 아즈나블이 건담 시리즈에 드리운 그림자는 막강했다.
지금부터 샤아의 탄생에서 몰락(?)까지를 순전히 내 관점에서 설명하겠다. 이것은 제작진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는(없을 수도 있는게 아니라 전혀 다르다는게 맞을 게다) 순전히 내 개인의 판단이다. 재미삼아 읽어주기 바란다.
이제까지와는 뭔가가 다른 작품, <기동전사 건담>의 기획단계에서 샤아 아즈나블은 사실 인기를 노리고 등장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사실 그 이전의 작품들에서도 샤아와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들은 많이 있었다. <투사 다이모스>의 리히텔 제독, <당가도 에이스>의 하켄, <볼테스 파이브>의 프린스 하이넬, <컴배틀러 브이>의 가루더, <용자 라이덴>의 샤킨 등은 “잘생기고” “냉소적이며” “자신감에 불타는” “멋쟁이 청년”이라는 전형성을 갖고 있었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캐릭터인 걸로 봐서 이 당시에는 이런 유형의 적군이 인기를 얻는 추세였는지도 모르겠다. 샤아 아즈나블의 첫등장도 다분히 그런 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군의 에이스 파일럿, 하지만 누이동생은 아군의 편이며(<다이모스>의 리히텔과 흡사), 출생의 비밀이 있고(<볼테스 파이브>의 하이넬), 거기에 가면을 씌워서 적당한 신비감까지(가루더와 샤킨 등과 비슷하지만 이 둘은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변신을 한다) 가미시킨 것이다.
샤아가 쓰고있는 가면에는 또하나의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기동전사 건담>을 다분히 <스타워즈>의 아류로 보는 시각의 연장선인데, 건담이 사용하는 빔샤벨과 제다이 기사들의 광선검의 유사성, 제국의 전함을 연상시키는 지온공국의 무사이함과 함께 샤아의 모습을 다스 베이더의 아류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봐도 닮았음…) 다스 베이더도 순수한 악역(1편까지는)치고는 의외의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봐서 (가면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샤아 역시 그런 의미에서 가면을 뒤집어쓰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폼이 나니까 가면을 씌웠는데, 핑계를 뭐라고 대나? 얼굴이 알려지면 안되는 싸나이로 만들자. 출생의 비밀을 섞고… 지온공국의 사실상 정통 후계자로 엮어보자… (이런 설정…솔직히 흔하다) 이리하여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은 탄생하였던 것이다…
잡소리 하나… 붉은 혜성이라는 별명 역시 베껴온 곳이 있다… <Red Baron>이라는 게임을 해본 분이 계시는지… 세계1차대전 당시 프로펠라 삼엽기를 몰고서 공식격추기록 80기라는 전무후무한 전과를 올려 독일 공군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파일럿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의 별명이 “붉은 남작”이다… 영웅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미망인을 남겨선 안된다며 결혼도 안하고 붉은 삼엽기를 타고 명성을 날렸으나 전쟁 막바지에 격추되어 전사했다… 금발머리의 미남은 물론이고 자신의 애기(愛機)에 붉은 색을 칠해 시인성을 높임으로 자신감을 피력하는 부분까지 고대로 베껴왔다…
덧붙여 한가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실은 나도 몰랐는데 얼마전 일본 홈페이지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야기다. 미확인 유비통신이긴 하지만, 건담 제작진은 샤아가 가르마 전사의 책임을 물어서 물러난 뒤 다시 전선에 복귀시키지 않는 스토리도 고려했다는 것이다. (아마 얼렁뚱땅 아군에 합류시키거나 그냥 흐지부지 없애버릴 생각이었나보다) 란바 랄과 검은별 3연성 등 막강한 적군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한 것으로 보면 이런 설도 일리가 있게 들린다. 어쨌든 내가 주장하고픈 것은 하나다. “샤아의 인기는 제작진이 의도했던 바가 아니다”
자, 의도야 어찌되었든 간에 샤아의 인기는 폭발해버렸다. 앞서 건담을 삐딱하게 본 글에서도 누누이 밝혔지만 이 바람에 건담 제작진은 <기동전사 Z건담>을 삐딱하게 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엄청난 팬을 확보한 샤아를 계속 적군으로 머무르게 하여 새로운 주인공 카미유의 인기를 갉아먹는 모험을 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그러나 건담 제작진은 그렇게 쉽게 샤아를 놓아두지 않았다. 그의 인기의 원천이랄 수도 있는 가면을 벗겨버림으로써 샤아의 신비감을 대폭 삭감해버리고, 아직도 붉은 혜성은 극중에서 전설로 남아있지만 전편에서의 놀라운 조종실력은 어디 갔는지 누르끼리한 백식(햐쿠시키?)을 몰고 건덩건덩거리기만 하는 수준으로 내리꽂아버렸다. 제작진의 의도적인 샤아 긁어내리기였다. 그러나… 그러나… 7년동안 샤아의 부활을 기다려온 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미유의 눈앞에서 포우가 죽는 7년전 비극의 부활을 샤아가 손 하나 까딱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어도… 에우고의 실질적인 지휘관으로 설정되어있지만 일개 함장인 브라이트 노아만큼의 카리스마도 발휘하지 못했어도… 금발머리의 샤아가 듬직하게 건담에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환호할 수 있었으니까. (일본의 “샤아 아즈나블 팬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샤아의 이러한 무기력증을 여러가지 억지섞인 근거를 들어서 변호하고 있었다…. 애처럽다) 하지만 결국… 샤아는 과거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하만 칸의 큐베레이에 짓밟히는 상당히 쪽팔린 최후를 맞았다.
