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물인가?
최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새로운 교황 베네딕트 16세 선출 등으로 세계의 이목이 바티칸에 집중되었다. 아무래도 시선이 모이다보니 바티칸을 대표할만한 건축물, 성베드로 성당도 새삼 주목하게 된다.
산피에트로성당이라고도 불리는(원어식 발음으로 하면 이게 맞겠지만, 우리는 워낙 성베드로성당이 익숙해서리) 이 성당은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성당이다. 성베드로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순교한 성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이 줄줄이 설계에 참여한 탓에 르네상스 건축물의 대표격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성당이 세워진 대지는 모두 25,616㎡의 넓이이고, 중앙통로의 길이는 187m, 폭은 140m, 높이는 46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성당의 정면만 해도 높이 45.44m, 넓이 114.69㎡에 지름 3m 높이 27m짜리 대리석기둥 8개가 쾅쾅 박혀있으니 상당한 위압감을 주는 덩치라고 하겠다. 내부로 들어오면 모두 44개의 크고 작은 제대와 395개의 조각, 135개의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어있는데, 그 중에 유명한 피에타상(예수의 시체를 무릎에 안은 마리아상)도 있고, 발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다 이루어진다는 뻥이 전해지는 청동 베드로상도 있다.
워낙 바티칸을 대표하는 건물이라 잠시 건물 자체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소개하자면, 일단 성베드로성당이 위치한 바티칸 광장도 상당히 유명하다. 1656년에서 1967년 사이에 건축가 베르니니의 설계로 건설된 이 광장의 총면적은 15,160㎡로 이번 교황의 선종 및 새로운 선출이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로 가득가득 메워지곤 했다. (이 광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대략 40만명이라고 한다)
이 광장의 한가운데에 솟아있는 것이 바로 오벨리스크로, 원래 콜로세움(현재 남아있는 그 콜로세움은 아니라고 알고있다)에 장식용으로 세워놨던 것을 1586년에 교황 식스투스 5세의 명으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높이는 약 25m로 로마에 있는 오벨리스크 중 두번째로 높다고 한다.
어떻게 지어졌나?
일단 성베드로성당의 원형은 지금과 모습이 다르다.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가 성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축하겠다고 공포하여 완성시킨 이 성당은 (건축기간 324년~349년) 오랜 역사를 거치며 숱한 침략과 약탈로 원형을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성당의 전면적인 개보수(거의 재건축)를 명령한 사람이 교황 율리우스 2세였다. 1503년 브라만테의 설계도가 채택되고 1506년 율리우스 2세가 초석을 놓으면서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1514년 율리우스 2세가 죽고 브라만테도 죽으면서 공사책임은 라파엘로에게 넘어갔다. 브라만테의 원래 설계안은 그리스식 십자가 모양으로 판테온의 돔 형식을 도입한 것이었는데, 새로운 교황 레오 10세가 기존 성당의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하여 라파엘로의 설계에서는 원래의 모습인 라틴형 십자가 형태에 긴 회당부가 추가된 설계로 바뀌게 되었다.
그후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1527년 독일용병의 로마침입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534년 바오로 3세가 교황에 즉위하면서 공사가 재개되었다. 이때 공사를 책임진 이는 상갈로의 안토니오였는데, 1546년 그가 사망하면서 후계자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미켈란젤로였다.
미켈란젤로는 전임자였던 안토니오의 설계 대부분을 수정하고, 원래 안이었던 브라만테의 그리스식 십자형태를 가져오면서 작은 돔은 버리고 큰 돔을 중심으로 삼는 모습을 설계해냈다. 미켈란젤로는 죽기 전인 1558년에서 1561년 사이에 나무로 된 돔의 모형을 제작해놓았으나, 1564년 그가 89세로 사망했을 때까지는 이 돔이 올라갈 탕부르의 공사를 겨우 마쳤을 따름이었다. 공사를 넘겨받은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도미니코 폰타나는 1588년에 돔의 건축을 다시 시작, 마침내 1590년에 돔을 완공시켰다.
1605년 바오로 5세가 새로운 교황에 오르면서 다시 레오 10세처럼 예전의 성당 모습을 복원하길 희망하자, 새롭게 설계를 맡은 마데르노는 다시 성당의 구조를 라틴형 십자가 형태로 바꾸고 전체 규모를 두 배 가량 키우는 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설계안은 1607년 공사가 시작되어 1614년에 정면이 일단 완공되었다. 마데르노는 비록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던 부분을 많이 허물고 다시 짓는 역할을 맡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부분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1629년 마데르나가 죽은 뒤 공사를 넘겨받은 베르니니는 미켈란젤로와 마데르노의 설계에 적절히 조화가 될만한 내부장식을 고민함과 동시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부분과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진 부분을 조화시키는 부분에 대해 골머리를 썩여야했다. 베르니니는 마데르노가 설계한 정면과 대성당 건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탑을 세우고 바티칸광장을 설계하는 등 성베드로성당의 현재 모습을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시대의 한마디
위 내용을 죽 읽어보면 대충 아시겠지만, 교황이 바뀌고 설계자가 바뀌면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상당히 많이 겪은 건물이 성베드로성당이다. 학부 시절 교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 문득 생각난다. “건축쟁이들은 말빨이 좋아야한다. 그래야 클라이언트(고객)가 이런저런 요구를 해도 말빨로 다 눌러버릴 수 있다”
교황쯤 되면 말빨이 통할만한 상대는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참고가 되는 말이다.