자 이제 샤아는 없다… 물론 실종으로 처리됐지만(죽여버렸을 경우 그 원성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일단은 제작진이 부담을 덜었다… 이에 힘입은 제작진은 그동안 끌어온 건담의 무거움을 탈피하고자 애들 잔치인 <기동전사 건담ZZ>를 내놓았다. “아니메가 아냐”라는 괴상망칙한 제목의 주제가를 내세워서… 그러나 그것은 건담 팬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건담의 가벼움”이었다. 시청률은 기대 이하였고 기존의 건담 팬들은 외면해버렸다. 캐릭터 디자이너가 바뀌면서 순정만화 스타일로 캐릭터가 나온 것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원천적인 문제는 “가벼움”이었다. 전쟁 속에서 고뇌하던 주인공에 익숙해져있던 건담 매니아들에게 출격하면서 라이플을 잊어먹는 가벼운 주인공 쥬도는 정말 견딜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샤아가 없는 건담”에 대해 팬들은 야멸차게 외면해버렸다.
그래 ㅆㅑㅇ… 열받은 제작진은 서둘러 카미유도 잠깐 얼굴을 내밀어주고 샤아도 한컷! 얼굴 비춰주는 등 시청률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바람에 <기동전사 건담ZZ>가 얼마나 두리뭉실 이상한 줄거리로 엮여갔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래도 어찌어찌 <기동전사 건담ZZ>는 막을 내렸다.
처음 실패를 맛본 제작진은 오기로 불타올랐다. 오냐 좋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이런 심정에서 등장한 것이 아예 제목부터 찐하게 <샤아의 역습(역습의 샤아?)>이었다. 최초의 건담 시리즈 극장판인 이 작품에서 마침내 타이틀롤을 맡은 샤아… 샤아 팬들의 기대는 폭발했으나… 정작 극장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샤아는… 헉… <기동전사 건담>의 몰락한 천재 기렌 쟈비처럼 금발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등장했다… 첫인상부터 벌써 건담팬들에게 “더러운” 이미지를 짙게 풍겨버리겠다고 의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제국적인 이미지를 샤아에게 입힐 이유가 없다. 어머나 게다가… 전쟁터에서 스러져간 라라아의 영혼에 고뇌하면서도 또다른 소녀 쿠에스 파라야를 다시 뉴타입의 실험대로 전쟁터 최전방에 내세우는 뻔뻔함에 이중 플레이까지… 기존의 샤아 이미지를 일거에 뒤엎기로 작정하지 않고는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을리가 없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한때 동지로까지 발전했던 아무로와도 생판 원수처럼 되버렸고, 그가 부르짖는 지온의 이상도 이제는 과거의 가면쟁이 시절처럼 순수하게 들리지가 않았다. 하만에게 짓밟힌 후 약을 잘못 먹었는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서 돌아온 샤아. 그 바람에 <샤아의 역습>은 앞서도 말했지만 건담중 최강이라는 ‘뉴건담'(NEW가 아니다)과 ‘샤자비’의 우주격투씬이 스크린을 화려하게 수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찬반 양론으로 극명하게 엇갈리는 묘한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 비열하게 변신한 샤아의 죽음이 과거처럼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서지 않았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모든 작품이 작가의 의도 그대로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듯, <기동전사 건담>에서 샤아 아즈나블의 존재가 그러했던 것이다. 제작자와 팬들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멋진 캐릭터 샤아 아즈나블은 그 바람에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께 쪽팔리게 한번 죽고, 비열한 사나이로 전락하여 멋지게 두번째 죽는(<샤아의 역습>에서는 또 멋지게 죽는다) 기구한 운명을 살고 말았다. 비록 생명없는 캐릭터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웅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o_O
샤아라. 이 사람만큼 재해석되고 주인공들 보다 더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된 사람도 없을 듯합니다. 시대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상당히 잘 분석하셨네요. 좋은글 잘 읽다 갑니다
내용의 일부를 조금 퍼갈게요.
붉은 남작의.. 3엽기는.. 포커라는 뱅기죠..
문제는 소설판에서 샤아는 살아 있다 들었음.
앞으로 애니화될 유니콘에서 풀 프탈론 이라는 자가 샤아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한번 애니화되면 봐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